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다음의 짧은 대화를 읽어 보시기를.
한국에 일 때문에 온 미국 뮤지컬 작곡가: 근데 MR이 뭐예요?
한국에서 같이 일하게 된 한국 제작자: 반주 테이프이요. 요즘은 CD로 만들어 놓죠.
그 작곡가: 그러면 MR이 뭐의 약자인데요?
그 제작자: Music Recording의 약자일 거예요.
그 작곡가: (황당해서 웃고는) 아... playback 하는 거요?
그 제작자: ...
그 작곡가: 근데 그걸 왜 만들어요? 아! 연습할 때 쓰나요? 연습 반주자 없이 연습할 건가 보죠?
그 제작자: 공연 때 노래 반주로 쓸 건 데요.
그 작곡가: (너무너무 놀라서) 예?
내가 어릴 적만 해도 학교나 교회에서 문집을 만들려면 흰 종이에 펜으로 글씨를 써서 인쇄소에 맡겨야 했다. (신기하게도 글씨를 예쁘게 쓰는 여학생들이 주로 그 글씨를 도맡아 썼지...) 요즘은 컴퓨터의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으로 자판을 두드려서 프린터로 출력하면 그만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혁명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집에서도 인쇄가 가능하다는 것은 그 혁명적 사건을 뛰어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우리나라를 포함한 조금 산다는 나라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보편화되어 있다. 출력한 원본을 복사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너무나 쉽다. 이제는 복사를 위해 동네 문방구에 가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복합기로 다 된다. 복사가 어렵지 않은 시대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오래된 감상적인 수필에서 빠른 세태 변화를 한탄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종이 위에 글씨나 그림을 복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컴퓨터 파일도 이런저런 저장 방법으로 무한정으로 복사할 수 있다. 음악도 영화도 파일로 바꾸어 저장하고 복사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새삼 놀라고 있다. 정말 대단한 시대이다.
그런데 이런 복제 무한 가능 시대일수록 연극하기가 힘들어진다. 물론 공연 예술은 언제나 힘들었다. 디오니소스 축제의 고대 그리스 시대, 오페라의 인기가 높았던 유럽의 고전과 낭만시대,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훌륭한 파트너십을 맺어 미국 뮤지컬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1940년대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 등 그 아무리 공연 예술의 황금시대라고 해도, 공연 예술에 관한 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사회적 강자라는 뜻은 아니었다. 소수의 천재적 예술가나 운이 좋았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공연 예술은 언제나 힘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동시대라면 전시장, 영화관, 콘서트홀, 각종 예술위원회, 운송과 물류, 판매 등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는 시대인데 왜 연극하기가 힘드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제가 무한 가능한 시대에 사는 많은 잠재적 관객이 복제에 익숙해지는 만큼이나 복제가 불가능할수록 가치를 지니는 연극의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복제하는 것이 쉬운 시대를 통해 얻은 체질로 변해 그런 시각으로 연극을 바라본다.
뉴질랜드 태생의 작곡가이자 음악 철학자인 크리스토퍼 스몰(Christopher Small)은 자신의 저서 『뮤지킹-음악하기(Musicking: The Meanings of Performing and Listening)』(조선우, 최유준 옮김, 파주, 효형출판, 2004)을 통해 음악에 대한 놀라운 철학적 접근을 보여주는데 그 가운데 음악은 음악을 수행하는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정말로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사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공연예술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음악이라는 것은 이미 어디에선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순간에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음악은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재생 장치를 통해 듣는 음악은 진정한 음악이라기보다는 음악이 연주되는 순간에 대한 음향적 기록일 뿐이다.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음악 감상이 취미라고 하며 CD나 MP3 파일을 통해 그 소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음악이 아닌 그 음악의 기록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저장 매체에 들어 있는 소리가 진정한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에 불편한 분이 있다면 이렇게 설명해보겠다. 어느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독주회에서 연주하기로 했는데 그 공연장에 모여 있는 청중들 앞에서는 그가 발매한 CD에서 나오는 곡들이 흘러나오고 정작 그 연주자는 휴양지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청중들은 그런 연주회는 사기라고 할 것이다. (간혹 이러한 행위를 실천하여 예술로 기록되는 사건들이 있기는 하지만.) 만일 연주 행위를 통해 수행되는 음악이 아닌, 기록된 소리를 진정한 음악이라고 포함시킨다면 연주회, 콘서트는 굳이 할 필요 없는 것이다.
