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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Apr 20.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4.20

34. 소음


어제, 아니 정확히 오늘 새벽, 모처럼 늦게까지 게임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아무리 늦어지더라도 새벽 3시에는 잠들려고 했었죠. 모처럼 다 같이 게임을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끝내고 나니 새벽 6시가 넘어있었습니다. 곧장 자려니까 아침에 약도 먹어야 하고, 어차피 생활패턴을 돌리긴 기대할 수 없겠다 싶어서 그대로 영화 한 편을 보기로 결정했었죠.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 있을 때는 창밖에서도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정해둔 시간에 약도 먹었겠다 이대로 오후까지 쭉 잠들면 딱이겠거니 했는데, 이게 뭡니까,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그만 깨고 말았습니다. 어디서 공사라도 하는 건지 신경질스런 쇳소리가 달콤한 잠을 망쳐놓은 거죠. 오늘의 소재가 정해진 순간이었습니다. 소음에 대해 쓰자고 마음먹었죠.


누군가에겐 그저 인터넷 밈(meme)일 뿐이겠지만... 소음으로 고통받아보신 분은 고함을 지르는 게 납득이 가겠죠.


살고 있는 곳이 대학교 근처 주택가라서 공사가 자주 있는 편이긴 합니다. 연식이 오래된 원룸 전체를 싹 다 리모델링하거나, 노후된 일부만 고치는 등 한 달에 적게는 한두 번, 많게는 서너 번은 있습니다. 거기다가 원룸촌이 밀집해있으니 쓰레기 분리수거로 요란한 소리가 나기도 하는데, 그렇게 시끄럽지 않은 것 같아도 사람의 신경을 건드린단 말이죠. 어쩌다 낮에 잘 때마다 매번 소음에 시달려야 하니 바른생활을 강제당하게 됩니다. 감각을 하나라도 차단하면 낫겠지 싶어 안대를 써도 소리는 어쩔 수 없으니 이거야 원. 잠깐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 침대에서 일어나 집안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닫고, 도로 자리로 돌아가 누우면 거짓말처럼 소음이 멈추니 미칠 노릇이죠. 그 순간도 잠깐, 다시 자려고 하면 거짓말처럼 소음이 시작됩니다.


이 시간에 자는 게 잘못인가 싶기도 합니다. 오후 2시면 일반적으로 활동할 시간이니 소음을 동반하는 작업을 하기에 적절한 시간대겠죠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낮에 자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저야 불규칙한 생활로 낮밤이 뒤바뀌었을 뿐이지만 야간 근무를 하는 분들은 사정이 다르죠. 어떻게든 자야 하는데, 소음이 들려와 도저히 잠들 수 없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귀를 막으면 당장 소음이야 덜하겠지만 잠잘 때만큼은 잡다한 것들에 구애받지 않고 편히 자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저에겐 사소한 불편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겐 절실한 문제일 겁니다. 그저 푸념이나 하는 주제에 괜히 자기 일도 아닌 심각한 사례를 가져온 것 같아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듭니다. 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음은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라는 겁니다.


아파트는 좀 덜할까 싶은데, 층간소음 문제도 만만치 않더군요. 이웃 간 다툼이 사건사고로 번지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 어디가 되었든 소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하긴,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투기 이륙 소리를 들어야만 했는데 그때는 대체 어떻게 버텼는지. 소음 때문에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그 때 깨달았습니다. 비행 일정이 없는 주말의 적막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침대에 누워 고요한 분위기에 침잠하는 걸 좋아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 였을 겁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서도 자유롭게, 흐르는 시간 그 자체에 그저 몸을 뉘이는 느낌. 들리는 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시계 초침 소리와 수도관에서 무언가 흐르는 소리 정도죠. 그 감각은 매우 사랑스럽습니다.


한참 글을 쓰고 있는 사이, 어느새 소음이 멎었습니다. 인간의 감각이라는 건 어찌 이리 강렬한지. 감각하는 순간에는 그것에 대해서만 사고할만큼 압도적인 대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당시의 기분과 생각은 놀랍도록 빠르게 잊혀집니다. 아무리 오래되었더라도, 마치 찰나였던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쉬이 떠나보낼 것이었다면, 왜 그렇게 집착했나 싶고 모든 게 부질 없다고까지 여기게 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거겠죠. 인간은 육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지 않습니까. 감각은 우리가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가장 분명한 지표니까요. 그래도 소음은 가급적 사양하고 싶네요. 삶에 대한 감각을 느끼는 건 필요하긴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느껴야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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