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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준 Apr 20. 2019

나는 이렇게 자료를 관리한다.

[이형준의 모티브 68]

Scene #1

팀장과 팀원이 마주 앉았다. 팀장은 질문을 하고 팀원은 대답을 한다. 팀장은 답변을 노트북 자판으로 타닥타닥 두드리며 적어 넣는다. 책상 옆에 놓여있는 자료를 보여주며 팀원의 행동을 점검한다. 다시 답변을 적어 넣는다. 팀장의 코칭 장면이지만 마치 형사가 범인을 취조하는 모습이다. 팀원은 팀장의 가차없는 질문에 주눅이 들어 보인다.




Scene #2

팀장과 팀원은 대화를 나눈다. 팀장은 커피잔을 조물락 거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웃으며 농담이 오간다. 이야기는 맛집 이야기에서 고객사, 회사 정책, 육아의 어려움 등 다양한 주제가 흘러간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모호하고, 그 안에서 실천하기로 한 부분을 어떻게 관리할지 모르겠다. 팀장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팀장이 팀원들과 이야기하면서 대화한 내용을 잘 관리하는 것은 효과적인 코칭을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취조하는 듯한 분위기에서 대화하는 팀원은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워지고, 속내를 충분히 이야기했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 팀장을 보면 괜한 이야기했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리더가 되면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미팅도 많아지고, 직원과의 대화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이때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처리하지 못하면 일은 많이 하되 생산성은 나오지 않는다.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 선배가 가르쳐주었던 것은 파일 관리다. 서류를 어떤 분류로 모아야 하고, 서류철은 어떤 박스에 넣어야 하고, 박스가 차면 캐비넷 어디에 넣어야 하며, 캐비넷이 차면 어떤 순서로 버려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기준은 '많이 쓰는 데로, 찾기 편하게, 빠지는 것 없이'였다. 이렇게 정보를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덕에 자잘한 고객사 11개를 한꺼번에 관리하는데도 크게 빵구난 기억은 없다.




얼마 전 후배가 어떻게 매주 하나씩 칼럼을 쓸 수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핵심은 자료 관리다. 글을 쓰려면 글감이 있어야 하고, 그것에 어울리는 정보와 소재들을 찾아내야 한다. 자료들 검색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면 당연히 글을 쓰는 시간이 줄어든다. 좋은 자료를 많이 모아 놓아야 하고, 주제를 잘 잡아야 하고, 이와 관련된 소재들을 빨리 찾아야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획서든 글이든 그 방법은 같다.




지금 활용하고 있는 개인적인 경험과 방법을 공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료 정리는 크게 자료수집, 관리, 활용의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A. 자료 수집

자료수집은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으로 한다.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노트를 활용한다. A4지의 반 만한 사이즈 노트(회사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내가 진행하는 미팅과 대화의 모든 내용을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다. 대화를 할 때는 말의 속도를 못 따라가니 대화에 집중하고 키워드 위주로 적어 놓는다. 대화가 끝나면 미처 못 적은 부분 중에 중요한 부분은 다시 채워 넣는다. 


손으로 쓰게 되면 자유롭다. 글만 적는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컨셉, 그림, 흐름도 등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원을 그리거나 줄을 그으며 강조해 놓는다. 중간중간 생각나는 힌트나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적어 넣는다. 노트를 쓸 수 없는 장소나 상황에서는 스프링 수첩을 활용해서 적어 놓는다.




디지털 방식으로는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서 활용한다. 개인적으로는 에버노트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디지털의 좋은 점은 관리가 쉽고 검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주고받은 파일 이외에도 손으로 노트에 적은 내용은 카메라로 캡처해 놓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의미있는 자료는 디지털 데이터 베이스에 모두 넣는다. 인터넷을 보다가 발견한 좋은 자료는 모아 놓는다. 분류하기 어려운 자료는 고민하지 않고 일단 한 폴더에다 다 넣어놓는다.



© Medium




B. 자료 관리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앞서 말한 노트와 파일철로 관리한다. 노트는 시간의 흐름으로 정리한다. 새로운 주제나 미팅 때마다 새로운 페이지에다 적는다. 그래야 한 페이지씩 캡처할 때 주제가 섞이지 않는다.


일하면서 필요한 자료는 고객사별로 파일철을 만든다. 요즘에는 모든 자료를 다 출력하지 않는다. 종이도 묶어 놓으면 무겁고 자료 찾기도 어렵다. 다시 봐야 할 중요한 자료만 뽑아 놓는다. 일을 진행할 때 중요한 자료가 정리되어 있으니 자료를 찾을 때 파일철만 열어보면 되고, 컴퓨터로 무언가 작업을 할 때도 옆에 놓고 보면서 작업할 수 있으니 편하다. 고객사에 가거나 일을 할 때면 해당 파일철만 들고 가면 자료를 바로 찾아 응대할 수 있다. 이 파일철에 없는 자료는 컴퓨터 파일 안에서 찾으면 된다.




