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봄 Oct 04. 2024

길은 잃으라고 있는 건가, 찾으라고 있는 건가?

실종, 길을 잃으면 어디로 가야 하나?

첫날부터 길을 잃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게 길치인 내겐 익숙한 일이지만 화살표만 따라가면 되는 산티아고 가는 길 위에서 길을 잃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파혼 후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딘지 몰라 아무런 계획도 없이 오른 길인데 처음부터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그날 새벽 4시 30분.

생장피드포르 St Jean Pied de Port의 차가운 새벽안개를 맞으며 홀로 출발한 나는 숙소를 나온 지 30분 만에 산티아고 가는 길에 선 걸 후회했다.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두워서 화살표를 찾기도 어려운 데다가, 1km도 못 가서 숨이 턱 밑까지 찼다. 누구보다도 걷는 걸 싫어하는 내가 800km를 걷겠다고 여길 왔다. 왜 그랬을까? 오늘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까지는 25km가 남았고, 그곳에 가려면 죽음의 오르막이라 불리는 해발 1400m의 피레네 Les Pyrénées 산맥을 넘어야 한다.

800km-1km=799km???

끝까지 갈 수 있을까? 1시간쯤 지났을 땐 이대로 계속 걸으면 객사하기 딱 좋겠다 싶어 땅바닥에 배낭을 팽개치고 털썩 주저앉았다. 털썩 앉을 힘도 없어 무릎을 간신히 구부려 쪼그려 앉은 자세를 만든 뒤 젖은 풀 속에 엉덩이를 눕혔다.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산을 10kg이나 되는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가야 하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선 뭘 좀 먹어야 기운이 날 것 같아 배낭을 뒤졌다.

초코바 2개와 400ml 물 한 병.

점심때쯤이면 도착할 테니 무겁게 이것저것 사지 않아도 된다고 초코바만 산 게 큰 착오였다. 이제 겨우 새벽 6시인데 한 개를 먹으면 앞으로 7시간을 남은 한 개로 버텨야 한다. 왜 그렇게 생각이 짧았을까? 하지만 내 불찰을 탓하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초코바 2개를 단숨에 우걱우걱 먹어버렸다. 이제부터는 400ml의 물에만 의지해야 한다.

해라도 좀 빨리 뜨지.

지난밤 10시가 넘도록 지지 않는 해 때문에 뜬 눈으로 12시를 넘겼는데, 겨우겨우  져버린 해는 뜰 생각을 안 했다. 늦게 지는 해는 뜨는 시간도 늦나 보다.


해만 안 뜨는 게 아니라 안개 때문에 1m 앞조차 희미했다. 추운데도 몸에선 땀이 주르륵 흐르고, 배낭 때문에 어깨는 무너져 내리고, 배낭보다 무거운 게 매달린 것처럼 다리는 천근만근인 데다가 안개마저 시야를 가려버리니, 감옥인지 지옥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누군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걸 확인하면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역시 안개만 자욱했다.

앞뒤가 꽉 막힌 길 위를 혼자 외로이 걷고 있다.
문득 이 길이 지난 내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처럼 지나가버린 과거를 짊어질 필요도, 희뿌옇게 보이지 않는 미래를 동경할 필요도 없다.
오직 이겨내고 살아가야 할 현재만이 존재한다.
아픔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즐기지 않는다면 현재는 다시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잠시지만 길을 통해 삶을 통찰했다고 해도 그것과 상관없이 여전히 내 몸은 오르막과 싸워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려 있었다.


안개로 앞뒤가 꽉 막힌 길 위를 (철학하는 소와 함께) 외로이 걷고 있다.




오르막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두 다리로만 걸어야 하는 인간인 게 원망스러웠다. 하늘뿐만 아니라 보이는 모든 것들이 노란 데다가 내 얼굴은 누렇게 떴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오르막을 오르느니 차라리 길에 침낭을 펴고 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10분에 한 번씩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돌바닥이건 풀숲이건 소똥 밭이건 상관없었다. 배낭도 카메라도 산 아래 낭떠러지로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꾹꾹 참았다.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느라 더욱더 지쳐갈 무렵 동이 트기 시작했다.

