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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유 Apr 24. 2024

가출했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대학생과 좀 이상한 출판사 (1) - 출판의 계기

중학생까지는 큰 문제가 없는 학생으로 컸다. 까지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의외의 사고뭉치가 되었다. 학교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퇴를 했고, 학교로 돌아갔다가 다시 자퇴를 했다. 검정고시를 보면서 일을 했고, 일을 그만두고 병원과 집근처만 돌아다니는 반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교는 가고 싶어서 학원도 다니고 독서실도 다녔다. 열심히 빙글빙글 도는 삶 속에서 가장 많이 충돌하는 사람이 누구였냐고 한다면, 당연 엄마였다.


그 날도 그랬다. 나는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군고구마를 사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집에 가다가 친하게 지내는 가게 사장님이 아직 계시길래 고구마를 조금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고구마를 챙겨 다시 집으로 가고 있는데, 왜인지 엄마가 화가 나있었다. 집에 들어오는 길이라고 이야기하고 한참 뒤에야 들어왔다는 이유였다.


나는,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일하던 시기에는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오거나 집 바로 앞에 떨궈주는 차가 끊겨서 좀 걸어서 들어오는 날도 많았는데 아직 12시도 안된 시간에 늦었다고 화를 내는 엄마는 당황스러웠다.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두 배로 화를 냈다. 그랬다. 그 사장님이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엄마랑 나는 그 날 엄청나게 싸웠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생각 방식이 좀 달랐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그 날 일종의 끝장토론을 했고, 그 결과로 내가 집을 나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재워줄 친구가 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빙글빙글 동네를 돌다가 사촌언니네 집으로 갔다. 언니는 올 거라면 차가 끊기기 전에 오라며 언니네 집 근처 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언니도, 나도, 엄마도. 내가 거기서 출판이라는 꿈을 만들 줄은.




언니랑 한참을 이야기했다. 언니는 나이가 많았지만, 꽉막힌 어른은 아니라서 엄마와 나 사이에서 좋은 중재자가 되어주었다. 싸운 것을 이야기 하는 것, 엄마의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해주는 것은 날이 바뀌기 전에 끝났던 것도 같다. 사실 엄마랑 싸울 만큼 싸우고 전철을 타고 약 1시간을 걸려서 언니네 집에 오는 동안 나는 머리가 많이 식은 상황이었고, 엄마도 내가 없는 집에서 머리를 식힌 상황이었기 때문에 합의점을 금방 찾았던 것 같다. 싸움이야 종결되었지만, 이미 막차는 끊긴 상황이었고 엄마가 내가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것을 허락할 리도 없었으므로 우리는 내가 여기서 하루를 자고 가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싸움이 끝나고 난 뒤, 우리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언니랑의 대화의 특징인데, 언니는 약간 깨달은 사람 같은 대화를 하는 경향이 있다. 둘이서 이야기하면 약간 대화가 철학적으로 된다고 해야하나. 그런 대화를 싫어하지 않는데다가, 최근에는 그런 식의 대화가 멸종한 세상이다보니 나는 그 시간을 꽤 좋아한다. 언니랑 조잘조잘거리다가, 언니가 무슨 종이꾸러미를 건넸다. 언니가 언니 친구들이랑 한 작업물이라고 했다.


작업물은, 재밌었다. 언니랑 언니 친구들까지 해서 셋이 하나의 단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그냥 소소한 소일거리였으므로,  A4용지를 뭉쳐 클립인지 집게인지 하는 것으로 집어둔 것이었지만. 나는 이 종이책이 꽤나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단어는 명확하게 하나 뿐인데,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의 뜻은 굉장히 여러가지로 쪼개진다. 이 쪼개짐 속에서 세 사람은 서로의 단어의 정의를 명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단어에 이런 의미를 가진 사람이라고. 내가 눈을 반짝거리면서 종이묶음을 보고 있자, 언니는 좀 재밌었던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읽어보고는 언니한테 이야기했다.


" 이 아이디어 내가 살래."

" 어?"

" 이 아이디어 내가 살래. 그리고 대학 가면 해볼 거야."


언니는 그러라고 했다. 아이디어를 사는 것은 그냥 값을 치룬 셈 해줄테니 하고 싶은대로 해보라고 했다. 어차피 너는 이런 것과 관련된 학과를 전공할 확률이 높으니, 친구들끼리 하는 것 보다도 내가 좀 더 재밌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마음이 두근거렸다. 이 때의 나는 기자라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미디어 관련 과에 가는 대신 국문과에 가기로 마음을 굳힌 상황이었다. 미디어 관련 과에 가기엔 검정고시생이 너무 경쟁력이 약했던 것도 있고, 기사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던 때였다. 모두가 쉽게 볼 수 있는 공적인 문서와 같은 것에서 단어를 잘못 쓰는 기자는 잘못되었다고 믿던 시기였다. 그랬기 때문에 단어가 가진 다양한 실용예에 대한 책에 끌렸던 거겠지.


대학은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대학 가서 할 일이 생겼다.

아, 꼭 이 동아리를 만들어서 책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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