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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un 09. 2019

가족이라는 관계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6월 9일, 52번째 글


한 주가 끝나가는 일요일이면 부모님과 고모님께 전화를 겁니다. 시간을 정해두지는 않았지만 보통은 저녁을 먹은 직후, 너무 늦지는 않게끔. 통화 시간은 세 분을 전부 통틀어서 아무리 길어도 5분이 채 넘어가지 않습니다. 잘 지내셨냐. 저녁은 드셨냐, 그쪽 날씨는 괜찮냐, 건강하시냐, 별다른 일은 없냐, 등등. 스무고개처럼 정해진 질문과 답변이 몇 차례 오고 가면 또 전화드리겠다며 멋쩍은 인사말로 마무리합니다. 가족이 반드시 살가워야 한다는 법도 없지만, 이거야 원, 그동안 너무 무심했나 싶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지만, 해본 적이 없으니 말문이 쉽게 열리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에게만 특별히 무뚝뚝한 건 아닙니다. 사람을 살갑게 대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습니다. 무뚝뚝한 표정과 퉁명스러운 말투로 다른 사람의 오해를 샀던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이제라도 고쳐보려 이래저래 노력은 하고 있는데 29년이라는 세월 동안 만들어진 이미지가 바뀌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특히나 가족과의 대화를 시도해보려는 시도는 멋쩍다는 핑계로 미루고만 있었는데, 더 늦기 전에 뭐든 해보아야겠지요. 막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없지만 말입니다. 인터넷이든 책이든 찾아보면 또 방법이 나오겠죠. 물론 취업을 해서 경제적 자립을 하는 게 가장 좋은 효도겠지만요(...).


이제는 그냥 효자가 좀 되면 좋겠는데 말이죠...


하여간 20세기도 아니고, 장남이라고 해서 의무를 져야 한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명절에만 얼굴을 비치는 게 전부에 어쩌다 한 번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는 게 아니면 고향에 얼씬도 하지 않는 불효자로서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라도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부모님과 고모님, 세 분이 어떤 하루를 보내셨는지 정도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롭게 듣고 싶은데, 그러는 게 쉽지가 않네요. 제 쪽에서 말을 꺼내질 못하는 건지, 세 분 다 할 말이 없으신 건지. 어쩌면 둘 다 해당할 수도 있겠네요. 언제고 그분들께 맡겨놓을 순 없으니 자식 쪽에서 먼저 다가가기도 해야겠죠.


가족의 형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뀔지 몰라도, 본질이 인간관계라는 건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가족이라고 해서 그렇게까지 애틋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선택한 적이 없는데, 태어나자마자 혈연을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름에 한데 묶였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긋지긋할 뿐이고 떨쳐내야만 하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건 일종의 환상에 가깝고 실제로는 서로 심드렁하거나, 좋은 소리는 커녕 잔소리나, 불평이나 불만만 나올 때가 흔하죠. 부모-자식 구분할 것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지긋지긋함을 느낄 때도 있을 겁니다.


가족도 결국 서로 어떻게 녹아드냐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나몰라라 외면하며 살까요? 뭐,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 적당히 명절에만 얼굴을 마주하고, 가족이라는 형체만 유지하는 삶. 이미 그렇게 사는 분도 계실 거고, 그런 방식을 선택해야만 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으실 겁니다. 뭐가 옳고 틀리고 따위의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관계라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고 서로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져야만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종종 어떤 것은,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가족이겠죠, 그 형태가 고정되어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세상에 그런 게 어디있겠습니까. 우리가 변한만큼 부모도 변했을 테고, 관계도 당연히 변해야겠지요. 오늘도 참 당연한 소리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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