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 할매도 충분히 이해하실끼라. 50년 했으면 마이 했습니다. 기제사 안 지내는 것도 아니고 명절 차례 이제 그만하겠다는데 어떻습니꺼? 내가 이번 제사 때 할배, 할매한테 잘 말하께요. 제사 음식 준비하다가 엄마가 몸 버리겠다. 이제 고마하입시더."
며칠 전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삿날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제사를 합쳐서 한 날에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께 설, 추석 그리고 두 분의 기일에 맞춰 일 년에 2번의 제사와 2번의 차례를 모셨습니다.
제 나이가 올해 50살이고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50년을 어머니는 일 년에 3번씩,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4번씩 제사와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50년을 한결같이 모신 차례
차례와 제사가 그 의미와 절차가 다르다고 하지만 저희 어머니 입장에서는 다 같은 집안의 큰 행사였습니다. 보름 전부터 시장을 왔다 갔다 하며 각종 가자미와 생선을 고르고, 제일 좋은 돔배기를 어물전 주인에게 부탁을 합니다. 흠집 없는 과일들을 사려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닙니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떡집에 찹쌀을 맡기고 제철에 맞는 떡을 주문 제작합니다. 설날에는 떡국을 올리지만 추석 차례와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상에는 무나물, 고사리, 배추 나물, 콩나물, 박나물 등의 나물을 삶고 무칩니다. 그렇게 보름 가까이 제사상을 준비하십니다. 어머니가 생각나 전화를 드리니 예상대로 몸살이 나서 누워 계신다고 했습니다.
"개안응교?"
"아이고, 다리는 개안은데, 허리가 너무 아프네. 누버 있다. 며칠 쉬마 개안켔지."
▲ 제사상의 모습: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상. 이 제사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보름 가까이 어머니는 시장과 떡집, 과일가게와 부엌을 수십 번 왔다 갔다 했다.
50년 가까이 제사와 차례를 모셔왔지만 매번 이렇게 정성을 들이니 그때마다 크든 작든 몸에 탈이 납니다. 대충 음식을 준비하자고 해도 그게 아니랍니다. 제가 아는 후배 집에서는 차례라고 진짜 차(茶)와 곡식을 올려 예(禮)을 표한다고 해도 저희 어머니는 그런 게 아니랍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당신 죽고 나서 제 마음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제사와 차례의 의미, 4대봉사, 기제사, 축문, 지방 쓰는 법, 제사 절차, 묘사에 관한 내용이 수없이 많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뭐가 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홍동백서, 어동육서, 조율이시, 두동미서, 좌서우동과 같은 말도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아직까지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에도 음식을 제사상에 놓다가 친척 어르신께 몇 번의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이런 제사상을 차리는 우리 집안이 그렇게 뼈대 있는 가문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본래 유교에서는 기제사만 지내고 명절에는 제사나 차례는 지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차례상 문화는 명절날 자손들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죄송해서 조상께도 음식을 올리면서 생겼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 후기 신분제도가 붕괴되면서 너도 나도 양반 가문임을 내세우면서 차례상이 제사상만큼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제사와 차례를 비롯한 유교문화도 지금은 전통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어차피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문화입니다. 제사와 차례 문화도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고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가가례(家家禮)란 말이 있습니다. 가가례(家家禮)를 풀이하면 집안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나 절차가 다르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 주희가 가정에서 진행되는 예절을 모아서 만든 책 <가례>(家禮)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학파와 가문에 따라 변형되어 지금껏 제사와 차례 문화가 우리 전통인양 흘러서 왔던 것입니다. 주희가 1200년에 사망했으니 그가 죽고 나서도 800년 넘게 그가 남긴 예법이 중국도 아닌 한국에서 살아서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셈입니다.
어머니와 아내도 좀 쉬는 명절이길
"할배, 할매요. 이제 명절에 차례 지내던 거 올해 추석부터 안 지낼라꼬예. 명절에 차례 안 지내는 대신에 기제사 때 계속 어무이하고 정성스럽게 모시끼예."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명절 차례 중단에 대해 구두보고를 드렸습니다. 이로써 어머니와 저는 50년간 지속되었던 명절 차례를 세월 저 편으로 놓아주었습니다. 제사를 끝내고 어머니를 찾는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부엌 벽에 돌아서서 고개를 숙이고 울고 계셨습니다. 나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엄마! 우능교? 와? 할배, 할매가 뭐라 칼까봐요? 근데 나도 까묵었는데 제사상에 지릉장(조선간장의 경상도 방언)을 와 안 올렸데? 할배가 명절 차례 안 지낸다고는 뭐라 안 카는데 음식 찍어 묵을 지릉장이 없어가 뭐라 캅디더."
"아이고, 내 정신 봐라. 내가 이래 정신이 없다. 아이고 아버님, 어무이요. 내년 기제사 때는 지릉장 안 잊어 무께요."
그렇게 50년째 제사는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한 차례가 아니라 살아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위한 멋진 저녁상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50년간 고생한 어머니와 10년간 고생한 아내는 이제 좀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