소상공인 역량강화사업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수년간 추진해왔던 소상공인 컨설팅 프로그램이다. 중기부에서는 대부분의 사업들을 대출이라든지 지원금의 방식으로 정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 일종의 양적 지원이라고 한다면, 역량강화사업은 자영업 사장님들이 장사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질적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고기를 대신 잡아주는 방식이냐, 고기 잡는 방식을 가르쳐주는 방식이냐 구분할 수 있는데 후자의 방식은 흔치 않고 더구나 전문가와 1:1 방식으로 밀착하는 경우는 이 사업이 거의 유일하다.
소곤소곤 대화해서 문제를 개선하는 사업인데 막상 신청해보면 뻣뻣한 벽처럼 느껴진다. 모바일 신청이 안 되도록 막아놓고 반드시 컴퓨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안내 문구를 보면 일단 상당수의 사장님들이 신청을 포기한다. 다행히 윈도가 구동되는 컴퓨터가 있어서 신청 버튼을 눌러보면 일단 본인의 환불 계좌번호부터 입력해서 확인을 받으라는 메시지가 팝업 형태로 뜬다. 사업자 관련 정보를 입력하지도 않았고 서비스 요금 납부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일단 환불 계좌부터 입력하라는 메시지를 보면 무슨 피싱 사이트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분위기가 이상해서 아래위 화면을 훑어보면 확실히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맞기는 한 것 같다. 대부분의 온라인 서비스가 모바일로 전환된 이런 사회에 반드시 윈도가 깔린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는 설명도 낯설고, 환불계좌부터 대뜸 입력해야 한다는 팝업도 의아하다. 꽉 막힌 관료주의 느낌이 확 풍긴다. 이 사업이 시작된 것이 최소한 10년은 넘었는데 이런 시스템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소상공인들의 숱한 불편들은 어떻게 그냥 스쳐갔는지 담당 공무원들은 정말 몰랐던 것인지 궁금하다.
분명 타성화된 권료주의 체계다. 온라인만 그랬을까? 오프라인에서 확인된 권위주의 체계의 민낯은 올해 초 소상공인 코로나 긴급자금 대출 때 전 국민이 목격했다. 2월 말, 3월 초의 사회적 패닉 상태에서 중기부 직접 대출을 받기 위해 접수처에 길게 늘어선 소상공인의 대열을 많은 이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미지의 전염병에 감염되는 사태에 모여 있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고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시기였다. 그때 사회적 거리두기를 포기하고 점포 앞에 길게 형성된 줄은 딱 두 군데가 존재했다. 하나는 마스크 구매 행렬, 또 하나는 코로나 긴급자금 대출 행렬이었다. 거리두기가 정말 중요한 시절이었지만 마스크는 그래도 방역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도대체 대출 행렬이 그렇게 장사진을 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무실 앞 복도에 다닥다닥 붙어서 대출을 받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사람들 사이의 간격 유지 같은 것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 하긴 그곳은 소상공인 지원부서이지 보건소가 아니었다. 밀집 행렬을 이뤄 대출을 받던 사장님들을 적절히 통제해야 마땅했던 국가는 찾기 어려웠다. 물론 대출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을 놓쳤다. 내 업무만 하면 그만이라는 타성적 관료주의의 민낯이다.
타성적 관료주의는 개별 정책 서비스가 망가지는 사태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국가나 지자체의 정당성이나 존립 그 자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최근 서울시장의 유고 사태는 불행 중의 불행이다. 여기에서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대립 양상을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사망자의 주변을 둘러싼 관료주의의 문제는 꼭 짚어봐야 한다. 도대체 박 시장의 주변에 있었던 어공(어쩌다 공무원) 수 십 명은 사태가 곪아 터질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어공들은 단순한 어공이 아니다. 박 시장과 수 십 년간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사람들도 그중에 다수가 포진해 있었다. 비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거듭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의 호소가 옳든 그르든 시장에게 상황을 설명해서 해결할 수 있었던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말인가? 과연 시장님이 그렇게도 둔감해서 이해를 못했던 것인가? 자신의 밥그릇을 걸고 한 마디 제대로 보고했던 사람은 없었고, 그럴싸하게 구축해놨던 시스템도 알고 보니 엉터리였다. 단지 서울시장의 추문만 문제가 아니다. 뿌리 깊은 관료주의,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비극을 낳았다. 진정한 비극은 여기에서 파생되었지만 어느 언론도 이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즉 이번 비극은 더욱 큰 비극을 준비하는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해일처럼 우리 사회에 쓸어 닥칠 비극을 예고하는 마당에 중소기업 정책 같은 것은 소꿉장난 같이 느껴진다. 그래도 어쩌랴.
