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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DA Feb 07. 2024

아낙네의 드레스를 입은 왕비

; Marie Antoinette



1783년, 매년 루이 16세의 축일인 8월 25일에 맞춰 개최되는 대규모 예술 행사 ‘살롱 뒤 파리: Salon du Paris’에 한 여인의 초상화가 전시되자 프랑스 사회는 들썩였다.



Chemise à la reine, Élisabeth Vigée Le Brun, Hesse House Foundation, Germany, 1783


신고전주의풍의 나른하고 가벼운 드레스 차림새로, 정원에서 따온 꽃을 손질하고 있는 듯한 여인이 묘사된 초상화는 딱히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초상화의 주인공이 왕비라는 것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았을 땐 시골 소녀풍의 낙천적이며 목가적인 느낌을 선사하는 여인의 차림새는, 18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속옷만 입은 채 정신도 함께 집에 두고 나온 듯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렇게 프랑스 궁정에 반향을 일으켰다.





달라진 삶의 가치

왕비의 생각과 스타일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이와 관련이 있다. 앙투아네트는 8년 만에 고대하던 임신을 한 뒤 살이 오르자 몸에 맞는 드레스가 필요해졌다. 당시 왕비의 의상을 담당하고 있던 로즈 베르탱은 왕비를 위해 파스텔 톤 색상의 얇고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라인의 실크 드레스인 '왕비의 드레스: Robe à la Reine'를 만들었다. 가볍고 몸을 압박하지 않은 새로운 스타일의 드레스가 마음에 들었던 왕비는 출산을 한 뒤에도 이러한 유형의 드레스를 매우 선호했고, 리더의 취향에 따라 궁정 여인들의 드레스는 스타일에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왕비가 첫 출산을 한 뒤 여인으로서 성숙하고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풍기는 시기에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화가 '비제 르 브룬: Vigée Le Burn'은 퐁텐블로의 야외에서 왕비를 처음 보았을 때, 하얀 드레스를 입은 한 무리의 여인들 사이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와 하얀 드레스 차림의 눈부신 왕비가 님프들에 둘러싸인 여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그 순간 왕비는 젊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된 앙투아네트의 세상은 달라졌다. 남편과의 관계 또한 발전함에 따라 성숙하고 신중해진 왕비는 오락과 유흥에 덜 의존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은 왕비는 궁정에서의 위신 또한 달라졌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더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의 가치가 달라진 앙투아네트는 단순하고 사적인 삶을 꿈꿨다. 자신만의 작은 성 '쁘띠 트리아농: Petit Trianon' 정원의 자연에 파묻혀 있기를 선호했고, 그 속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가벼운 모슬린으로 만든 가운을 일상복으로 입었다. 코르셋과 파니에로 받쳐진 화려한 궁정드레스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단순해진 형태의 모슬린 드레스는, 앙투아네트가 지향하던 단순한 삶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과 매우 닮아 있었다.



카리브해 섬 여인들의 드레스: Robe en gaulle

서인도 제도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생도맹그에서 오는 ‘흑인’을 보기 위해 부둣가를 찾은 프랑스인들은, 함대에서 내리는 흑인노예들이 입고 있는 단순한 형태의 흰색 리넨 가운에 충격을 받았다. 왕비의 모슬린 드레스는 그렇게 프랑스에 소개되었다. 드레스의 밝은 흰색은 특히 생도맹그 지역만의 특징이었다. 열대 기후의 덥고 습한 날씨에 적합했던 리넨 드레스는 서인도 제도의 여성들이 입던 헐렁하고 편안한 스타일의 가운으로, 서인도 제도에 정착한 프랑스 농장주들의 아내와 딸들 -크레올* - 이 정기적으로 프랑스를 방문할 때 입고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파리에 수입되기 시작했다.



*크레올인: Créole - 서인도 제도나 남아메리카의 식민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한 유럽인(특히 스페인이나 프랑스 사람)의 자손들을 일컫는 말



Agostino Brunias, 서인도 제도 도미니카의 리넨 시장, 1775


드레스는 처음엔 ‘골 가운: Robe en gaulle’ 라 불렸는데, 왕비의 초상화로 논란이 되며 유명해지자 사람들은 ‘골 가운’을 비하하여 ‘왕비의 슈미즈(속옷): Chemise à la reine’이라는 새로운 별명으로 불렀다. 프랑스 상류층 여인들은 주로 리넨보다 더 부드럽고 얇은 값비싼 모슬린으로 드레스를 만들어 입었는데, 속이 비칠 정도의 얇은 천으로 된 드레스의 형태가 당시 속옷으로 입었던 슈미즈와 비슷했기 때문에 그러한 별명이 붙었다.

