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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도 없이 사업자등록도 없이

by 최팔룡

얼마 전 주민등록도 없이 70 평생을 살아온 여성의 사연이 보도되었다. 부모가 이름을 정해주고도 일체 공적 자료에 70년이나 그 개인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사례는 드물지만, 수 년 간 투명인간처럼 어린 시절을 살아온 사람의 증언은 무수하다. 과태료가 두려워 태어난 시점까지 늦추어 신고를 하신 분들은 몇 년을 젊게 살게 됐다며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노령연금 개시 일만 늦춰졌다며 불만인 분도 있다.

개인의 공적 탄생이 주민등록에서 개시된다고 한다면 사업자의 공적 탄생은 사업자등록에서 시작된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업을 개시한다는 신고를 세무서에서 하게 되어 있다. 노점에서 풀빵 장사를 하는 사장님이라면 이런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요즘은 조그만 구멍가게라 하더라도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다. 사업자등록 절차는 세무서 고유의 절차지만 세금 문제가 아닌 것도 사업자등록을 필수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서 아직 사업자등록이 안 된 분들이 많이 계신다. 당장은 세무간섭을 일체 받지 않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하고 편할 것 같지만 이래저래 사회에서 대접을 못 받게 된다. 올해 쏟아졌던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은 물론이며 불공정거래가 발생해도 대응하기 어렵고 심지어 형사 사건에 연루되어도 푸대접을 받는다.

올해 특히 무등록 사업자분들의 후회 섞인 하소연을 많이 들었다. 사업자등록을 했었더라면 조금이나마 지원금을 받아 급한 불을 껐을 텐데, 그런 것이 아예 봉쇄되었음을 아쉬워했다. 그래도 세금이라든지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사업자등록은 여전히 곤란하게 여긴다. 한 푼의 세금 부담도 아쉽기 때문에 사업자등록을 못하시는 분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충고하겠다. 간이과세자는 연간 수입금액 3,000만원까지는 부가세를 내지 않는다. 2020년은 그 기준이 4,800만원까지 상향 조정되었다. 약간의 공제를 적용한다면 소득세도 거의 없다. 내더라도 상징적인 수준의 납부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수급자와 같은 공적부조의 대상자라면 사업자등록이 있더라도 실제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수급 자격에도 하자가 없다. 그러니 더 이상 사업자등록을 회피하여 어엿한 경제인으로서의 권리까지 놓쳐서는 안 되겠다.

세금도 세금이지만 공적 신고의 의무가 복잡하여 아예 손을 대기 싫다는 분들도 있다.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것이라며 이 분들을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의무들이 또 누군가에게는 정말 버겁다. 거동이 힘든 노년층 자영업자, 수족이 불편한 장애인 사업자라든지 아예 문자 해독이 어려운 분들도 있다. 문서를 처리하지 못하면 사업도 하지 말아야 하나? 그것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영업허가를 제출한다거나 기관의 업무협조를 받아야 할 때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법의 보호 구역이 확장된다. 행정 지식이 부족하여 사업을 못하고 그것을 방치한다면 그것도 일종의 사회적 배제나 차별에 해당된다. 사업자의 공적 업무를 도와줄 도우미를 애타게 찾는 분들이 있다. 영세 사업자들에게 일상적인 조언이나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도우미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상시적인 도움까지는 필요 없더라도 가끔 사업자의 곁에 다가와 현안을 살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애뜻하게 다가가 도와드려 봐도 정녕 공적 지원 불가능한 분들이 있다. 공적부조를 받는 조건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생활비를 벌어보자는 분도 있고 파산선고를 받아 꼼짝할 수 없는 처지지만 사업을 해서 입에 풀칠을 하겠다는 분도 있다. 물론 이런 것은 개인적인 삶의 영역이기 때문에 필자가 평가할 처지는 못 된다. 일종의 책임회피, 도덕적인 타락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더욱 깊은 내막이 있을지도 모르니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공적 장부에는 없더라도 현재 영업을 하고 있다면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모른척해 버리면 우리 사회의 낙오행렬은 더욱 길어지는 것이며 그들의 불안과 원망은 사회가 아예 접근할 수도 없게 된다.

