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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똥냄새 이야기

2억 년의 나무 앞에서 냄새 타령하는 인간들

by 조통달

가을이 깊다. 가을은 깊지만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다. 은행잎이 떨어지니 은행나무가 서있는 곳은 온통 노란빛이다. 바람이 한 번 스치면 노란 잎들이 동시에 날아올라 허공에서 마지막 금빛을 흩뿌린다. 그 빛은 너무 찬란해서 태양의 빛보다 눈부시다(거짓말이다. 햇빛이 훨씬 눈부시다). 늘 그렇듯 가을은 은행나무가 정점을 찍는다.


은행나무는 이억 년을 살아남았다. 공룡이 대지를 쿵쿵 밟고 다닐 때도 은행나무는 존재했다. 지구상에 친척도 없고, 혼자서 ‘1속 1종’으로 살아간다. 반면 소나무는 완전 다르다. 소나무속(Pinus) 안에는 소나무, 곰솔(해송), 잣나무, 눈잣나무, 백송, 리기다소나무, 스트로브소나무, 테다소나무, 방크스소나무, 에다소나무 등 전 세계적으로 100여 종이 넘게 있다.


잎은 부채처럼 넓어서 활엽수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분류학상 침엽수다. 은행잎을 세로로 찢어보면 쭉쭉 잘 찢어진다. 일반적인 활엽수는 ‘그물맥(網狀脈)’ 구조라서 잎맥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잘 찢어지지 않지만, 은행나무는 '평행맥(平行脈)'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어서 잎맥이 부채꼴로 일정하게 퍼지며 평행에 가까운 배열을 하기 때문에 맥을 따라 정확히 잘 찢어진다. 그래서 은행나무를 침엽수라고 하는 거다.


은행나무는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도시의 지저분한 공기를 제 몸으로 빨아들이며 정화한다. 인간에게 한없이 이로운 식물이란 말이다. 그늘과 공기정화뿐이겠는가? 은행나무 잎은 혈액순환에 좋은 의약품 원료로도 쓰인다. 징코민, 징코벨, 기넥신 같은 약들은 모두 은행나무 잎이 주원료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다. 은행나무는 멀리서 보면 곧장 암수를 구분할 수 있다.

숫나무는 위로 길게 치솟는다. 줄기가 곧고 가지는 위쪽으로만 쭉쭉 뻗어, 전체 수형이 마치 삼각형이나 촛대처럼 보인다. 나무에서 조금 떨어져 숫나무를 바라보면 뾰족하고 날렵해 “아, 저건 숫나무다” 하고 단번에 느껴진다.


반면 암나무는 모양부터 다르다. 가지가 사방으로 부드럽게 퍼지고 수관은 동그랗게 넓어진다. 덩치가 풍성하고 무게가 있어, 실루엣만 보면 커다란 노란 공 같은 형태가 된다. 가을이 되면 그 둥근 형태가 더 두드러져, 아래에서 위로 은은하게 노랗게 번지며 포근한 인상을 준다.


딱 보면 안다. 저 나무가 수놈인지 암놈인지를… 쉽게 설명하면 뾰족하게 위로만 뻗은 나무는 숫나무, 둥글게 부풀어 퍼진 나무는 암나무다. 숫나무는 가을이면 조용히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끝이지만, 암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그 열매를 땅으로 떨군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씨앗의 과육이 터지면, 특유의 냄새가 올라온다. 사람들은 이걸 ‘똥냄새’라고 부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인상을 쓰며 코를 막고, 신발에 묻을까 봐 총총걸음을 하며 은행나무 열매를 피해 간다.


은행나무 열매에서 나는 그 고약한 냄새의 정체는 사실 단순하다. 외종피 속에 든 부티르산, 빌로볼 같은 부패성 지방산 때문이다. 상한 버터나 땀, 발냄새 같은 향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은행나무가 이런 냄새를 만드는 이유는 사람 코를 괴롭히기 위한 이유가 아니라 2억 년 동안 살아남기 위한 본능인 것이다. “먹지 마라, 냄새가 심하지? 위험하다”는 신호를 냄새로 만들어 동물들이 열매 전체를 삼켜 씨앗까지 없애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악취는 불쾌한 냄새가 아니라 씨앗을 지키기 위한 오래된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냄새를 참지 못했다. 녹색일 때 그늘을 제공하고, 공기를 정화시키고, 피를 맑게 해 주던 은행나무를 노란색일 때는 참지 못하고 성질을 부리는 것이다.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하면 약을 뿌려 열매가 열리지 않게 하고, 애초에 묘목에서 암수를 구별해 숫나무만 골라 심는 기술도 개발하려고 한다. 심지어 씨앗이 떨어지기 전에 그물망을 치고, 냄새의 근원이라며 암나무를 잘라내기도 한다.


“못된 인간들… 자기들도 사랑하고 새끼를 낳으면서, 자연이 암수로 이어가는 질서는 견디지 못한다.”


인간도 남자, 여자가 있듯이 자연에는 암수가 있다. 나무도 당연히 씨앗을 남긴다. 그 당연한 순리에서 나오는 작은 불편함을 우리 인간은 참지 못하는 것이다.


은행나무 열매의 그 냄새는 똥냄새가 아니다. 이억 년의 시간을 하나로 버텨온 은행나무 씨앗의 생명의 냄새이고, 시간의 변화를 알려주는 가을의 향기다. 공룡이 돌아다니고, 대륙이 갈라지고, 빙하기가 오고 가는 동안에도 꿋꿋하게 지구를 지켜온 것이 은행나무이다.


반면 인류의 역사는 고작 30만 년. 은행나무 입장에서 보면 인간 역사는 한숨 한 번 쉬는 사이에 지나가는 짧은 에피소드다. 그런데 이 오래된 생명이 씨앗을 지키려고 풍기는 그 냄새에 백 년도 못 살다 갈 인간들이 코 막고 성질을 부린다고…


노란 은행잎 사이를 걸을 때, 발끝에 떨어진 은행알을 보며 이렇게 생각해 보자.


“그래, 이 억년을 살아온 은행나무야. 너도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중이구나.”


조금 불편해도, 그 정도는 품어줄 수 있는 마음, 그게 가을에 어울리는 마음이다.


20231104_151347.jpg 청도 운문사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 2023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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