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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Oct 09. 2024

도전과 실패는 한 쌍

실패하는 아름다움

혹시 수학 좋아하니? 대다수가 아마 아니라고 답하겠지? 많은 사람들이 일명 수포자인 사회니까. 나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수학을 포기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수학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 어찌 보면 나의 첫 실패 경험은 수학이었거든. 이름하여 눈높이 수학. 지루하게 펼쳐진 그 지겨운 숫자들을 기계적으로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일을 해야 했는데, 그게 너무 싫었어. 가뜩이나 재미도 없는 것들을 주어진 시간 안에 빠르게 다 풀어야 한다는 게 끔찍했지. 그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후로 줄곧 숫자가 싫었어. 숫자만 보면 얼굴을 찡그리는 내게 엄마는 수학이 참 재밌는 과목이라고 늘 말하곤 했어. 그렇게 정답이 딱 떨어지는 게 얼마나 멋지냐고.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는 조금 더, 아니 꽤나 더 컸을 때 알게 되었어. 도무지 정답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정답이 있는 게 간절해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삶이 수학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나한테 수학이란 끝없는 계산의 연속이었거든. 오차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그게 우리 사회랑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 절대로 실수를 허용하지 않으니까. 마치 기나긴 풀이 과정을 지나도 한 순간 삐끗해 버리면 결국 오답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안게 되는 수학 시험 같달까. 그렇게 실수가 쌓이면 정말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벌벌 떨어졌던 학창 시절도 생각났지.


고등학교 때 그런 일이 있었어. 서술형 답안을 확인하는데 뭔가 이상한 거야. 정답 처리가 되었는데 한 부분이 틀렸더라고. 답이 숫자나 한 단어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여러 문자와 숫자가 조합된 공식이라서 채점자가 실수한 거지. 순간 엄청나게 고민이 되었어. 서술형이라 배점도 높은 문항이었고, 그 한 문제로 분명 성적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그냥 이대로 눈만 감으면 될 일이잖아. 그래서 질끈 눈을 감을까 생각했지. 그런데 마음이 좀 찜찜했어. 속이는 거 같아서. 또 한편으로는 대입은 내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그게 대수인가 싶기도 했어. 그런데 그때만 해도 좀 멋진 척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 사실 부분 점수를 받을 거란 생각도 했었지. 근데 이게 웬걸, 그 큰 문제를 아예 0점 처리하는 거야. 뭐 어떤 칭찬이나 안타까움의 멘트도, 눈빛도 없이. 너무 속상했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 대학은 다 갔다 싶은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뭐, 그때 그 과목 석차는 떨어졌지만 대입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어. 물론 그건 내 인생에서 실수 축에 끼지도 못하는 사건이었고.


뜬금없이 수학과 학창 시절의 실수가 떠올랐던 건 '실패 주간'이란 단어 때문이었어. 말 그대로 실패에 집중하는 기간이라고 하더라. 조금 놀랐어. 실패라는 건 숨기는 거잖아. 그런데 망한 과제를 자랑하고, 망한 작품을 전시하는 등 자신의 실패를 자랑하는 행사까지 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행사가 진행된 곳이 카이스트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카이스트 학생들이 실패를 해봤자 얼마나 해봤겠어? 그들이 하는 실패 자랑이라고 해봤자 진짜 '자랑'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성공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실패가 두려울 수 있겠다 싶더라. 넘어진 적이 별로 없으니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도 모를 거 아니야. 잘 뛴다고 해서 회복탄력성이 높은 건 아니니까. 그런데 우리는 전부 빨리 달리는 법만 배울 뿐 잘 넘어지는 법, 오래 달리는 법을 배운 적은 없는 것 같아. 넘어질 때마다 돌아왔던 건 꾸중과 다그침이었거든.


"넘어지지 마. 넌 무슨 애가 툭하면 넘어지니?"

"네가 넘어져놓고 뭘 잘했다고 울어."

"눈물 그쳐. 남들 앞에서 눈물 보이면 안 돼."


어릴 때 유독 자주 넘어졌던 내가 자주 들었던 말들이야. 꼭 같진 않지만 비슷한 말들을 우린 꽤나 많이 듣고 자랐을 거야. 겨우 시험 하나를 망쳤을 뿐인데, 그저 한 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한 것인데 그 하나의 '실패'가 곧 인생 전부의 '실패'인 것처럼 치부되는 경우가 많잖아.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 그렇게 자라난 내 생의 목표는 어느새 고작 실패 피하기가 되어 버렸다는 걸.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게 있으면 절대 남들 앞에서 하지 않았어. 나는 절대 넘어지고 싶지 않았고, 실패하고 싶지 않았어. 그건 곧 누군가의 웃음거리이자 내 생의 실패라는 의미였으니까.


