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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Apr 24. 2022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내가 사랑하는 영시 두 편

엘레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은 시한부 삶을 살던 여류시인이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 시인을 만나 15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조건을 배제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시에서 그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엘레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단지 사랑 그 자체만을 위해 주세요. 

'그녀의 미소 때문에, 그녀의 모습 때문에 그녀의 상냥한 말씨 때문에'라는 건 빼주세요.

내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그 애처로움으로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

한 생명이 우는 것도 잊고, 당신의 위안을 오래 받아 지겨워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결국 당신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안되겠죠.

그러니 나를 사랑 그 자체로 사랑해주세요. 당신이 더욱더 영원히 사랑해줄 수 있도록.


강아지를 사랑하든 사람을 사랑하든 그 대상의 특성을 제외하면 무엇이 남는 것일까? 재물이나 명예를 탐하여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의 상냥함과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을 속된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경우는 거의 못본다. 대다수 군중들은 철저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라는 사물은 그가 수중에 가진 재산말고도 외모, 분위기라는 것을 부가적으로만 지니고 있는 것이다. 좀 냉정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슬퍼서 우는 모습도, 그 눈물을 닦아주는 것까지도 철저하게 파고들어 보면 사랑 그 자체와는 다른 것이다. 애뜻함과 자상함까지도 사랑 그 자체와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시인은 그랬다.


그야말로 맹목적인 사랑을 해달라는 것이다. 너무나 철저하게 외부적인 요인을 걷어내다보니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말의 깊숙한 부분까지 걷어내는 것 아닐까 걱정이 된다. 마치 모래산을 쌓아놓고 한 줌씩 걷어내는 놀이가 생각난다. 최종적으로 모래산의 줄기를 뽑아내면 쓰러지게 되므로 그 줄기는 보호하고 외부적인 것을 악착같이 걷어내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걷어낼 수 있을까. 이 시인은 상당히 과감하게 걷어내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맹목성만 부각했다면 좀 무섭게 느껴졌겠지만 시인은 마지막에 직설적으로 필요한 것을 말한다. 까칠하고 싶어 까칠한 것이 아니라 더욱 오랜 사랑을 위한 것이라고 위안을 준다.


조건 없이, 영원히 사랑해달라는 그 고집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공허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다음의 시로 그 공허함을 채워 보자. 


물물교환

새러 티즈데일


삶에는 전부 아름답고 화려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절벽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컵처럼 경이로움을 지니고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얼굴들.

음악은 금처럼 휘어지고 비에 젖은 소나무에서는 향기가 나고요,

당신을 사랑하는 눈, 당신을 안은 팔들.

한 순간의 환희를 위해서라도 당신이 가진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쓰세요.

한 번 사고 나면 다시는 그 가치를 따지지 마세요.


새러 티즈데일은 엘리자베스 베릿 브라우닝에게 충고를 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 터무니없는 바램은 집어치우라고. 하지만 점차 생각이 바뀔 것이다. 서로의 시를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해본다. 2박 3일 정도 숙성을 해보면(이문재의 푸른곰팡이 참고) 상하에 배치한 두 개의 시가 모순적이지 않고 보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단 한 순간의 환희를 위해 마음껏 탕진하라는 것이다. 'ecstasy' 라는 단어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마약이라도 하라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감하게 표현했다. 색안경을 벗고 보는 것이 좋겠다. 그 한 순간의 환희라는 것이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한 순간의 환희를 개인주의적 환락뿐이라고 단순화시킨다면 이 시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물교환이 야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이 보았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라 무조건적이라며 훈계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나는 대중들의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새러 티즈데일이 생각하는 물물교환이라는 의견에 100% 동의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하물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에 공짜가 있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눈물을 닦아주면 자만하여 사랑을 잃게 되리라는 걱정은 지나쳐보이지만 일종의 예방주사 같은 효과가 있다. 오직 사랑 그 자체라는 말은 형이상학적으로 느껴지지만 그것은 삶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은 확실한 퍼주기에 있다는 것이다. 물물교환이라고 해서 천칭에 물건을 올려놓는 방식은 아니다. 물물교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결과다. 충분히 올려놓으면 무게가 커진다. 돌아오는 사랑도 커진다. 이렇게 안정감과 충분한 퍼주기의 중요성. 내가 사랑하는 두 개의 시를 차례로 음미하면서 내리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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