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에 대한 단상
"그건 좀 폭력적인 것 같아요."
갓 대학생이 된 새내기에게 그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어. 그때까지 내게 폭력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억압이나 위해가 전부였거든. 정신적인 위협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거지. 아마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무심코 벌어지는 일상적 폭력에 익숙했었던 것 같아. 그게 폭력이란 사실조차 모른 채. 그래서 가끔은 생각해. 어쩌면 나도 모르게 어떤 폭력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였던 건 아닐까?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면 적어도 방관자 역할을 하진 않았을까?
요즘은 확실히 예전보단 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것 같아. 그래서인지 학폭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게 되었고 말이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되는 건 물론이고, 유명 연예인이나 공직자 혹은 그들 자녀 이름 옆에 나란히 그 단어가 붙으며 화제가 되는 일이 참 흔해졌어. 그런데 말이야,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지 않니? 배움과 꿈이 가득해야 할 '학교'란 단어가 무자비한 '폭력'과 나란히 쓰이다니 말이야. 그럼에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느 한순간도 학교는 폭력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것 같아.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폭력, 학생이 학생에게 가하는 폭력, 신체적인 폭력, 언어폭력, 성폭력까지 다양하게 펼쳐졌으니 말이야.
나는 교사의 폭력이 정당화되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어. 교사에게 자주 맞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날아든 폭력에 정신이 얼얼했어. 폭력이 직접적으로 닿은 손바닥이나 허벅지보다는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더 화끈거렸어. 내게로 쏟아졌던 무수한 눈동자 앞에서 부끄러웠고, 대체 내가 왜 맞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화가 났지. 하지만 분노를 단 한 마디도 토해낼 수 없었어. 나는 그 수치와 폭력을 견뎌야 하는 약자였으니까. 신체를 규제당하는 것도 일상화되었어. 교문 앞에서 회초리를 든 교사가 복장 규제를 하는 건 물론이고, 두발 단속을 이유로 수업 도중 불시에 가위를 들고 들이닥쳐 머리카락 일부를 싹둑 자르고 나가버리는 날도 있었지. 애매한 교칙에 대해 질문을 해봤자 날아드는 건 날카로운 말이나 몽둥이였어. 그런 노골적인 폭력이 일상화되었기에 학생들 사이에서도 누군가에게 폭력을 던지는 일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어. 집단에서 약한 누군가가 그 폭력을 받아내는 대상이 되었지.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은 주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나서서 피해자를 방어하진 못 했어. 그저 가해자를 탓할 뿐이었지.
그 비겁한 학생이 무사히(?) 학창 시절을 마치고 중·고등학교에서 교사가 되는 동안 학교에서 교사의 체벌은 금지되었어. 두발 자유화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복장도 굉장히 자유로워졌고(물론 너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모든 게 꽤나 변한 것 같았어. 하지만 여전히 나는 크고 작은 학교 폭력을 지켜봐야 했어. 때론 가까이서 그 장면을 마주했고, 때론 아주 멀리서 언어로만 전해 들었지. 물리적 폭력, 집단 폭행, 언어폭력, 은근한 따돌림... 그 형태는 다양했지만 핵심은 분명해 보였어. 약자라고 느껴지는 누군가에게 내리꽂는 화살.
우리 반에 그런 일이 발생할 때도 있었어. 학폭위(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릴 만큼 큰 사건은 없었지만 너희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미묘한 일들이 꽤나 많았지. 때로는 가해자에게, 때론 피해자에게, 때론 학생에게, 때론 학부모에게 연락을 받았고,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쉴 새 없이 뒤척였어. 처음엔 화들짝 놀랐고 시간이 갈수록 지쳐갔지. 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이상하지? 그저 멀리서 봤을 때는 '폭력이란 커다란 사건을 왜 저렇게 처리할까' 뾰족하게 날을 세우던 내가 막상 관계자가 되고 나니 날을 세우는 방향이 조금 틀어져 버렸으니 말이야.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어. 학폭을 열만큼 큰 사안이 아니기도 했고,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어쩌면 너희들도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지. 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끌어안고 밀치면서 관계의 끈이 엉켜버렸던 거겠지. 내가 드러나게 개입하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기에, 여러 아이들과 넌지시 이야기를 하고 회장과 부회장에게 부탁을 하면서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꼬인 매듭을 풀어 가려고 나름 노력했어. 결과가 어땠느냐 묻는다면, 글쎄.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애를 쓰던 일이 어느 순간 갑자기 확 풀어져서 오히려 김이 새기도 했다면 믿어지니?
어쩌면 내가 마주했던 폭력보다 직접 마주하지 못한 폭력이 더 많았을지도 몰라.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와 분명 다른 법이니까.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질서와 논리가 아이들의 세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게 참 무섭고도 서늘했어. 그게 무엇이든 대세에서 벗어나면 괴롭힘의 빌미가 되곤 했으니까. 힘에서 밀리거나 '정상 가족'에서 벗어나는 것 모두 말이야. 그런 약자의 반대편엔 권력을 쥐고 흔드는 세력이 형성되기 마련인데, 한 학교에 있을 때 그런 일이 있었어. 어떤 아이의 직계가족이 고위 공직에 있었는데, 그걸 너무도 자연스럽게 과시하며 다니는 거야. 마치 자신이 그 권력을 휘두르는 것 같달까. 더 놀라운 건 그런 분위기가 아이들 사이에서도 퍼진다는 거야. 그 아이의 말과 행동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고 박수 쳐주는 묘한 분위기 말이야.
