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까
Go with the flow...
흐름에 순응하며 가는 것.
홍콩에 와서 직원들과 자주 하는 말이다. 회사에 이런 일이 또 저런 일이 있었다고 수군수군 대다가 헤어질 때 하곤 했다. 순응하며 사는 삶의 반대는 무엇일까? 야망을 추구하며 하는 삶일까? 야망 까지는 아니더라도 목적을 추구하며 사는 삶? 그러면 순응이라는 것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비겁한 변명일 뿐일까?
......
문득, 이런 생각 자체가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부유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또는 어느 산속에서 자족하며 사는 자연인에게는 이런 고민 자체가 의미 없을 것 같다. 이 발상 자체도 사실은 비교와 경쟁적 사고의 산물일 뿐이다.
퇴사가 불안한 것은 당장 생기는 경제적 수입의 감소 때문만은 아니다. 직위의 하락이나 스스로의 쓸모가 낮아지는 느낌, 이런 것들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시선에 대한 부담 또한 있다. 승진과 성공이 자랑스러운 것은 정확히 반대로 이런 욕구들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 전 글에서도 적었듯이,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수입으로, 사회적 위치로 메기는데 익숙하다. 존재로 인정받고,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를 지닌다는 말, 숱하게 듣지만, 그저 귀 뒤로 흘러갈 뿐이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위치와 수입으로 자체를 메긴다.
홍콩 공항에서 출국 심사를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바로 옆줄에 한 가족이 서있었다. 3살 남짓한 어린 여자아이가 아빠를 올려다보며 두 팔을 활짝 벌린다. 아빠의 얼굴을 보았다. 세상 고민 없는 행복한 표정으로 번쩍, 어린 딸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팔에 안는다.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였다.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 부모에게 기쁨이 되었다. 먹고 자고 울고 싸기만 해도 한없이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가치가 측정되기 시작한다.
말은 몇 살 때 했대? 한글은 몇 살 때 뗐대?
영어는 언제 시작했대?
공부는 잘 한대?
대학교는 어디로 갔대?
직업이 뭐래? 어디에 취직했대?
얼마나 번대?
결혼은 했대?
집은 있대? 어느 동네래? 몇 평 이래?
아이는 낳았대?
살다 보니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 것을 많이 본다.
둘째는 낳았대? 셋째는?
아이들은 공부 잘한대?
아이들은 무슨 일 한대?
...
적어도 내 세대에서는 이런 질문들이 대를 이어가는 것 같다. 도대체 언제 끝날런지..... 때로는 부모도 세상의 이런 잣대에 편승해 아이들을 닦달한다.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홍콩에서 살아보니, 꼭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비슷하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피로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달리고 달리고 달리다가, 결국에는, 어느 날 다 죽는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이야 말로 절대불변의 진리다.
이제 막 70을 넘긴 한 여인이 있다. 시골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했다. 남자는 촉망받는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너무 이른 나이에 퇴출됐다. 여인은 생계를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 쉬는 날 없이 이른 새벽부터 추워도 더워도 항상 시장에 갔다. 그렇게 30년이 넘게 장사를 하는 동안 손은 부르텄고, 몸 구석구석에 아픈 곳들이 생겼지만 그래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자녀들에게 신경을 많이 쓸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자녀들은 바르게 잘 자랐다. 평범한 남자들을 만나 결혼했고 아이들을 낳아 평화롭게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여인은 일 년 전 은퇴를 선언하고 가게를 정리했다. 이제 남은 여생을 즐기기로 했다. 부자는 아니지만 부족함은 없었다. 그런 그 여인이 정말로 잘한 것이 하나 있었다.
사는 동안 주변인들을 정말 많이 도왔다. 형제에게 어려움이 있어도, 친척 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어도, 친구들에게도 지인들에게도 소소했지만 많이 베풀고 돕고 응원했다. 은퇴 후에 그 보상이 돌아왔다. 형제, 친척, 친구 그리고 지인들로부터 돌아오는 친절과 환대다. 어디를 가도 맞이해 주는 사람이 있고, 함께 놀러 다닐 친구와 지인들이 있다. 마음을 터놓고 즐겁게 대화할 사람들이 있다. 어떤 고민도 없고, 무엇을 해도 무리하지 않는다. 여전히 베풀고 나눈다. 소소한 즐거움들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는 돈이 없어서, 누구는 건강이 나빠서, 누구는 정신적인 문제로, 누구는 부부관계로, 자녀와의 갈등으로 각자가 다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돈이 많아도, 심각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일률적으로 부자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사는지...... 인간은 어쩔 수 없다. 건강을 잃어봐야 건강이 중요한 걸 깨닫고, 관계를 잃어봐야 관계가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지금 누리는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지 잃어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는 인간은 별로 없다.
Go with the flow.
억지로 무리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꿈을 꾸고 방향을 잡아서 물길을 잘 선택해야 하는 것 같다. 물길을 선택하고 나면 flow가 나를 인도할 것이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돛도 세우고 노도 젖고, 구멍 나면 때우기도 하면서 그렇게 flow를 따라 항해하며 사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PS: 홍콩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주저리주저리 적어봤습니다. 한국에서 여러 지인들을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했습니다. 사건은 퇴사이지만 주제는 다음 직장이 아니라 인생이었습니다. 퇴사를 앞두고 다음을 생각할 때에 단순히 다음 직장을 구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장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한 업(業)으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들이 듭니다. 두서없지만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