윈드서핑을 배울 때도 비슷했어. 물에 빠는 게 너무 싫었던 나는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 처음에는 중심을 잘 잡았지. 그런데 정작 바람이 세게 불어왔을 때 그 흐름을 제대로 탈 수 없었어. 과감하게 몸을 뒤로 젖히며 무게 중심을 이동해야 하는데 그걸 연습하지 못했던 거야. 넘어지는 걸 피하는 게 목표였던 난 그저 몸동작을 최소화하는데 급급했고, 결국 제대로 윈드서핑을 배우는 데 실패하고 말았어. 당연히 그 순간을 즐기지도 못했고 말이야. 실패를 피하려다 결국 커다란 실패를 하고 만 셈이지.


꼭 윈드서핑뿐만이 아니었어. 언제나 내가 선택했던 길은 안전한 길이었지.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많은 발자국이 찍힌 쪽으로 걷게 되곤 해. 누군가가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게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 법 중 하나니까.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사람은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되잖아. 중간에 길이 끊길 수도 있고 아예 길이 없거나 수풀이 너무 우거져 도저히 방향을 알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에 거기서 새로운 걸 찾을 수 있겠지. 물론 빈손으로 갔던 길을 돌아와야 할 수도 있고, 길을 잃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고,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지. 그런데 그런 도전 정신이 삶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아닐까? 


혹시 기억나? 수업 시간에 '기업가 정신'을 배웠던 거. 사실 별 내용이 없는 그 파트를 가르칠 때마다 생각했어. 아니 뭐 이런 걸 가르치라고 하나, 이런 걸 글로 가르쳐서 알겠나, 게다가 알만한 우리나라 대기업은 전부 세습 경영인데 무슨 기업가 정신인가, 싶었지.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라고 하는 '혁신'은 그 사례를 찾기도 힘들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이런 기업가가 나타날 사회적 토대 자체가 없지 않나, 싶었어. 혁신은 도전과 실패를 토대로 완성되는 거고, 그런 도전은 실패를 허용하는 분위기에서만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재수를 고민하는 너희들 앞에서 말했어. 사실 지금은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인생에서 1년 진짜 별 거 아니라고. 아직 19년 밖에 안 살아서 1년이 엄청 크게 느껴지겠지만, 30년, 40년, 그보다 더 오래 살게 되면 그깟 1년쯤 정말 별 거 아니라고. 물론 그걸 견디고 지난 시간은 힘들 수 있겠지만, 절대 늦은 거 아니라고. 너희가 느끼는 실패가 실은 사소한 거라고, 정말 괜찮은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거든. 그럼에도 여전히 울 것 같은 표정을 보면서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었어. 우리 과 후배로 들어왔던 남학생 이야기였지. 우리 학교로 편입하려고 두 번인가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다는 거야. 차라리 재입학을 하는 게 빠르겠다 싶어서 수능을 다시 보고 입학을 했다고 해. 그래서 나보다 이 년 후배였지만, 나이는 더 많았어. 나라면 남들보다 늦은 출발선에서 답답하고 화도 났을 텐데 그 후배님은 늘 허허실실 밝은 표정이었어. 그런데 말이야, 참 속도 좋다, 싶었던 그 후배님 아마 나보다 먼저 취업했을걸. 그러니까 인생의 실패라는 건 어느 한순간의 단편적인 판단이고, 그 판단 역시 시시각각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실패에 관대했으면 좋겠어. 혹여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거기까지 달려갔던 과정에서 느낀 수많은 감정들을 기억한다면 그건 꼭 실패가 아니니까. 오히려 실패가 무서워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내 인생이 너무 소중해서, 혹은 우리 아이의 인생이 너무 소중해서 그저 유리병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면, 그래서 상처 없이 살아간다면 놀랄만한 위협은 없겠지만 그만큼 놀랄만한 행복도 없을 거야. 


그러니 우리, 밖으로 나가 뛰어보자. 넘어지면 어때? 다시 일어나면 되지. 부끄럽다고? 걱정하지 마. 보이는 곳에서 널 비웃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넘어진 너를 응원하고, 다시 일어나는 너를 향해 박수 치는 우리도 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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