모든 가능성을 품은 아이들이, 정의로운 질서를 배워가야 하는 시기에 어른들의 질서가 개입되고 그걸로 강자와 약자를 규정하는 일. 그런 일이 학교에서 벌어진다는 게 참 슬펐어. 아무리 번지르르한 이야기들을 교과서로 배운다지만 사실 우리가 더 빠르게 습득하는 건 글자로 된 이야기가 아니라 몸으로 얻는 질서들이잖아. 성적으로 아이들을 줄 세워 심화반을 만들고, 그들에 대한 대우가 유별난 것들이, 부모의 직업과 재산 수준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그게 학교생활에 영향을 주는 걸 눈 감는 일들이, 내가 학생일 때 분노했던 그런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었어. 물론 그 질서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교사들도 있어. 하지만 이미 학교에 흘러든 어른들의 질서를 몇몇의 힘으로 거스르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야.
물론 영원히 아이의 세계에만 머물 수 없기에 세상을 가르쳐 주는 게 맞을 거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갈등과 무질서를 보여줘야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라는 걸, 그 앞에서 약자들은 무기력하다는 걸 먼저 체득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이 세상엔 너무도 많은 다툼이 존재하지만 그걸 극복하면서 성장하고 또다시 화합하는 게 우리의 몫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폭력과 부정의는 응징한다는 걸 가르쳐야 주고 싶었어.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나만 아니면 돼'같은 극단적 개인주의나 '강한 자는 모든 걸 누릴 가치가 있다'라는 승자독식 체제가 깨져야 하지 않을까?
능력으로 표현되는 학벌, 재력, 외모, 권력 등이 있으면 모든 게 용서되는 그런 세상. 그런 것들에 환호하는 사회. 거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 '능력'이라는 요소를 결정하는 건 사회니까, 한 사람의 능력은 하필 그 능력을 인정하는 시대와 공간에 태어난 '운' 덕분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특정 능력을 가진 소수에 대한 찬양이 조금 줄고, 능력자로 인정받은 이가 다수를 향해 보내는 감사가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예 그 '능력'의 범주를 넓혀 모두가 가진 다양한 능력을 조금 더 칭찬하고 인정해 줄 순 없을까?
학폭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봤을 때 그런 세상이 요원한 것 같긴 해. 혹시 기억하니? 한때 불거졌던 고위공직자 후보자 아들의 학폭 사건 말이야. 그걸 계기로 대입에서 학폭 가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안이 나왔지. 그 취지나 마음은 백 번 공감했지만 학폭을 대입이라는 결과로만 연결시킨다는 게 참 씁쓸하기도 했어. 결국 그들의 노력은 학폭 기록을 지우는 쪽으로 기울 테니까. 부모의 능력을 이용해서 말이야.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세상으로 온전히 발 디딜 수 있도록 돕는 방법에 대해서, 애초에 이렇게 퍼져있는 학교 폭력 예방법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수많은 다툼을 겪으며 자라. 친구나 연인, 가족 사이에 수많은 갈등과 싸움이 발생하잖아. 물론 나이가 들면서 물리적 폭력은 점차 사라지겠지만 언어로 서로의 마음을 휘갈겨 놓기도 하잖아. 이건 인간관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서로 너무도 다른 존재이고, 각자의 입장 또한 다르니 갈등이 발생하는 건 당연하잖아. 때로는 이 과정에서 권력관계가 발생하기도 하고 말이야. 나는 모든 인간관계는 권력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 사실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더 좋아하면 약자라는 말이 있잖아. 모든 관계에서 더 많은 이해관계-돈뿐 아니라 정서적 부분을 포함하는-가 걸린 쪽이 더 약자일 수밖에 없고, 관계에 있어서도 한쪽이 더 우위를 점하게 되지.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관계의 유연성이야. 언제든지 이 기울기가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변동 가능성이 주는 힘은 꽤 커. 이건 시간적에 따른 변화일 수도 있고, 특정 분야에 따른 변화일 수도 있어. 시간이 흐르면서 주도권이 변화할 수도 있지만, 시간과 무관하게 계획은 내가 잘 짜고, 예산 관리를 상대가 더 잘해서 어떤 화제에 따라 목소리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야.
변화무쌍한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나의 여러 모습을 마주하게 돼. 때론 사랑스럽기도 하고 때론 추악하기도 한 그 내면을 마주하면서 나를 더 알아가고 고민하면서 조금씩 자라는 거지. 그러니 다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일방적이고 집단적인 폭력만 아니라면 말이야.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건 단순한 폭력의 장면을 제거하기보다는 건강하게 잘 싸우고 화해하는 방법, 서로의 세계에 현명하게 부딪히고 스며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