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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어느 주말의 우리

by 이한얼






"맞다. 나 할 말 있었어."


"뭔데?"


"나는 내 길을 잘 걸을 거야. 예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최소한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서 걸을 거고, 남을 위해서 이 길을 포기하거나 고집하거나 그러지 않을 거야."


"엥? 갑자기?"


"우리 한 달 전에 했던 말, 거기에 대한 내 대답. 그때는 우느라 똑바로 말 못한 것 같아서. 아! 글 피드백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날 전화할 때 우느라 미처 못한 그냥 내 말이야!"


"오. ㅋㅋ 근데 왜 한 달이나 지나서 말해?"


"당신이 그 내용을 그냥 블로그 일기 같은 데에 올렸으면 아마 그 다음 주쯤에 당신에게 카톡 했을 거야. 당신 저녁 다 먹고 배부르고 나태하게 있을 만한 시간을 노려서, '난 내 길을 갈 거야. 걱정 마. 고마워.'라고. 그렇게 내가 정말 전하고 싶은 딱 한 줄만 보냈겠지."


"왜? 그냥 오후 4시 반쯤 카톡 우다다 보내지."


"…선생님, 저는 마조히즘이 아니에요. 제가 왜 제 발로 지옥불에 걸어 들어가겠어요. 그때면 당신 하루 중에 가장 허기지고 예민할 때 아니야?"


"맞아. ㅋㅋ 게다가 가장 집중력 좋을 때지. 말 거는 사람도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중이 아니라면 어지간하면 그때는 피하는 게 좋을 거야."


"내 말이. ㅋㅋ 그러니 보내도 저녁에 가장 느슨할 때 보냈겠지. 하필 브런치에 글로 올려가지고 즉각적으로 말할 수도 없어서 일주일쯤 기다렸다가. 근데 어차피 빨리 말해야 하는 내용도 아니고, 내 입장표명이나 의지선언 같은 거라 언제 해도 되니까 차라리 충분히 시간 두고 말한 거야. 최대한 피드백 같지 않게."


"그 피드백 되게 신경 쓰네. ㅋㅋ"


"내가 그에 대해 실수한 지 세 달도 안 지났으니까 당연히 조심하게 되지!"


"ㅋㅋ 역시 성실해. 아무튼 그렇군."


"혹시 내 입장표명에 당신도 할 말이 있어?"


"‘우선 네 길을 걷는다니 다행이다’가 하나.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에 여러모로 신경을 쓴 티가 나서 고맙다’가 다음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정도까지 염두에 두고 행동할 수 있으면 이렇게까지 많은 간격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니 다음부터는 더 짧고 쉽게 해도 괜찮다’가 하나."


"…끝?"


"으음,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되긴 했는데, 이 정도 하는 사람이면 괜찮겠지. 지난번 나는 '평범하게 살지 않으려는 결심'과 '다시 평범하게 살 결심'을 둘 다 응원한다고 말했잖아. 그래도 역시 '평범하지 않게 살 결심'을 조금 더 응원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없는 길이라 더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기로 시도하는 일조차 쉽지 않기에 더 그래. 그리고 이제 와서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네가 더 이상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 테니까. 이리 말했다고 더 하거나 덜 하지 않을 거 아냐. 네가 길은 걷는다면 그것을 정하는 이는 오직 너뿐이니까."


"그렇지. 당신이 어느 쪽을 더 응원한다고 해서 내가 그쪽으로 더 염두에 두지는 않겠지."

"그래. 그 모습이 나에 대한 어떤 반발심 때문이 아니라 목적의 우선순위에 따른 거니까 너는 그럴 거야. 그럼 내가 지난 십 수 년 간 너에게 수 백 번 나 자신을 증명했기에 네가 나를 마음 놓고 응원할 수 있었듯이, 네가 그럴 수 있는 수준임을 스스로 증명한 순간 나 역시 마음 편히 너를 응원할 수 있어. 그 전까지는 응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 자격은 누가 쥐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얻어내는 거니까. 네가 지금 나를 한 나라의 왕으로든, 한 세계를 가진 주인으로든 인정하고 있다면 그 자격은 네가 나한테 준 게 아니잖아. 내 스스로 이룩하여 얻어낸 거지. 자격, 권위, 존경 등등 다 그렇지. 세계의 주인이자 한 나라의 왕이 되는 가장 첫 번째 시작은, 외계와 타국의 영역부터 존중하는 거야. 온갖 눈치를 다 보느라 서로 불편하게 만들면서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돼서 무시하는 행동을 누구도 존중이라 부르지 않지. 네 세계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듯, 다른 세계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우리가 방금 나눈 이 짧은 문답에서도 너는 나를 충분히 존중했어. 나에 대한 너의 애정과 배려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그러니 이제 나도 세계의 주인이 될 준비를 마친 너를 마음 편히 응원할게."


"고맙다? 라고 하는 게 맞겠지? 응원해줘서 고마워?"


"뭐든. ㅋㅋ 지난 한 달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나 보네. 그저 기다리는 데만 쓰지 않고 충분히 고민했구나. 그래서 너의 대답을 들은 대상으로서 기쁘다. 앞으로도 힘내. 도움이 필요할 땐 도울게. 네가 그 길을 걷는 동안, 나와 너의 길이 평행이기를 바라. 나는 동지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있으면 좋지."






2025.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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