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잡고 싶은 당신에게 추천!
“코피루왁!”
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사치에는 드립 커피를 내리기 전 원두가루에 검지 손가락을 살짝 대고 위 주문을 외운다. 묵상하듯 주문을 외운 후 아주 정성스레 커피를 내린다. 루왁커피는 사향고양이가 먹고 싼 원두를 갈아 마시는 커피로 희귀함 때문에 꽤 고가이다. 맛이 독특하기도 하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루왁커피를 고급 커피 반열에 올렸다. 그래서일까? ‘코피 루왁’이라는 주문과 함께 내린 커피는 저렴한 원두여도 저렴하지 않은 맛이 난다. 단지 주문만 외웠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매일 회사에 30분 전에 출근해 드립 커피를 내린다. 1년 넘게 루틴이 됐지만 단지 루틴이어서 하는 건 아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은 잡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집에서 뒹굴던 게으른 나를 성실한 회사원으로 둔갑시키기 위한 일종의 ‘의식’인 셈이다. 그래서 원두가 떨어지지 않게 신경 써 왔다. 그 의식을 치르지 않으면 제대로 일하지 못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드립 커피를 내리는 행위는 업무를 시작하기 전 마음에 촛불 하나를 켜는 아주 작은 의례와도 같다.
엄마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신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다. 거실 한쪽에 있는 십자가상 앞에 앉아 촛불을 켜고 기도서를 펴면 비로소 리추얼이 시작된다. 그렇게 한 시간을 혼자만의 공간에서 기도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는 엄마는 50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그 일을 거르지 않으셨다. 가족여행을 가고 병원에 입원하고 예상치 못한 큰일이 닥쳐도 엄마의 리추얼은 변함없이 반복됐다. 단지 종교인으로서 신을 향해 기도하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는 그 시간 동안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제보다 더 낫기를 바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렇게 엄마의 하루는 리추얼과 함께 달라진 마음으로 시작된다.
리추얼(Ritual)이란 바로 이런 의식을 말한다.
비록 사소한 것이라 해도 이전의 나(혹은 사물)를 다른 나(혹은 사물)로 변환시키는 ‘버튼’ 역할을 한다.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것은 없지만 리추얼을 거친 그것은 이전과 분명히 다르다. 루왁 주문을 외우며 내린 커피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맛이 나거나(나는 것처럼 느껴지고), 드립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나는 회사에 걸맞은 인재로 탈바꿈하고, 엄마는 매일 아침 기도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된다.
리추얼은 루틴이 될 수 있지만 루틴이 모두 리추얼이라고 할 순 없다. 리추얼이라고 반드시 반복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루틴과의 비교로만 본다면 리추얼과 루틴의 같은 점은 반복에 있고 다른 점은 마음에 있다. 마음을 담지 않은 반복된 행위는 루틴,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기원하는 행위는 리추얼이다.
리추얼은 ‘마음을 다잡는 일’이다.
‘마음에게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다.
행위 자체가 나를 변화시킨다기보다는 그 행위에 온 마음을 바침으로써 마음이 가는 방향을 결정한다. ‘마음을 먹는다’는 말을 의식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음을 먹기 위해 우리가 그동안 해 온 사소하거나 그럴듯한 많은 행위들이 바로 리추얼이다.
마지막 애인과 헤어진 후 그와 나눠 끼었던 커플링을 한동안 처분하지 못했다. 미련을 잔뜩 짊어진 커플링을 서랍 깊숙한 곳에서 꺼낸 건 그의 SNS 프로필 사진이 아기 사진으로 바뀐 날이었다. 커플링 때문에 그를 잊지 못했던 것처럼 아니, 커플링을 팔면 그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당장 금은방으로 달려가 비싼 값에 팔았다. 다행히 금값이 올랐을 때였다. 그 돈으로 오징어를 사 먹었다. 잘근잘근 씹어서 꿀떡꿀떡 삼켰다. 오징어를 씹으며 그놈의 못됨을 같이 씹어 삼켰다. 속이 다 후련했다. 그동안 왜 이걸 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될 정도로 그와 나를 단절시키는 멋진 일이었다!
새 리추얼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위에 다소곳이 앉아 눈을 다시 감고 클래식을 듣는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반 클라이번 우승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이 곡을 들으면 많은 감정들이 왔다 간다. 그 감정들 중 하나를 만나 대화를 시도한다.
‘오늘은 너를 만나 기쁘다!’
‘다른 감정들과도 인사할래?’
이 오글거리는 리추얼을 하게 된 이유는 감정이 메말라서 그들을 촉촉이 적셔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알아채기 위해서다. 회사에서, 대인관계에서 감정의 기복이 심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인지조차 인지가 안 된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채 집에 가면 내내 찜찜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하여 그것들과 하나하나 친해지기 위해 리추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직 단련이 덜 되어 서툴지만 꽤 괜찮은 리추얼인 것 같다.
아침 40분 간의 리추얼이 하루의 나를 조금씩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이 있다. 감정이 요동치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하는 요즘이다.
커피와 클래식으로 행하는 하루 두 번의 리추얼!
“이렇게까지 리추얼이란 걸 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마음을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주어진 시간 안에서 더 많은 마음을 만나는 게 득이 아닐까? 어차피 리추얼은 공짜이니까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