디지털로 관리할 때는 크게 고객사와 사람의 기준으로 나누어 관리한다. 고객사 폴더로 자료를 넣을 때는 세부 폴더를 따로 만들지 않으려 한다. 예전에는 미리 주제별로 나눠서 관리했는데 그렇게 되면 한 번 더 클릭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일단은 해당 회사 자료는 한 폴더에 넣어 놓고, 자료가 많아져서 분류할 필요가 있을 때만 추가로 폴더를 만든다.


코칭을 하는 대상자들은 개인을 기준으로 만든다. 한 페이지에 그 사람과 대화하면서 적어놓았던 내용을 카메라로 캡처해서 순서대로 모아 놓는다. 이렇게 하면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노트를 뒤적이지 않고도 그 사람과의 대화록을 모아놓은 페이지만 쭉 읽어보면 그간의 있었던 일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그다음 대화를 나눌 때 다음 단계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팀장들이 팀원을 코칭 한 이후에 내용을 적어서 관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구분하기 어려운 자료는 한 폴더 안에 다 넣어 놓는다. 자료를 살펴보다 분류해야 할 자료가 보이면 그때그때 해당 폴더로 옮긴다. 모든 자료를 완벽하게 정리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 Prognoz




C. 자료 활용


자료를 찾을 때는 둘 중에 편한 방법으로 찾는다. 날짜를 알고, 분명한 주제를 기억할 때는 노트를 넘겨본다. 금방 찾을 수 있다. 방대한 자료 중에 뭔지 모르지만 필요한 것을 찾아야 할 때는 데이터 베이스 안에서 찾는다.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에버노트 안에 있는 자료는 넣을 때 내가 직접 적어 넣었거나, 한 번은 읽어보고 캡처해 놓은 자료이기에 제목만 봐도 대충 어떤 자료인지 알 수 있다. 구글로 검색하려면 일일이 읽어봐야 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미 아는 자료이기 때문에 제목과 처음 몇 줄만 읽어봐도 자세히 봐야 할 자료인지 스킵 해도 되는 자료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이렇게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보고도 자료가 없으면 그때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해당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정보 소스를 뒤져본다.


키워드도 떠오르지 않고, 그냥 무언가가 필요하다 싶을 때는 온갖 자료를 넣어둔 폴더를 쭉 훑어본다. 분류 없이 일이든 관심사든 흥미든 어느 정도 임팩트가 있는 자료를 모아 놓았으므로 그것들을 살펴보다 보면 자료끼리 연결고리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엉뚱한 조합이 아이디어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 infortrellis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을 함께 관리하면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손으로 적은 것은 기억이 잘 된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눌러 쓴 것은 머릿속에 더 큰 자극을 주어 키보드 톡톡 치며 적어 놓은 것보다 훨씬 잘 기억된다. 글씨체 모양이 모두 조금씩 다르므로 그 글씨체만 봐도 그때의 감정이나 생각 등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자료를 많이 적고 활용하다 보면 사람마다 일마다 유형이라는 것이 보인다. 이런 사람은 이런 스타일이고, 이런 강점이 있구나, 이런 종류의 일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는 맥락이 보인다. 또한, 어떻게 자료를 관리하는지 틀이 잡혀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해당 정보를 시스템에 넣어두기만 하면 되므로 머릿속은 훨씬 더 편하게 된다. 사실 기억도 자신만의 체계가 있으면 더 많이 기억된다.




정보를 관리하고 활용하는 것은 창고를 관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저장해 놓은 것이 없으면 가져다 쓸 것도 없다. 처음에 자료가 별로 없을 때는 그 유용함을 잘 모른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자료들을 꾸준히 넣어두고 어느 정도 양이 쌓이면 그때부터 많이 가져다 쓰고 조합해서 쓸 수 있으므로 효용가치는 높아진다. 주로 자신이 관심 있는 내용을 모아두기에 시간이 지나면 보물창고가 된다.




몸으로 뛰는 형사들도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적어야 한다. 잘하는 냉면집 주방장의 비법도 한자 한자 적어 놓은 노트에서 나온다. 고수나 달인들은 모두 해당 일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에서 컴퓨터로 서류를 만들면서 일하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어찌 보면 이 정보 관리 활용 시스템이 자신의 생산력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자신의 능력인 것이다. 말로만 일하는 분들에게는 꼭 말해주고 싶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이형준의 모티브 68] 나는 이렇게 자료를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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