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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10. 2019

제7회 - 그 편한 방법, MR (2)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했던 말, “뮤지컬은 그 어떤 모양이라도 될 수 있다. 단지 분명한 한 가지는 뮤지컬은 반드시 음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It can be anything it wants to be. There is only one thing a musical absolutely must have-music.” absolutely라는 단어에 주목해보자. 그리고 음악은 행위를 통해 재현되는 것이라는 본질을 기억해보자.)    


 우리나라의 많은 뮤지컬 공연에서는 그 음악이 없다. 음악을 녹음한 기록을 용감하게 틀어대고 있다. 안타깝다. 뮤지컬에서 녹음된 음악 반주를 쓰는 것은 공연성의 커다란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유명한 외국의 뮤지컬 작품의 내한 공연이라 해도 반주 음악을 틀어댄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런 뮤지컬에도 굵직한 대기업, 공중파 방송국, 심지어 연극계마저 협찬이든, 후원으로 참여한다. 겉으로는 한국 뮤지컬의 발전을 위해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공연예술의 핵심적 요소에는 관심이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연극을 하는지.    


 자, 그렇다면 어떤 제작자들은 한국의 뮤지컬계의 제작비 현실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물을 것이다. 뮤지컬 공연에서 생음악 연주를 하면 연습 반주자, 공연 연주자, 편곡자, 음악감독, 음향관계자들이 필요할 텐데 그 사람들에게 줄 돈은 어떻게 하느냐고. 그렇다면 나도 묻겠다. 왜 그 음악과 음악을 위한 요소들이 필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느냐고.    


 배우는 공연예술의 필수적 요소이다. 공연 예술의 꽃이다. 음악과 음악을 위한 요소를 포기하는 이들도 배우만큼은 포기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배우라는 존재가 공연 자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공연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에? 아니. 그들은 좋은 배우를 고용해야 돈이 벌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뮤지컬 무대에 오를 만큼 훈련되어 있지 못한 이른바 스타를 캐스팅하기 위해 안달한다. 음악 대신 녹음된 소리를 써서 아낀 돈으로 스타를 잡겠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배우라는 존재는 돈을 벌어주는 피고용인 일뿐이라는 시각을 가지지 않았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분명히 공연을 위해 생음악 연주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한 이유로 포기할 수는 없는 요소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뮤지컬을 제작하겠느냐고 푸념할 수도 있겠다. 그런 경우 내 생각은, 차라리 규모가 작은 작품을 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외형상의 이른바 뮤지컬 익스트라버겐자(Extravaganza)를 꿈꾸기 보다는 규모가 작아도 공연의 본질에 충실함으로써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라고 말이다. 그런 작지만 진지한 작품 제작을 통해 경험을 쌓은 다음, 조금씩 규모를 키우라고 말이다.    


 녹음된 커다란 오케스트라 소리가 공연에 생명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피아노 반주 하나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공연인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작곡가들은 컴퓨터로 혼자 온갖 악기 소리를 입혀서 반주를 완성하고 그것에 만족하면서 제작팀에게 그것을 전달한다. 그것이 곧 공연을 망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것을 사용하고 싶다면 연습할 때 반주로 사용하라고 하고 싶다. 절대 공연 중에 쓰여서는 안 될 소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뮤지컬을 공연하고 싶은데 생음악 연주를 하라고 하면 공연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지 않을까? 프로 세계에서 관람료를 받고 상품으로 제작하는 공연물과 학교에서 학생들이 하는 공연물의 그 목적은 엄연히 다르다. 학생들의 공연은 향후 예술계에서 활약할 인재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기 위해 공연이라는 경험을 수업으로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교육도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악기 연주로 뮤지컬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없는 것이니까. 그런 교육 환경이 너무나 이상적이라고? 그런 이상적인 교육을 경험한 이들이 성장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    


 너무나 많은 제작자들이 한국 현실을 운운하면서 자꾸 핑계를 대며 뮤지컬에서 음악을 포기한다. 그러면 제작을 포기하든가, 형편에 맞게 해야 한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한 상품을 만들어낸다 해도 본질을 피해가는 것은 당연히 지출되어야 할 곳이 있는 돈을 자신의 주머니로 슬쩍 집어넣으려는 속셈에 불과하다. 이런 기본적 태도 없이 창작뮤지컬 활성화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복제 가능한 예술은 소비되려는 경향이 있고 복제 불가능한 예술은 체험되려는 경향이 있다. 연극은 복제 불가능할수록 가치를 지닌다. 같은 작품을 이곳저곳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A팀, B팀... 이렇게 만들어서 여기저기에서 공연하는 것이 공연의 성공이라 보는가? 레미제라블의 글로벌 제작 다큐멘터리 (『Les Misérables - Stage by Stage』)는 성공적인 제작자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로 같은 작품을 세계 이곳 저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의 제작을 꿈꾸게 했다. (나 역시 레 미제라블을 좋아한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복제 불가능할수록 가치를 지니는 연극이 복제 가능한 성격을 닮아가려는 것을 말이다.   

 

 진짜 사자를 보고 싶으면 동물원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초원으로 가야 한다. (국립공원이라고는 하지만 담도 없는.) 진짜 사자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자부심이다. 그들에게는 가짜로 만든 바위도 없고, 주기적으로 받아먹을 수 있는 먹이로 인한 상처받은 야생성이 아닌 순수한 야생성이 있다. 그 아무리 잘 사는 나라의 사람이라도 사자를 연구하려면 자신들보다 상대적으로는 가난한 나라의 대륙, 아프리카로 가야한다.    


 왜 한국의 많은 제작자들은 브로드웨이를 자신의 목표로 삼는가? 브로드웨이라는 시장에 작품을 내놓은 것이 목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브로드웨이 사람들, 브로드웨이를 찾는 사람들이 와서 봐야 하는 공연을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하는가? 한국의 어느 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어떤 뮤지컬. 복제 불가능한 성격을 가진 공연. 그런 뮤지컬이 한국을 채울수록 예술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공연 예술이 문화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해외 수출은 그 다음 얘기이다. 처음부터 해외 수출을 목표로 예술을 상품화하려 하지 말라. 그것을 목표로 하는 연극이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연극의 목표는 브로드웨이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번 장의 처음에 있는 두 사람의 대화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흔히 MR-music recording-. (누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거부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뮤지컬에서 MR을 쓰는 것이 우리에게 상식이 될수록 본고장의 그들은 우리를 속으로 무시한다. MR을 사용하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같은...”말을 하며 멋있는 척하는 사람이 있다면 불로소득을 원하는 사람일 것이다. 지금의 브로드웨이를 이루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음악을 위해 노력했는지 아시는지. MR 뮤지컬이 공연장에서 빨리 사라질수록 복제가 무한 가능한 이 시대에 우리 뮤지컬이 보석처럼 빛나는 복제 불가능한 가치를 지니는, 체험을 제공해주는 공연예술로 제 몫을 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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