공적등록이 없다고 하여 자포자기할 필요는 없다. 매우 희귀한 경우지만, 사업자등록이 없는 사업자도 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로가 있다. 미소금융에서는 500만원 한도 내에서 신용 6등급 이하자에게 창업자금을 대출한다. 등급이 높으면 오히려 대출이 거절된다. 이 기관에서는 아예 무등록사업자를 위한 대출을 별도로 취급하고 있으며 금리는 2.0% 수준이다. 사업자등록이 없고 신용도가 낮은데도 사업자대출을 취급해주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빚은 우리의 허리를 휘게 한다. 코로나로 인해 엄청난 대출금이 시중에 풀렸다. 법인을 대상으로 한 대출이야 직접 우리 개인들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니까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 동향을 주로 살펴본다. 1년 전에 비해 개인사업자 대출이 무려 18%가 증가하였다. 그래도 일시적인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전체 대출자들 중에서도 60대와 70대의 대출이 크게 두드러지고 은행권이 아닌 비은행권의 자영업 대출이 훨씬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을 보면 그 속이 시커멓게 썩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통계 수치로만 이런 양상을 접한다면 어쩔 수 없는 현상일 뿐이라고 지나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현상들을 숫자로만 접하지 않고 실제 사례로 접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느낀다.

최근에 노래방을 운영하다가 사업을 접은 분이 바로 이 케이스에 해당한다. QR코드를 찍고 들어가야 해서 그렇잖아도 불안해하던 손님들마저 노래방 출입을 꺼린다. 그는 작년에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채무가 순간 6천만원으로 증가했는데 변제가 불가능하여 신용회복과정을 진행하게 되었다. 3천만원 정도만 갚는 것으로 조율을 했고 매월 꼬박꼬박 갚아 나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를 포기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주변에서 만난 다른 신용회복 과정을 거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장님에게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쓰고 있다고 참견을 했던 것이다. 빚을 모두 갚는 것은 멍청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변호사 비용도 터무니없이 많이 지불했다고 털어 놓았다. 아예 파산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신용회복 따위는 과거지사가 되었고 파산을 위해 사업도 접었다.

주민등록을 못했던 여성 노인처럼 우리 사장님의 나이도 이제 70줄에 들어섰다. 더 이상 영업은 어렵고 대출금의 부담은 목덜미를 짓누른다. 완전한 파산.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하였다. 그 옛날 여성 노인의 부모는 자녀를 홀대하여 공민권조차 없이 자녀가 한평생을 살아가도록 만들었지만 오늘날 노인들은 스스로를 홀대하여 파산과 경제적 붕괴 상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등귀하여 집을 못 가진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이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노인 자영업자들의 절대적 몰락은 관심을 끌지도 않는다. 대출만 잔뜩 늘려놓은 상태에서 7월까지 지급되던 정부 보조금의 손길도 이제는 없다. 주민등록도 없어 딱한 처지로 살아온 여성 노인이나 사업을 하다 파산을 앞둔 남성 노인이나 큰 차이가 없어져버렸다. 경제적 시민권까지 아낌없이 버려도 아깝지 않은 사회, 그런 자영업자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쓰러져가는 사람들의 절규를 청취할 만한 정치 집단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시대적 모순은 극한에 이르러 더 이상의 해결책은 어려울 것 같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정치 경제 레퍼토리를 지속한다면 참으로 헛되고도 헛되다.


TIP!

무등록사업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일단 사업자등록을 해야 합니다. 세무서에 등록을 하더라도 당장 세금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간이과세자이고 영세한 수준이라면 대부분의 세금이 면제됩니다.

- 사업자등록을 하게 되면 추후 코로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며 근로장려금을 비롯한 혜택들까지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 미등록사업자라 하더라도 미소금융 창업대출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금리는 2.0%이며 한도액은 500만원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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