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가 말이야
이번엔 기필코 작가가 돼야겠다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년간 백수로 지낸 적이 있다.
그렇게 2년을 허비하고 작가가 되지 못한 채 퇴직금만 몽땅 날린 후 집 근처 S사의 사내 카페에 취직했다. 연장 근무 없이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 되는 직장이어서 오후 시간을 잘 활용하면 돈 벌면서 글 쓰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사내 카페라는 특성상 한두 시간 안에 하루 매출의 2/3를 판매할 정도로 손님이 몰렸고 러시아워를 위한 준비와 마무리가 카페에서 하는 일의 전부일 정도로 바빴다. 온몸이 아프고 고장 나서 매일 약을 먹고 찜질을 하고 병원을 전전했다. 당연히 글 쓸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고, 통증뿐인 몸뚱이와 피폐해진 영혼만 남았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했고 기회만 되면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한가한 오전 시간에 단골손님이 찾아왔다. 평소 한마디도 하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메뉴를 말하기도 전에 기계처럼 단골 메뉴인 카페라떼를 준비했다. 손님도 당연한 듯 계산을 했고 커피를 받아갔다. 다른 때와 똑같은 순서대로 음료가 나갔지만 그날 손님은 그 자리에서 커피 한 모금을 마셨고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으음! 맛있네요.”
“(처음 있는 일이라 주춤하며)아… 그래요?”
“(방긋 웃으며)저는 이 시간이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해요. 오늘도 맛있는 커피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답 대신 코끝이 찡해졌고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만든 커피를 마시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손님의 한마디를 듣는 순간 6개월 간 나를 괴롭혔던 심신의 고통이 사라졌다.
무의미했던 시간들에 의미가 더해졌고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일에 의미가 생긴 건 물론이고 자존감까지 높아졌다. 여전히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지만 그때부터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태도가 달라지니 몸의 아픔도 덜했고, 일이 재미있어졌다. 그 후 5년을 더 일하는 동안 힘들 때마다 그 순간을 떠올렸다.
일에서 뿐만 아니라 삶 전체로 본다 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처한 환경과 사는 모습이 다르고 각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도 다양하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의미를 찾지 않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게 가능할지… 행복이라 착각했던 기쁘고 즐거운 순간은 있었지만 곧바로 공허함이 밀려오는 걸 자주 경험했다.
고통이 지나가야 비로소 행복에 다가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하고 있는 일, 가족 및 대인관계 등 살아있는 동안 만나는 많은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소중히 여길 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 행복을 기꺼이 누릴 수 있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니 어떤 게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가끔은 하던 일을 멈추고 깊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순간순간의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적어도 행복하게 살길 원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한 번쯤 되짚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라떼 손님은 내가 만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행복이었고, 바리스타인 나는 그 말을 듣는 그 순간이 행복했다. ‘그 순간’이란 ‘내게 의미가 생기는 순간’을 말한다. 하고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하려는 일이 모두 즐겁고 순탄할 순 없다. 그렇지만 그 일이 누군가에게-타인이 아닌 나일 수도 있다-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걸 알게 된다면 난 그 순간 행복을 느낀다.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없고 좋은 상황만 있을 수 없기에 더더욱 그렇다. 싫지만 억지로 해야 하고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그로 인해 불행에 빠지지 않으려면, 행복을 찾기 위해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하고 있는 일에 생기가 돋고 힘들다가도 달콤한 초콜릿 하나 먹은 것처럼 당이 충전된다.
내게 행복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