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에게 배우는 삶의 태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성당에서 반주를 하며 마음을 온전히 담았던 그날, 미사가 끝나고 2층 반주석에서 내려왔을 때 여러 사람에게 “오늘 반주 너무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 20년 넘게 반주를 했지만 그런 말은 처음이었다. 지휘자였던 수녀님도 “오늘의 마음을 잊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내게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조금 다른 마음가짐이 있었을 뿐!
사실 반주가 미사를 보는 신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며 오르간을 친 적이 없었다. 그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무서운 나는 틀리지 않고 무사히 미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로마에서 성악을 전공한 수녀님이 성당에 부임해 오셨고 성가대 지휘를 맡으면서 성가 반주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성가를 부를 때 어떤 마음으로 불러야 할지 생각해 보세요!”
지휘를 맡으신 수녀님이 성가대원들에게 한 첫마디였다. 각자의 파트에서 음을 맞추기에 급급했던 성가대원들과 반주자인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주문이었기 때문이다. ‘화음과 강약 조절이 아니라 마음을 담으라고?’ 수녀님은 매 연습 때마다 똑같은 말을 하셨고 점점 그 말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얼마 후 반주 연습을 하기 전 가사를 반복해서 읽는데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쉬이 가시지 않는 그 감정을 그대로 안고 반주를 하는데 오르간 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들렸다. 같은 악보를 보며 치는 같은 연주였지만 그날의 내 손가락이 건반을 두드리는 강도, 음과 음 사이의 여운, 어디선가 들려오는 화음과 같은 미세한 떨림까지! 확실히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미사 내내 그 감정이 나를 감쌌고 성가를 치는 내 손에도 그 마음이 전달됐던 것 같다.
그날 이후 깨달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삶에 마음을 담아야 삶이 건조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반 클라이번에서 우승한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승곡을 시작으로 준결승, 준준결승 곡까지 차례로 듣고 다시 결승곡까지 순서대로 들었다. 듣고 또 들어도 계속 듣고 싶은 소리이고 울림이었다. 그중 가장 나를 울렸던 건 그가 연주를 할 때 정말 마음을 담고 있는 게 보였다는 거다. 그의 피아노 선율이 아름답고 물 흐르듯 매끄럽고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안에 마음이 오롯이 담겼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스승인 손민수 교수는 이미 한 음도 안 틀리고 완벽하게 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날이 리허설인데 밤을 새워 연습하는 그에 대해 ‘음악에 자기 마음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마음에 음악을 담아내는 과정인데 내가 음악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계속 같이 동행하고 발맞춰서 들어가 보는 거였다.
임윤찬이 대단한 건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을 해서도, 그의 남다른 실력 때문도 아니다. 아직 어린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담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아는 나 같은 어른은 그의 진지함이 무섭고 부럽고 멋있다. ‘추앙’이 하고 싶어 진다. 그는 어떻게 음악에 자신의 마음을 담는 걸까?
옛 음악가들은 인터넷 없이 단지 악보와 자기 자신 사이에서 음악을 찾았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 자신의 생각이 더 들어가고 더 독창적인 음악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상을 보며 다른 사람의 연주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악보와 자기 자신 사이에서 더 많은 걸 찾으려 한다는 임윤찬은 그렇게 마음을 담고 있나보다.
“할아버지가 혼자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옛날을 회상한다고 생각해봐. 어떤 감정일까?”
스승이 그에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친 것도 그의 성장에 큰 힘이 됐을 것이다. 덕분에 임윤찬은 피아노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담는 작업은 예술가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것이다. 틈 날 때마다 그의 연주를 듣는 요즘, 출근길이 달라졌다. 피아니스트인 그가 피아노를 칠 때 마음을 담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회사원인 나는 직장 내에서 마음을 담으려 노력한다. 거짓말처럼 말투가 온순해지고 너그러워진다.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되뇌면 조금은 차분해진다.
*참고한 임윤찬 관련 기사
[취재파일] 차분히 기다려주세요… 윤찬이가 물 흐르듯 음악 할 수 있도록 - SBS 뉴스
반클라이번 최연소 우승 임윤찬 "달라진 건 없어…더 연습할 것" - 연합뉴스
한계 없는 17세 임윤찬, 스승은 "피아노 치려 태어났다" 찬사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