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07
처음엔 지방에 취재를 가던 강릉행 KTX 안에서였어요. 읽다가 10페이지만에 책을 덮고 말았죠. 일하러 가는 도중 막간의 틈을 이용해 읽기엔 담고 있는 내용이 너무 아파서.
두 번째는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러 서울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였습니다. 각 잡고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읽었음에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다면 울어서 못생겨진 얼굴을 누군가에게 들킬 뻔했답니다. 그렇게 1시간 남짓, 저는 속절없이 1980년 5월의 봄 광주 한복판으로 끌려들어갔어요.
세번째는 남편과 제주 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습니다. 마침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울지 않으려고 기를 썼음에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화장이 들뜨고 코끝이 빨개졌어요.
'너'로 시작해 '나'로 끝나는,
1980년 5월 광주를 아프게 회고하며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지,
그때 죽은 이와
살아 남았으나 죽은 것과 진배없는 이의 삶을
촘촘하게 복원하는 소설.
시적인 표현으로 재현한 역사의 한순간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밀물처럼 가슴속 깊이 흘러 들어옵니다.
눈물로, 아픔으로.
책 뒷면에 쓰인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사.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
한강 님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처럼 적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네요.
그리고 마지막 장, '눈 덮인 램프'에서 한강 본인과 오버랩되는 소설 속 화자 '나'에게 소년의 형이 한 말.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합니다.
한강 님은 그 어려운 부탁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증명해냈습니다. 그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했어요, 아주 충분히!
제가 뽑은 이 소설의 가장 아픈 대목 한 구절.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134p, '쇠와 피'에서
아마도 아주 오래도록 이 책이 준 감동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