의사이자 신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했던 슈바이처 박사는 자신이 자라오면서 배운 것들을 회고한 책에서 (『Memoirs of Childhood and Youth』. 우리나라에서는 『열정을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심재관 옮김, 서울, 좋은 생각, 2006) 음악이란 연주하는 이의 연주 행위와 관련된 체험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오르간을 배우면서 느꼈던 음악에 대한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그가 의사로서 보여준 업적이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는 어릴 때 서른 살 때까지는 복음과 음악을 통해 헌신하고 그 이후에는 봉사로 헌신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그 봉사의 방법으로 의사가 되었는데, 조금은 늦은 나이에 의학 공부를 시작해서 의사가 되기 전까지는, 그는 목사이자 음악가였다.) 수행하고 있는 때에만 존재한다는 음악의 본질은 공연 예술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 현장에 증인으로 참여하여 그 순간을 체험하다는 것. 연극을 본다는 것은 내가 돈을 지불해서 좌석을 얻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한다는 것이 아니라 공연이 이루어지는 그 공간 안에 속해 그 공연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제사를 드릴 때, 제사상을 차리고 그 앞에 가족들이 모여 있는데 자기는 다른 식구들이 뭘 하든 팔짱 끼고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집안에 보통 때와는 다른 기운이 흐른다는 것을 느끼며 저 음식 저쪽에 놓는 거 맞느냐고 소곤거리면서 묻기도 하고, 제사 절차에 누를 끼칠까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면서, 자신이 그 제의에 일원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체험이다. 죽을 뻔했던 경험이 있는가? 그런 경험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체험했기 때문이다. 수학 공식은 잊어버려도 자전거 타는 법은 잊지 않는다. 몸으로 익힌 기능이며 체험이기 때문이다. 연극을 본다는 것은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 음악의 본질이자 공연의 본질인 연주 행위를 빼고, 반주를 틀고 거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뮤지컬을 나로서는 뮤지컬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뮤지컬은 전에도 언급했듯이 연극의 한 양식이다. 그 본질적 요소인 연주 행위를 뺀 뮤지컬은 그저 소비되는 상품일 뿐이다. 이제 왜 뮤지컬 공연에서 악기 연주자들과 음악 감독이 중요한 지 눈치챘을 것이다. 그들은 공연의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다. 미국 뮤지컬이 형성될 수 있었던 요소들 즉, 유럽에서 온 오페레타, 미국 자생적인 오락(민스트럴 쇼, 버라이어티 쇼, 벌레스크, 보드빌, 레뷔 등), 그리고 재즈 모두가 언제나 무대 안팎에서 직접 연주하는 음악이 본질적 요소로 기능했다. 음악이 녹음되고 재생되는 기술이 생긴 이후에도 이 지켜져야 할 약속은 지켜져 왔다.
1887년 천재적 괴짜인 한 남자가 바늘과 은박지 실린더를 통해 자신이 직접 노래한 것이 녹음되어 재생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무척 기뻐했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 이듬해 2월에 특허등록을 한다. 그 이후로 이 축음기는 에디슨의 다른 발명품들이 그랬듯이 세상을 바꾸었다. 음악을 포함한 모든 소리를 저장해두었다가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비닐 LP, CD, MP3 파일과 같은 모양으로 소리가 음악이 기록되고 있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1887년은 미국의 뮤지컬이 태동 시기와 비슷한 시기이다. 소리의 녹음과 재생 기술이 그 이후로 계속 지금까지 거듭 발전되어 왔는데도, 그들의 뮤지컬에서 녹음된 음악을 쓰는 법은 없었다. 현장에서 행위를 통해 연주되는 음악의 그 본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