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빠지면 진정한 관계가 보인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의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아니, 특별한 관찰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젊은 시절 은퇴하시는 분들을 가까이서 본 경험들이다.
C 교수님은 이 분야에서는 유명하신 분이다. 학문적 성취도 많고,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수업 시간에는 언제나 열정이 넘치셨고, 방송에도 제법 많이 나오셨어서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학문 특성상, 산에 가시는 일이 많았는데, 산행을 한다고 하시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교통 제공, 식사 제공, 동행 등등. 그러던 교수님께서 은퇴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레임덕이 다가왔다. 그때 나는 졸업을 코앞에 둔 4학년 학생이었다. C 교수님이 계시던 실험실에서 졸업 논문을 준비했었기 때문에 교수님과는 가까이 지냈다. 특히, 외부의 발길이 뚝 끊기 후로는 교수님은 학생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셨다. 사실 교수님은 호랑이 같은 무서운 분이셨다. 당시 일부 강의실에는 분필과 칠판이 있었는데,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이 있으면 칠판지우개를 던지기도 하셨다. 명중률이 낮아서 괜한 피해자가 생기곤 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은퇴 즈음하여 교수님은 정말 인자해지셨다. 나는 교수님이 계신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점심때마다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맛집들을 돌아다니며 함께 식사하곤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 문득 나에게 말씀하셨다.
"J야, 인생이 참 외롭다."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왜였을까? 그런 말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젊었고, 그런 인생의 회한을 나누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관계인데도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정말 외로우셨던 것 같다. 아직 너무 건강하셨고, 은퇴에 대한 아쉬움이 커서 더 그러셨을 수도 있다. 수업 시간에는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강의하셨다. 2시간 정도는 쉬지 않고 강의하시곤 했다. 그런 교수님의 모습을 보면 은퇴하신 분이라는 것이 와닿지 않을 정도였다. 교수님은 은퇴 후 학교 측의 배려로 작은 방을 얻으셨다. 거기에 머무시며 강의는 계속하셨다. 하지만 당연히, 주변의 대우는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그래도, 교수님께 남아 있을 곳은 결국은 학교였던 것 같다.
한창 업무능력이 상승하던 시절, 승진과 함께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때 마지막 6개월을 보좌하게 된 Y상무님이 있었다. 회사에서 명예롭게 은퇴를 하셨고, 나는 그 마지막 한 달은 은퇴식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직장인으로서는 누릴 것을 다 누리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Y상무님은 제법 어렵기도 하고 때론 무서운 분이셨는데, 은퇴즈음에 해서는 역시, 많이 인자해지셨다. 더 많이 들어주시고, 너무 세게 주장하지도 않으셨다. 은퇴식은 화려했다. 가족분들을 비롯하여 많은 직원분들, 그리고 글로벌의 여러 리더분들도 초대되어 함께했다. 지금까지 직장 생활하면서 그런 은퇴식은 본 일이 없다. 정말 명예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사실 은퇴식이 아니었다. 그분이 떠나시고 나 후의 직원들의 반응이었다. 직원들이 모이면 Y상무님에 대해 얘기하곤 했는데, 대부분의 기억은 불평과 불만이었다.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못했던 일들, 불필요했던 일들, 받았던 억압들. 얼마나 불만이 쌓였었는지 6개월이 지나도 그런 얘기들이 줄곧 이어지고 했다. 당연히, 그분의 연락을 받아도 반갑게 회신을 하거나 하는 직원들은 없었다. 대부분은 연락이 오지 않기를 바랐고 또 연락이 와도 어느 정도 핑계로 회피하곤 했다. 나도 마지막을 보좌했던 부하직원이었지만, 은퇴식을 끝으로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업무적 지식과 능력은 인정받으셨지만, 덕을 쌓지는 못했다는 것이 너무도 분명하게 보이는 시간이었다.
"J! 올해가 가기 전에 팀 회식을 했으면 하는데, 다음 주 월요일 어때?"
"아, 제가 사장님하고 점심 약속이 있어요."
"응? S사장님하고? 단 둘이? 오, 어떻게 나도 갖지 못한 기회를 가졌대?"
나도 사실 많이 갑작스럽다고 느꼈다. 사실 홍콩 S사장님과 나눌 말들이 그리 많지 않다. 사장님은 여기에서 11년을 근무했다. 그리고 12월에 떠난다. 나는 내년 3월까지다. 둘이 업무적으로 얽혔을 때, 사실 좋은 기억은 없다. 너무 handling 하기 어려운 고객이었다고 해야 할까? 이 분은 여기에서 나름 유명한 분이다. 주장이 매우 강하신 분이다. 작년 즈음, 교육을 하다가 한국의 '답정너'라는 단어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답정너 is a Koeran expression saying that when a leader has an answer in his/her mind already and keeps asking questions to others until he/she gets the answer."
설명을 하고 있는데, S사장님이 불쑥 말을 던지신다.
"That's what I'm always doing."
순간 당황했다. 좋지 않은 예시로 설명하며 소통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들어오실 줄이야. 장점도 많은 분이시지만, 소통에 있어서는 참 어려운 분이시다. 그런 무서운 분이 몇 달 전부터는 많이 누그러지셨다. 사실 퇴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고, 그게 언제일지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즈음부터 나에게는 더없이 친절해지셨다.
식사를 할 때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 나의 직장생활, 가족사까지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나의 상황을 걱정하며 물어주셨다.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홍콩에 남을 것인지, 아이들과 아내의 상황은 어떤지, 내가 도와줄 것은 없는지 등등. 나이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비슷한 처지에 있다 보니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진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이야. 회사에 있을 때는 내가 직급이 더 높으니 돈을 더 많이 받았을 뿐이지, 그거 빼면 다 똑같은 거 아니겠나."
직급은 신분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S사장님께 직접 들으니 사실 조금 더 놀라웠다. 이 분은 이 사실을 그동안도 알고 계셨을까, 아니면 최근에 와서 새롭게 깨달으신 걸까?
권력과 공감능력은 반비례한다.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실험으로 증명됐다. 퇴사든 은퇴든 모두 기존의 조직에서 가졌던 나의 모든 권력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더 사람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꼭 남에게만 적용할 말은 아니다. 나 스스로도, 퇴사 통보를 받은 이후에 내 아이들에게 더 너그러워졌다. 김창옥 교수는 '권위는 나의 권면이 상대방에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은 높이고 힘은 빼야 한다.'라고 했다.
이 전 회사에 있었을 때 일이다. 영업부 지점장님들 몇 분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중 아래 질문을 넣은 적이 있었다.
"회사를 떠나시면, 후배들에게 또는 동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잠시 생각에 잠긴다.
"퇴사 후에도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능력과 성취를 남기고 싶다고 답하는 지점장님은 없었다. 모두 다 관계에 대한 답, 인간적 자취를 남기고 싶어 했다.
퇴사 통보를 받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됐다. 많은 직원들이 함께 통보를 받았기에 그나마도 공감과 위안이 이루어지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더 다행인 것은, 많은 분들이 위로의 말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다는 점이다. 정말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