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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자 May 13. 2022

지음의 바탕, 바탕의 지음

카페바탕을 취재하러 가서 지음에게 반하고 왔다

원주 혁신도시에 ‘카페바탕’이 있다. 카페 안엔 ‘아트인바탕’이란 디자인 사무실이 있고, 이달의 작가라는 전시를 진행한다. 전직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였던 지음이 두 바탕을 만들었다.  

지음을 만난 후 문득 이 인터뷰가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내용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음이 일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엔 디자인 일을 안 하더라도 배울 점이 많았다. 인터뷰하면서 몇 번은 짜릿했다. 그는 ‘큰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그가 그린 그림대로 일이 정말 실현됐을 때가 그랬다. 원래의 목적은 카페바탕을 취재하는 데 있었지만, 진작에 이 카페는 단독으로 취재할 대상이 아니었다. 카페바탕 이전에 아트인바탕이 있었고, 그 전에 지음이란 사람이 있었다. 애초에 거대한 세계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기 전 카페바탕을 찾았다. 지음을 만났다.



지음

저는 딱 요새 미는 표현이 그거예요. ‘짓는 사람’ 지음. ‘글과 그림, 공간을 짓다’라는 뜻으로 그렇게 쓰고 있고, 지금은 바탕 만드는 사람이죠.


디자인 회사 아트인바탕

고향은 원주지만 서울에서 13~14년을 디자이너로 생활했고, 회사 다니면서도 늘 작업에 대한 갈증, 뭔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어요. 퇴근 후엔 프리랜서로 외주 일을 했어요. 그렇게 경력을 쌓던 중에 외주 작업으로 ‘대한민국 국제관광 박람회’라고 국내여행, 관광을 테마로 한 박람회 포스터를 작업하게 됐어요. ‘내가 이 일로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구나.’ 그때 처음 안 거예요. 그게 2018년도였고 마침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이직과 창업 중에 결정해야 했어요. ‘창업을 하자. 이왕이면 원주에서.’ 관광 박람회에서 맡은 로컬 관련 작업을 돌이켜보고 이게 내가 원주에 가서 잘 할 수 있는 일이겠다, 생각한 거죠. 그렇게 ‘아트인바탕’의 초안을 만들었어요.


카페바탕

디자인 회사 아트인바탕이 먼저 생겼는데, 처음엔 이름을 ‘바탕’이라고 지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바탕이라고만 하면 여기가 디자인 작업을 하는지 뭘 하는지 모를 것 같아서 진입 장벽을 낮춰 앞에 ‘아트’를 붙인 거죠. 그렇게 아트인바탕을 먼저 시작하고 1년 반 정도 됐을 때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회사를 더 확장하고 사람들한테 쉽게 다가가려면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 계기가 된 게 박람회에 로컬 기념품이랑 홍보물을 들고 가잖아요. 부스에 오신 분들이 “이거 어디서 사요?” 물어보시는데 살 수가 없는 것들인 거예요. 다 비매품으로 나가는 거고 아는 사람한테만 알음알음 나가는 거라 답을 할 수가 없던 거죠. 우리가 만드는 로컬 콘텐츠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판촉물이 아니라 일상에서 오래 사용하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실질적으로는 행사 기간에 단기성으로 소모되고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일 년에 한두 번 하는 박람회장이 아니라 우리만의 오프라인 쇼룸을 만들면 좋겠다.’ 처음 생각은 그랬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일부러 시간 내서 여기까지 오게 하려면 처음부터 딱 쇼룸, 각 잡고 시작하는 것보다 편안하게 우연히 왔다가 ‘이런 데가 있네?’ 하면서 접근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카페를 열었어요.



처음부터 혁신도시 

카페 위치가 되게 중요하잖아요. 저희는 처음부터 원픽이 혁신도시였어요. 자연경관 따질 거 아니면 우리한테 유리한 곳을 선정해야 하는데, 저희 주 거래처는 관공서란 말이에요, B2G. 혁신도시 안에 한국관광공사를 비롯해서 11개의 공기업이 몰려 있어요. 

그곳 회사원들은 대개 점심시간에 밥 먹고 나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소비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죠. 그들이 삭막한 회색 건물들 사이에 있는 이곳을 우연히 들른다면 분명 다시 찾을 것이다, 하는 확신이 있었어요. 여기서 더 나아가서 비즈니스까지 연결되면 좋겠다는 게 큰 그림이었죠. 실제로 카페를 열고 손님으로 찾았다가 비즈니스로 연결된 사례가 꽤 돼요.