당시 사회적 통념상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은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것보다 더 음란하게 여겨졌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는 잘 때 알몸으로 자는 것이 사회적 관습이었을 정도로 신이 창조한 인체자체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한 18세기 유럽인들의 눈에 여전히 셔츠와 슈미즈는 나체보다 훨씬 더 외설적인 ‘사회적 나체’에 해당되었다. 사회는 크레올 여성들의 복장을 음란하게 보았기 때문에 왕비가 이러한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한 것은 하나의 스캔들이 되었다.



부적절한 왕비의 초상화

앙투아네트가 입고 있는 드레스에 사용된 직물인 ‘모슬린’은 인도와 카리브해 지역 또는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값비싼 수입품이었다. 드레스에 주로 사용된 모슬린은 매우 섬세하고 가벼웠으며 속이 비칠 정도로 투명했다. 당시 프랑스는 리옹을 중심으로 실크산업이 국가차원*에서 장려되었는데, 국모인 왕비가 국산품이 아닌 외국에서 수입된 값비싼 원단으로 만든 이국적인 디자인의 드레스를 유행시킴으로써 프랑스의 실크산업에 해를 가했다며 분노했다.

사람들은 수많은 실크 노동자들을 굶어 죽게 만든다며 금방이라도 산업이 무너질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고, 이는 당시 기울어져가는 프랑스 경제로 인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 화가는 약 20년 후, 그때를 기억하며 회고록에 이렇게 남겼다.



… 악의적인 사람들은 왕비가 슈미즈 -속옷- 를 입고 그려져 있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으며, […] 당시 왕비에 대한 중상모략은 이미 난무했다.




*상류층의 사치로만 보이는 로코코의 경박한 패션은 사실 프랑스를 유럽 패션의 수로도 만들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실시한 경제학에 기초한 것이었다. 루이 14세의 장관 콜베르는 보호주의 정책을 실시해 프랑스만의 패션 산업을 육성하여 기술적 진보와 번성으로 이끌었다.



루이 16세가 통치하던 시기의 프랑스는 태풍 앞의 촛불처럼 다방면으로 불안하고 위태롭기 그지없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의 시대였다. 민중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져 갔지만, 왕실과 귀족들은 사치스러운 자신들의 삶을 놓지 않고 있었다. 왕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초상화는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왕비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지 않고 친구들과 궁에서 역할놀이를 하며 지낸다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왕비의 행태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가 되어주었다.

초상화는 살롱에서 즉시 내려졌고, 화가는 급히 소환되었다. 왕비의 초상화는 재작업에 들어가 전시회가 끝나기 전 새로운 초상화로 대체되었다.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비에 걸맞은 리옹에서 생산된 고급스러운 실크와 프랑스산 레이스로 만든 궁정복을 입고 화폭에 등장해 여론을 잠재웠다. 터번을 장식하고 있는 커다란 타조 깃털은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부의 상징으로 프랑스 제국의 정복 범위를 암시해 준다. 이렇듯 왕족의 초상화는 작은 소품 하나에도 의미를 담아 표현되었다.



대체된 초상화, à la Rose, Élisabeth Vigée Le Brun, 1783



비록 왕비에게는 사회적 비난을 선사했지만,  슈미즈 드레스는 유럽 정복에 성공했다. 유행에도 불구하고 천대를 받았던  서인도 제도 여성들의 드레스는, 유럽에  정착하여 코르셋과 스커트 지지대로 억압받던 여성들의 몸에 잠시나마 자유를 선사하며 유럽 사회를 정복했다. 프랑스혁명을 지나며 여성들의 평상복이 되었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면서 엠파이어 스타일로까지 이어졌다. 조세핀 보나파르트가 앙투아네트 왕비 이후 프랑스의 황후가 되면서 엠파이어 스타일의 슈미즈 가운이  시대를 풍미했는데, 조세핀은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섬 출신의 '크레올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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