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교양서적 한 권을 탈고했는데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계산하면 총 4개월이 걸렸다. 숙성 기간은 그렇게 소요되었지만 기본적인 문제의식들은 참 단순하게 시작하였다. 출발점도 거창한 지식인들이 아니라 소박한 소상공인들과의 만남에서 비롯하였다. 이런 저런 상담을 하다보면 그들이 현재 읽고 있는 책들을 알게 되는데 상당히 진지하게 읽히는 교양서적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배움에 대한 관심은 경제나 문화 같은 것은 물론이고 시사, 정치 영역까지 넘나든다. 특히 40대 이상 사장님들은 초면인 사람에게도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나 정치 이슈에 대한 견해를 쉽게 내놓는다.
기업인에 대한 컨설팅을 하다보면 온갖 이야기를 다 하게 되어 있다. 기업인으로서의 개인적인 고충들은 물론이고 자식들 걱정, 질병에 대한 상담, 심지어 내밀한 이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컨설턴트의 귀에는 많은 것이 들어온다. 배가 산으로 가서는 안 되겠지만 어쨌든 사장님의 관심사는 도외시하고 경영 컨설팅만 하겠다며 맞서기는 어렵다. 때로는 현재 보유 중인 부동산이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 잠정적인 판단도 해주어야 하며 가업승계 얘기를 하다보면 딸자식의 혼사 문제까지 회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시사교양이나 정치적인 분야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했을 때 더욱 만족스럽게 사장님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국가가 지원하는 컨설팅 체계 하에서는 이러한 내용들은 절대적으로 회피 대상이다. 이런 상담을 해서는 안 되고 했더라도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사장님들은 꼭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만 그런 것들은 공식적인 자료로 남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공식적인 자료에는 컨설팅의 생생한 측면들이 누락되게 마련이다. 한 번 쯤은 이렇게 타이트한 상담은 뒤로 물리고 인간과 인간의 만남으로 컨설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작년에는 점포를 양도하고자 하는 반찬가게 사장님을 만났을 때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분은 60대 초반의 여성이었는데 홍보 마케팅 관련 컨설팅을 신청했지만 실상 가게를 접으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정석대로 하자면 점포의 입지조건을 분석하고 신청인의 재무제표를 확인해서 문제점을 미리 파악한다. 그런 것들을 반드시 해보도록 매뉴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그 반찬가게 사장님에게 그런 얘기를 꺼내면 나는 먹통 취급을 받게 되어 있다. 다른 것은 필요 없고 점포의 정보를 직거래 사이트에 잘 정리해서 올려 주어야 했다. 사진을 예쁘게 촬영하고 양도의 개요를 보기 좋게 작성한다. 다른 가게와의 차별성을 적어 주고 양수 즉시 수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멋들어지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사업자가 해당 게시물을 확인하고 우리한테 전화를 한다. 이렇게 과녁에서 빗나간 컨설팅을 진행하고 마지막에는 시집을 안 간 딸에 대한 품평을 진행한다. 그러면서 우리 시대 부모와 자식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심각한 토론을 해보게 된다.
얼마 전에는 공인중개사 한 분을 만났는데 이 분도 컨설팅 신청은 홍보 관련된 사항이었지만 실상은 비즈니스 도구 사용 가이드가 필요한 거였다. 좀 더 들어 보니 스마트폰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어찌할 줄 몰라 나를 부른 것이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사진을 많이도 찍었는데 이것들이 무질서하게 들어 있는데다 공간이 꽉 차서 사진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클라우드로 자동 전송이 되고 있다 보니 2중, 3중으로 저장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이런 요청도 소홀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일단 클라우드에 필요한 폴더들을 설치하고 파일을 하나하나 업로드하기 보다는 한꺼번에 클릭하여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하고 나서 공유 기능을 사용하면 조금씩 저장 환경이 개선된다. 물론 이것은 고객 관리의 측면도 있기 때문에 완전히 엉뚱한 짓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공유 기능을 사용하지 못해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사실 꼭 필요한 도움이다.
사업장에 산더미 같이 정치 관련 서적을 쌓아놓고 OOO 정치인의 팬카페에 가입된 사장님도 빼놓을 수 없다. 사업 얘기는 10분 정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 즉시 한국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진다.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잔존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식의 얘기를 한참이나 하고 있다. 내가 듣기에 일부 수긍할만한 얘기도 있고 엉뚱하게 느껴지는 얘기도 있다. 흩어진 관심사를 끈기 있게 접근해서 가르마를 예쁘게 타 주면 다시 회사 얘기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워낙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다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 그때 필자가 가장 충격 받은 것은 그 사장님이 그 책들을 거의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장식품처럼 책을 쌓아 놓고 그 책에 대해, 그 논객의 주장에 대해 얘기한다. 그 엄청난 관심과 지식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우리나라 소상공인들은 시사 교양이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학습을 할 기회가 부족함을 자주 느낀다.
상공인들만 그러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 국민들만큼 정치, 시사 얘기 즐겨하는 국민들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그 교양이라는 것이 일부 지식소매상들의 천박한 유튜브 방송에서 유래하다 보니 폭은 넓지만 질은 매우 형편없게 된다. 경제 문제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 두기 위한 토대도 없이 정체모를 음모론들을 잔뜩 구축하게 된다. 직장인들처럼 노동조합이나 정치조직 같은 데에서 토론을 해 볼 기회도 없는 상공인들은 정치에 과다 몰입하게 된다. 처음에는 조금 독특한 정보들을 접했다고 믿겠지만 나중에는 세상을 보는 눈까지 달라진다. 일종의 지식 자폐증 같은 현상이 유독 상공인들에게 많이 생긴다.
현실은 이러하지만 원리적으로 보면 상공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자주적 주인으로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야 월급을 잘 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당장 스스로 주인이 되기는 어렵다. 일단 회사가 잘 되어야 한다는 논리 앞에 월급쟁이들은 일단 순응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상공인들은 다르다. 이윤을 스스로 창출하고 실패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책임을 진다. 생존에 대한 중압감은 그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극한을 뚫고 당당한 경제의 일 주체로 성립한다. 위계적인 사회의 피라미드를 거절하고 미래 사회의 진로를 개척해갈 사람들도 상공인들이지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은 충분하지만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경제인들은 시대정신을 담보하는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도록 도와주는 스승을 찾아야 마땅하다. 영업을 활성화시키는 마케팅 노하우를 배우고 세무적인 부분까지 챙겨주는 실무 전문가도 중요하지만 기업가정신을 고양할 수 있도록 좋은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정치에 대해서도 그냥 터부시하거나 얄팍한 평론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된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진지한 노력을 하게 된다면 단지 상공인 개인의 지성을 개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전체의 긍정적인 변화에 일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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