카페 안 오피스

전 제가 좋아하고 소비하는 브랜드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대학생 때 한참 싸이월드가 막 유행하던 시기에 ‘밀리미터 밀리그람’이라는 브랜드를 접했어요. 가면 쇼룸이 있고, 본인들이 만든 걸 판매하는 숍이 있고, 그다음에 오피스가 있었어요. 모든 게 한 공간에 결합돼 있는 곳이었는데 mmmg가 밀리미터 밀리그람의 약자거든요. 아주 작은 차이도 신경 써서 제품을 만들겠다는 브랜드였어요. 그게 너무 좋아서 나중에 공간을 만든다면 한곳에서 두루두루 경험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주엔 카페에 오피스가 있는 곳이 없으니까 차별화가 될 수도 있고요. 또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사는 게 아니라, 카페바탕이 아트인바탕의 디자이너들, 창작자들이 만든 것들로 꾸린 공간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아치형 문을 선택한 건 사무실을 비밀스럽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처럼 연출하고 싶어서예요. 



아트인바탕 직원들과 카페바탕

먼저 사무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이전 사무실이 15평 정도로 좁았어요. 만약 제가 사회 초년생이라면 이런 스타트업, 작은 사무실에 가기가 좀 불안할 것 같았어요. 지금은 공간이 훨씬 넓어졌고, 책상도 큼직해졌어요. 아이디어든, 널브러트릴 무언가든 맘껏 펼칠 수 있는 넓은 책상과 작업하기 편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저와 같은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거든요.

아트인바탕 직원들에게 카페 음료는 무료로 제공돼요. 작업할 때 머리가 아프거나 진도가 잘 안 나가면 카페에 나와서 하면 되고요.


원주에 내려와 처음 한 일

처음 시작하는 우리한테 누가 일을 맡기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알아서 만들었죠. 원주가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로 지정됐다고 하는데 문학을 느낄 기념품이 뭐가 있지, 했을 때 떠오르는 게 없는 거예요. 고민하다 박경리 선생님의 ‘작가의 방’ 패브릭 포스터랑 머그컵, 노트를 만들었어요.

당시 만든 것들을 원주시 기념품 공모전에 출품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게 씨앗이 돼서 일을 물고 오더라고요. 박람회에 나갔는데 원주시청 분들이 계시길래 저희가 만든 것들을 선물로 드렸거든요. ‘원주에 이런 업체가 생겼으니, 앞으로 저희 지켜봐 주세요.’ 하고 드렸는데 그분이 그걸 박경리 문학공원에 가져가신 거예요. 저희를 소개하고 소문을 내주신 거죠.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박경리 문학공원인데 어디 팀장님한테 이런 얘기를 들었다, 한번 일을 같이 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로 박경리 노트도 만들어서 납품했고, ‘한 컵에 원주’ 유리컵도 만들었어요. 컵을 만들고 나선 강릉, 철원 등 몇 개 지역 일을 하고, 소개를 받고, 했던 곳에서 또 의뢰를 주면서 일이 계속 들어왔죠.



관공서와 디자인 회사


이런 지역 굿즈들을 보면서 늘 궁금한 게 있었어요. 굿즈를 제작할 때 관공서와 디자인 회사가 각자 어떤 부분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고, 한 발 앞으로 내밀면서 합의의 과정을 거치는지요.

제작을 의뢰할 때 대부분은 본인이 뭘 원하는지를 잘 몰라요. 그걸 알게끔 제안해서 원하는 정답을 찾아내는 것, 그게 저희가 하는 일이거든요.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파악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래야 프로젝트가 산으로 안 가니까 서로 시간 낭비도 안 하고요. 원하는 걸 파악한 다음에 디자인 소개서라고 해서 ‘이런 식으로 제작이 될 거다’라는 걸 보여주는 서류를 엄청 정성스럽게 만들어요. 그걸로 OK가 나면 이제 제작으로 넘어가고요. 그런 식으로 흘러가죠.


그 과정에서 아트인바탕의 색깔이 옅어지기도 하나요? ‘이건 아트인바탕의 것이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리한 수정을 요구하거나 시안이 계속 바뀌는 경우도 있는지요.

