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알고 감동하면 감동 백배
한때 ‘감동 찾기’에 혈안이었던 때가 있었다.
글만 쓰겠다고 퇴사했을 때였다. 고전 소설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읽고 또 읽으며 더 파헤칠 게 없는지 분석하던 중 그 책들이 감동을 주는 이유가 궁금해졌고 감동 찾기가 시작되었다.
사람은 언제 감동하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감동의 영역이 넓은만큼 ‘감동은 이거다!’라고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어 답답했다.
맹목적으로 퍼붓는 엄마의 끝없는 헌신
나를 바라보는 연인의 촉촉한 눈빛
아이의 순수한 행동과 말 한마디
자연이 자신의 위대함을 온전히 드러낼 때
어떤 언어로도 표현이 안 되는 묘하고 다양한 색깔로 물든 석양
음악이나 그림을 감상하는 동안 밀려오는 뜨거운 그 무엇
글 쓰는 것만이 삶의 전부인 양 살아가는 나에게 ‘클래식’을 들어보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분명 많은 영감을 받을 거라고! 클래식은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울 때 말고는 일부러 찾아 들은 적이 없었다. 그저 잔잔하고 지루한 음악일 뿐이었다. 그래서 몇 번 듣다가 다시 대중가요로 돌아서곤 했다.
최근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통해 클래식에 재입문한 후 작가라면 왜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작가가 아니어도 클래식과 가까워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클래식은 그야말로 날 것이다. 아름답지만 가슴을 후벼파기도 한다. 그래서 클래식을 듣고 있으면 가슴에 통증이 인다. ‘이게 뭔지 알아맞혀 볼래?’라는 듯 꽤 오래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지금으로선 임윤찬이 연주한 클래식만이 통증을 일으키긴 하지만…) 그 정체를 찾아내려고 듣고 또 듣다 보니 그것이 대답을 했다.
“지금 일렁이는 그게 뭐냐면… ‘진짜’야!”
감동이란 진짜를 마주하는 것!
우리는 자주 사람에게서 가짜 마음을 만나게 되고 그걸 알면서도 응대해야 할 때 피곤하며 때론 지친다. 그렇게 대부분 꾸며진 마음만 상대하다가 ‘진짜 마음’을 만났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기가 도통 어려운 와중에 마음이 눈에 딱 보일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 진심으로 아낄 때이다. 사랑을 하면 솔직해진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 상대는 그 마음을 진짜라고 느끼게 되고 감동을 받는다. 그의 꾸밈없는 순도 100% 진짜 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보게 되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느끼는 것!
있는 그대로의 자연 풍경에 매료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예술에 이끌리는 것!
이와 같은 진짜를 만났을 때 감동하는 것이 아닐까?
임윤찬의 연주가 특히 감동적인 이유가 궁금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처음엔 그저 소리와 몸짓이 좋아서, 다른 피아니스트와는 뭔가 다른 것 같아서 그의 음악을 들었지만 반복해서 보고 듣다 보면 그가 악보와 피아노만 놓고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을지 느끼게 된다. 이 곡이 어떤 곡인지, 뭘 표현하려는지, 그걸 알아듣게 하려면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연주해야 이 모든 걸 다 보여줄 수 있는지! 바흐, 베토벤,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등 수많은 작곡가와 나눴을 무수한 대화의 시간들이 녹아있는 소리의 향연. 그저 음악 하나만 남게 만드는 그의 열정적인 연주. 그저 음악만…
클래식이 가진 힘을 한 음악가의 해석과 태도와 노력에 의해 제대로 보여주면 그 안에 서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살기 위해 감춰야 하는 마음과 어쩔 수 없이 드러내야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역사가 들어 있다.
임윤찬의 연주가 감동적인 이유는 과거의 작곡가가 전하고자 했던 곡 본연의 진짜 느낌과 힘이 임윤찬의 가슴과 손끝에 닿아 온전히 전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뭔가를 이루려는,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음악 자체, 음악만으로 가슴을 울릴 ‘진짜’를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에게서건 자연이나 예술에서건 감동을 받았으면 그만이지 이렇게까지 그 이유를 찾아야 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감동’이 특별한 감정인만큼 감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까지도 꾸미며 살게 되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렇게 살아야만 덜 상처받고 더 성장한다고 믿는 인간이기에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진짜’가 감동을 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진짜를 추구하고 진짜로만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더더욱!
만일 가슴의 일렁임 즉 감동이 ‘진짜’ 때문이 맞다면 나는 계속해서 진짜를 찾아 나설 것이고 진짜를 보여줄 것이고 진짜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