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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에 한국 학부모들이 고발된다면

by 최팔룡

방역 문제가 불거진 것도 이제 9개월 째, 대도시의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떤 단계가 되든 학생들의 학습권은 지속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다. 생계 때문에 맞벌이를 해야 하는 소상공인의 자녀들은 학습은 고사하고 기본 생활 관리 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정규직 직장인들은 가족돌봄 수당, 연가 휴가를 써서 아이들 돌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못난 부모들의 아이들은 학교에 못 가는 날이 자주 있는데도 돌봄을 못한다. ‘라면 형제’의 비극이 벌어졌지만 뭇 사람들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임을 실감하지 못한다.


개별 아동방임에 대한 경각심은 예전보다 높아졌다. 아이들을 차에 두고 쇼핑을 하러 갔다가 112에 신고가 들어갔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크게 나면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한다. 새삼스럽게 왜 이러시나? 개별 사건을 자꾸 캐낼 필요가 없다. 전국가적으로 수 개 월에 걸쳐 아이들이 방임되고 있는 것을 봐야 한다.


나는 현실을 참담하게 느끼고 세계아동기구 유니세프에 한국의 참상을 고발하고자 한다. 정부를 기소하는 것보다는 학부모들을 기소하는 것이 좋겠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데 학부모들이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핑계는 대지 마시라. 정부의 통계에 따르더라도 매년 3천명의 독감 사망자가 있었는데 올해 코로나 사망자는 오늘까지 500명이 채 안 된다. 연말까지 500명이 더 사망한다 하더라도 예년의 3분의 1수준이다. 단지 두렵다는 이유로 교육체계를 마비시키고 아이들을 방치하는데 국가가 나서고 학부모들이 더 열성적으로 동조하였다. 나랏님 탓을 할 것이 없다. 바로 한국의 학부모들, 그들이 지금 범국가적인 아동방임의 주범이다.


어쨌든 코로나가 두렵다면 기술적으로 학교를 정상화할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밀집도를 고려하여 2부제, 3부제 수업을 하면 된다. 제도 운영의 경험도 많다. 80년대 초까지 학교는 적고 아이들은 많아서 2부제 수업 많이 해보지 않았는가. 그 때의 그 열정, 그 자신감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이런 저런 기술적인 방법이야 찾으면 된다. 대도시, 아이들이 많은 학교라도 가능하다. 서울에서도 일부 초등학교가 매일 등교를 실시하고 있으며 시골에 있는 학교들은 올해 내내 전일제 수업을 했다. 진지하게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지 가능한데 교육당국과 교육청, 학부모들은 뒷짐만 지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 안 갔을 때 당장에 내 주머니에서 현금이 빠져나가지는 않으니까 그냥 방치하는 것이다. 1명씩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방송에 나오지도 않는다. 형제가 한꺼번에 변을 당해야 가십거리 정도로 써준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동북아시아에 있는 나라들 중에 아직도 학생들의 등교가 통제되고 있는 나라가 있기는 한지, 중국 포함 중화권, 북한, 일본, 베트남, 아무데도 이렇게는 안한다. 학생들 등교 제한은 최소한의 응급조치면 몰라도 마냥 방치하는 것은 죄악이다. 방역이 아니라 방임이라 봐야 한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프리랜서 비정규직 대책도 그러하다.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방법은 있고 대충 다 알지만 당장 반발하지 않으니 그냥 뭉개고 지내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생존자금 100만원씩 주는 것, 어쩔 수 없이 받는 것이지만 고통의 강도는 더욱 커지고 길어진다. 폐업을 해야 마땅한 가게들도 다른 일자리가 없어서 그냥 버티고 있었는데 현금이 들어오니 일단 버티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지원금이 고맙다고 생각하겠지만 자본주의 원리에 따른 도태마저 차단되어 골목상권의 경쟁적 피폐함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


누구나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공무원 철밥통이라고 빈정거리지만 전국민이 공무원이 되면 불만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국가가 주는 일자리가 필요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얼마나 재원이 필요할까? 그들이 생산한 재화와 용역도 있기 때문에 단지 일자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GDP도 증가한다. 한계상태에 부닥친 자영업들은 자진해서 폐업을 하게 되므로 탄탄한 가게들은 더 장사가 잘 된다. 이런 것은 단지 공상에 불과할까? 지금도 자치단체들에서는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해서 단기직 일자리를 계속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 일자리’라고 엄청나게 홍보한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가 아니라 안정성과 보편성을 담보한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판도가 열린다. 결국 재원 마련만 문제가 된다.


무엇보다 첫 단추는 자산보유에 따른 세금을 정상화하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비업무용 토지가 우선 눈에 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이 투자하지도 않으면서도 그저 쌓아둔 곳간들도 언젠가 한 번 털어봐야 한다. 강제로 빼앗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근거 없는 감면 혜택을 줄여서 조세를 정상화한다면 자연스럽게 땅 장사는 안 하게 되어 있고, 곳간도 풀어서 국민들이 함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올해 여러 번 경험했듯이 현금이 돌게 되면 당장 서민들의 시름은 줄어든다. 다만 억지로 재원을 짜내듯이 지원금을 줄 필요가 없고 정상적으로 세원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국가가 일자리를 제공하여 국민경제의 선순환을 이루어낸다면 자영업 소상공인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가게들의 수가 줄어들고 현금이 많이 돌면 장사가 안 될 리가 있겠는가?


언론은 온통 현실과 유리된 정쟁만을 쏟아내고 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힘겨루기는 우리 사회 모순의 중요 지점을 손톱만큼 시사하기는 하지만 경제와 교육, 문화와 같은 실질적인 키워드와는 동떨어진 모양새다. 그 누가 승리하든 학교는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독감 백신 공포는 과도하게 부각되고, 제2의 라면형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언론과 주요 정당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완전히 고장난 네비게이션을 보는듯하다. 거기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아예 꺼버리는 게 안전운행에 도움이 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말고 일단 학교부터 정상화하기 바란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냥 이웃나라들 수준 정도로만 했으면 좋겠다. K-방역이 세계에 내놓을만큼 자랑스럽다면서 남들 정도만 하는 것도 어려운 것일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탓에 고통의 시간은 길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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