다행히 저희는 그렇게까지 결과물이 뒤집어진 적은 없었어요. 이미 제안을 할 때부터 상대방이 좋아할 것 같은 것과 저희가 하고 싶은 걸 동시에 제안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 그 안에서 선택이 됐죠.

저희는 비매품이라도 잘 팔리는 상품처럼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그래야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쓸 거라고 생각해서 우선 제 마음에 들게 제작했어요. ‘문학의 방’ 패브릭 포스터도 제 방에서 쓰고 있고, ‘한 컵에 원주’ 유리컵도 잘 쓰고 있거든요. 



그게 굉장한 자신감인 것 같아요. ‘내 취향이 남들에게도 통할 것이다.’ 하는 게요.

처음부터 계속 거절을 당했으면 못했을 텐데, 심지어 저 회사 잘린 적도 있거든요. 디자인 일 하면서 실패 경험도 많은데 유독 로컬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었을 때는 거래처의 만족도가 되게 높은 거예요. ‘아, 내가 잘하는 건 이쪽이구나.’ 그렇게 작은 성취들이 쌓이면서 ‘이거는 좋아할 것 같은데?’ 하는 감이 조금씩 축적된 거죠.


지역에서 활동하는 로컬 디자이너, 로컬 디자인 회사, 로컬 00…. 이런 프레임은 어떤가요?

아직은 로컬이라는 프레임을 계속 갖고 가고 싶어요. 그런데 관공서에서 의뢰하는 지역 기념품들을 우리 거 생각하듯이 했지만, 정작 우리의 시그니처 제품은 아직 개발 중이라 범위를 좁혀 뭔가 특정한 걸 만들어야겠다고 생각 중이에요. 저희의 자체 상품은 일반 소비자분들을 위해 ‘쉼’과 관련된 제품이면 좋겠단 생각을 해요.


기록의 힘


SNS를 보니 다이어리든, SNS에서든 기록을 굉장히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디자인 일을 하거나 회사를 운영하면서 기록의 힘을 체감하시나요?

완전 완전 완전요. 메모를 너무 많이 해서 노트만 몇 권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전 제가 쓴 일기 보는 걸 되게 좋아해요. 관종 내지는 자기애가 강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기록하는 게 힘들 때 버티는 방법이었어요. 연애하면서, 회사 생활하면서 실패할 때마다 혼자 이런 공간에 앉아서 그림 그리고 글 쓰던 게 위로가 되어 줬거든요. 그 기록들을 시간이 지나서 보니 지금은 못 쓰는 글, 지금은 못 그리는 그림인 거예요. 아이디어든 끄적거림이든 기록을 계속 해왔고, 남아 있는 기록들이 어쩌면 지금의 바탕을 만들어준 거죠.



바탕과 지음


앞으로 카페바탕이든 아트인바탕이든 바탕이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제일 어려운 질문이에요. 왜냐하면 저희가 아직 3년이 안 됐더라고요. 2019년 7월에 시작하고 3년이 안 된 시점이어서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건 잘 못해요. 하지만 그건 있어요. ‘브랜드가 될 것이다.’라는 거요. 원주에서 로컬을 담든, 뭘 담든 뭔가를 계속 만들어가는 회사가 있고, 그게 ‘바탕’이라는 것을요.


그럼 지음 님은요?

카페바탕을 오픈하면서 공간이 가진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느꼈어요. 바탕을 창작자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잘 키워서, 평생 창작자들과 재미난 프로젝트 만들면서 살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계를 제안하고 싶다는 지음은 카페 여기저기에 영감과 영향을 받은 책들을 두었다. 2021년의 최대 수확이라고 말하는 모빌스 그룹*의 저서 《프리워커스》와 《프리워커스》에 소개된 책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 사이사이엔 바탕의 노트와 펜이 자연스레 섞여 있었다. 

집에 돌아가 지음과 내가 동시에 좋아하는 모빌스 그룹의 책과 작가이자 마케터이자 문구인文具人 김규림의 책 그리고 지음이 만든 ‘바탕’의 것들을 함께 둘 생각이다. 내게는 이들이 걷는 길이 그리 달라보이지 않아서, 그게 어떤 길이든 응원하고 싶어서.


*모빌스 그룹: 일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모베러웍스’라는 브랜드와 ‘모티비’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인터뷰어: 미자 리 

인터뷰이: 지음

카페바탕

아트인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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