이번에는 중기부의 생활혁신형 창업이라는 것을 살펴본다. 약간의 아이디어를 포함한 창업을 하는 사람에게 2천만 원의 창업 대출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창업을 해서 성실하게 사업을 했다가 나중에 실패했다는 판정을 받으면 대출금을 면제해준다고 하여 상당한 화제를 불러왔었다. 다른 소상공인 대출들은 그렇게도 급하게 집행이 되었는데 이 창업 대출은 아직도 집행이 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내가 대출 신청자들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물론 어떤 신청자들은 자금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아무도 대출을 받지 못했다. 이미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보통 창업대출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거나 사업 초기 사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인데 2달 이상 자금을 주지 않고 있다면 창업자금으로서의 기능은 퇴색된다.
그런데 대출 실행이 되지 않는 이유가 더욱 당황스럽다. 창업자를 위한 멘토링이 진행되지 않아서 그랬다는 것이다. 멘토링은 창업자의 진로를 도와주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이제 관료적인 시스템 하에서 멘토링은 창업자의 대출을 막는 벽처럼 되어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1:1 멘토링이 막혀 있었고 그로 인해 두 달 동안 대출 시스템이 정지해버렸다. 이와 같이 선의로 만들어진 제도도 타성적 관료주의에 포섭되면 사업자들을 다리를 잡는 올가미가 된다. 제도를 실행하는 개별 구성원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최초 접수자, 위탁 수행자, 멘토가 제각기 업무가 분절되어 있다. 사실 전체 사업을 이해하는 사람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멘토링은 추후 진행하도록 조정하고 대출을 즉시 실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시장은 사망함으로써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라도 했지만, 생활혁신형 창업 대출은 수혜자들이 분산되어 있는 데다 기관에 건의를 할 만한 처지가 못 된다. 늘 이런 식으로 관료적 시스템 앞에 문제는 봉합된다. 서두에서 말했던 역량강화 사업은 무려 10년을 이렇게 버텨왔다. 서식 입력 버튼 하나만 개선해도 수많은 기업인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데 그러한 제도적 개선의 동기부여가 안 된다. 그저 불평하고 비난할 뿐이다. 그러다 체념하고 묵인하고 결국 거대한 공룡으로 성장한다. 사실 필자도 이러한 묵인 행렬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귀담아 들어줄 경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물론이고 청와대 신문고, 각종 청원 게시판까지 형식적인 제도는 단군 이래 최상이다. 하지만 우리 문제를 들어주고 해결해줄 해결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관료들은 지금 업무도 벅차다고 한다. 시스템이 정말 빡빡하게 되어 있다는데, 그 말은 맞다. 그렇다면 기업인들의 호소를 들어주기 위해 지금의 시스템을 조금씩 포기하는 것은 어떨까? 시스템은 모두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경제인들의 호소를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는 시스템이라면 분명 잘못되었다. 그런 거라면 뼈아프더라도 서서히 해소할 용단을 내려야 한다.
TIP!
중소기업 관련 제도적인 문제를 발굴하였다면 그 문제를 간단히 문장으로 정리한다.
중기부 혹은 해당 기관의 홈페이지 QNA 코너에 해당 사항을 입력하여 1차 해결을 유도한다.
자체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어달라며 청와대 신문고에 기고한다. 해당 사항은 관료제의 피라미드를 타고 내려와 해당 부서에 전달된다.
제도적 개선 건의는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통하여 접수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