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
통영에 다녀왔다.
통영 국제음악당. 그곳에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음악에 잠겼다 나왔다. 음악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지를 알려주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긴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의 연주를 직관한 건 두 번뿐이지만 영상으로 여러 연주를 들으면서 궁금했던 건 ‘그 열정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였다.
투신하듯 나를 모조리 바쳐 헌신한 적이 있던가?
무아지경에 빠져 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은 적은?
괴로움보다는 환희와 행복이 더 크기에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때가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사랑’이다.
사랑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같이 틈날 때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찾아들었다. 들은 걸 또 듣고 본 걸 또 보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고, 최근에서야 그의 숭고한 열정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그건 바로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이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이 20년이 넘었지만 내게 글 쓰는 걸 ‘사랑’했었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한두 번 정도 글 쓰는데 몰입해서 밤새 시나리오 한편을 완성한 적은 있다. 내가 만든 주인공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글로 써내고 그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즐겁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글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듣는 순간 멋없는 주인공과 이별하고 큰 슬픔에 잠겨 술만 퍼마셨다.
만일 누군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글 쓰는 일이 좋아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면 지금과 달랐을까?
글에 대한 내 사랑이 부족해서 지금 난 여기에 있는 걸까?
그럴 것이다.
연인을 대하듯 내 글과 글 속의 주인공을 대했다면, 상처받아 괴롭고 아파도 다시 잘해보려 애쓰고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해 미안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많은 걸 신경 쓰고 눈치 보느라 찐 사랑을 못하고 이렇게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뒹굴고 있는 것일지도…
사랑은 사람과 사람 간에만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사랑이란 건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형태를 만들 수도 없고 뭐라고 정의하기도 어려운 것인데 굳이 틀에 가뒀던 거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사랑이 맞다 하더라고 어떻게 그 지속기간이 그렇게 길 수 있을까? 지치지 않고 식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뭘까? 얼만큼 사랑하면 그렇게까지 헌신할 수 있는 걸까? 임윤찬 피아니스트에게 많은 영감을 얻지만 가장 궁금하고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내가 아는 사랑 중에 그가 보여주는 사랑과 가장 비슷한 건 부모님의 사랑이다. 특히 엄마라는 존재의 헌신과 사랑! 자녀를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이 끝도 없는 걸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고 위대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허리가 아파 걷지도 못하는 엄마가 오랜만에 집에 온 딸에게 먹인다고 장조림을 하고 된장찌개를 끓이는 걸 보면서 그 ‘사랑’이라는 걸 느꼈다. 엄마를 보살피러 간 건데 오히려 보살핌을 받았고 밥 다 먹을 때까지 마주 앉아 심심하지 않게 말동무까지 해주는 엄마… 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 나고 고마웠다.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엄마의 헌신과 사랑이 행동 하나하나에 묻어나 그 마음이 온전히 와 닿는 것처럼, 음 하나하나를 살려 음악 본연의 가치를 온전히 전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불사르는 임윤찬의 마음이 듣는 이에게 온전히 와 닿는다.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면서 눈물이 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그가 그 사랑을 보여줬기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사랑의 에너지가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무색, 무취, 무광, 무형의 어떤 것이 나를 감쌌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내가 아는 한에서 표현할 수 있는 건 ‘사랑‘, 이 하나 뿐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사랑이 이렇게 엄청난 거라니… 매일 감동하고 매일 감사하고 매일 행복할 수 있다니… 그의 연주를 들을 수만 있다면 지구 밖으로도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그 에너지가 간절하고 중독성이 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를 예찬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이 아닌 다른 것에서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껴서 당황스럽고 기쁘고 행복해서다. 물론 세상에 없던 음악을 듣게 해 준 임윤찬에게도 감사한다. 죽기 직전까지 그의 음악을 들으며 살고 싶다.
덕분에 예술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지, 예술이 얼마나 위대한 양식인지 알게 됐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예술은 영감의 연결고리 정도로만 여겼던 과거를 반성한다.
예술은 인간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사는 동안 느낄 수만 있다면 충만하게 만끽해야 하는 권유가 아닌 의무 항목이 되기를 바란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걸 마다하지만 않는다면 예술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
그림 출처 : 인스타 @ilovelove_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