날이 밝자 한두 명씩 나를 앞서가기 시작했다.

“올라(Hola)!"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안녕하니? 좋은 길 돼라! 는 뜻이다. 전혀 안녕하지 못하고 좋은 길이 될 것 같지도 않았지만 예의상 대답했다. 올... 라...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답해주려니 심신이 피곤한 상태에서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자연스럽게 대답을 회피하고 땅만 쳐다보고 걷게 됐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걸으니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아 유 오케이(Are you ok)?" 한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해야 할 차례가 된 것이다.


“아임 오케이. 아임 오케이.”

이상했다. 괜찮다고 말하다 보니 정말 괜찮아졌다. 게다가 쉬는 길목마다 만나게 되는 독일인 클라우디(Cloudy)는 만날 때마다 과자를 나눠줬다. 이름과는 다르게 회색빛 구름이 아닌 찬란한 태양을 선물해 준 클라우디. 먹을 것을 줬다는 건 내게 살아서 만나자는 뜻이나 다를 바 없었기에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저녁에 만나면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꼭 얘기해야겠다.

고통스러운 오르막을 넘어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오후 1시 30분이었다. 내리막만 내려오면 끝인 줄 알았는데 여전히 노란 화살표가 이어져있다. 배가 고프지만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시간쯤 더 걸었을까? 배낭족들이 보이질 않았다. 언제부턴가 나를 앞지르는 사람도 없고 쉬는 이도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불현듯 두려움이 스쳤지만 애써 침착하려 노력했다. 떨리는 손으로 지도를 폈다.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30m쯤 되돌아갔더니 이정표가 보였다. 아우리츠 부르게테 Auritz Burguete? 이럴 수가! 2.4km를 더 걸어왔다.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를 지나친 것이다. 수많은 생각의 꼬리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되돌아가야 하나? 1시간 전으로? 이름도 성도 모르는 한국인들과 클라우디가 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아냐 아냐. 어떻게 걸어온 길인데 되돌아가? 그런데 알베르게가 없으니 여기에 묵을 수도 없고. 지도대로라면 앞으로 3.6km를 더 가야 알베르게가 있는데, 걸을 수 있을까?

26km+2.4km+3.6km=32km???

배가 고프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깨가 퉁퉁 부었어도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외로운 길이 시작됐다. 3.6km만 더 걸으면 알베르게와 먹을거리가 있다. 오직 그 생각만으로 2시간을 더 걸었다. 새벽길에 올라 32km를 걸어 12시간 만에 도착한 곳, 오리스베리 Aurizberri.

그곳엔 알베르게가 없었다! 아무도 더 가지 않는 길을 혼자만 걸어왔다. 알베르게가 없는 곳인 줄도 모르고. 더 이상 걷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꼭 알베르게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다니. 허무했다. 허무하다한들 몸의 피로를 이길 순 없었다. 알베르게보다 숙박비가 4배는 비싼 유스호스텔에 짐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길을 걸으면 흔적이 남는다.
흘린 땀만큼 촉촉이 젖고,
걸어온 땅엔 깊은 발자국이 남고,
쓰러져 누웠던 자리는 굳게 다져진다.


비록 길을 잃어 헤맸지만 그 덕에 다음날 많은 사람들에게 취조(?)와 관심을 받았다. 길을 걸으며 나를 스쳐갔던 사람들이 론세스바예스에 오지 않은 나를 찾고, 생사를 물었다고 했다. 실종 명단에 오른 난 그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핫한 인물’이 되었고, 그날 이후로 집중 관심 대상자가 되었다.


길을 잃으면서 남긴 흔적들로 인해 단단해진 길 위를 혼자가 아닌 여럿이 걷게 된 것이다. 단 하루 만에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찬란한 태양을 선물해 주었던 클라우디와도 여러 번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혼자가 됐다고 슬퍼했던 건 어느새 과거가 되었고, 안갯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현재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 여전히 길은 혼자 걷겠지만 도착해서 저녁을 같이 먹을 친구가 있다는 게 든든했다.


실종 그 후. 길을 잃자 길을 찾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