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의 이별 공식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를 용서하면 안 그래도 텅 비어버린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 미움이라도 가득 채우려고. 상처를 줬고 상처를 받았고 누군가를 탓해야 살 것 같아서 그를 욕하고 미워했던 건데. 미움에 끝이 없으니 나만 더 피폐해져 갔다.
“왜 그렇게 철이 없어요?”
남자 친구보다 13살 아래인 여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따지듯이 말했다. 따귀를 날리고 싶을 만큼 화나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결혼을 약속한 날이 두 달 밖에 남지 않았고 그 자리엔 남자 친구도 없었으니까.
해외에 있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약속하고 혼자서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다. 둘이면서도 혼자였던 3년간 외롭게 기다려왔는데 이제 와서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가 궁금했고 그래서 찾아간 것뿐인데... 그런 내 모습이 철이 없어서 더더욱 결혼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는 예비 시누이와 시어머니.
10년간 방송작가로 일했지만 글을 쓴다는 보람이 적었고 좀 더 만족할만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적어도 시나리오를 쓸 때만큼은 즐겁고 보람도 있었으니까. 경제적인 사정이야 당연히 어려웠지만 내 시나리오가 영화화될 날만을 꿈꾸며 그렇게 견뎠다. 그러다가 남자 친구를 만났고 결혼해서 해외살이를 할 계획이어서 글 쓰는 일은 잠시 접고, 적성에도 안 맞는 회사에 취직해 2년을 근무하며 결혼식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잠들기 전에 ‘사랑해’라고 말하던 그가 나와는 결혼을 못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전화로. 믿을 수가 없었다. 결혼을 못하는 이유가 엄마가 반대해서라고 했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다니... 사정이 이러니 눈치 없이 찾아간 내가 달갑지 않았던 거다. 그들의 마음속에 며느리로서의 나, 올케언니로서의 나는 없었던 거다. 게다가 아내로서의 나도.
해결되지 않은 무거운 숙제를 짊어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남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대체 집에 왜 찾아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와 끝이라는 걸 예감했다. 위로하고 안심시킬 줄 알았는데 화를 내고 있었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똑같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끝. 그는 그 후 단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다. 아마 일주일 후 입국했겠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 식의 이별통보는 처음이어서 황당했다. 1년 뒤에라도 연락이 오면 만나서 매듭을 풀고 싶었는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두문불출이다.
어쩌면 내 탓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소홀했다거나 부족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와의 결혼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여기고 오지도 않은 그 삶에 모든 걸 쏟아부었으니까.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오롯이 내 선택이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짊어져야 할 배낭이 무거운 이유일 것이다.
항상 무거운 배낭이지만 유독 더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비가 와서 땅이 질척거리는데 오르막까지 올라야 할 때.
7월에 시작된 순례길 내내 비가 여러 번 왔다.
뜨거운 기온에 우비까지 입고 걸으면 우비 안에서도 비가 온다. 이중으로 비를 맞으며 진흙으로 변해버린 길을 걸으면 신발에는 진흙더미가 들러붙어 열 걸음만 걸어도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발목에 무리가 간다. 진흙을 떨어내면 또 다른 진흙이 기다리고 있다가 신발에 장착됐다. 신발이 젖거나 말거나 물웅덩이만 나오면 뛰어 들어가 신발을 비벼 진흙과 이별했다.
제발 오르막만 없었으면 했지만 25km 코스에 오르막이 없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날도 예외가 아니었고 진흙을 잔뜩 붙인 채 오르막에 올랐다. 계속해서 달라붙기만 하고 떨어질 줄 모르는 진흙에 한바탕 욕을 쏟아붓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들러붙은 게 진흙이 아니라 그에 대한 미련이고 집착이었나? 무생물인 진흙에 대고 한 욕지거리가 스스로를 질책하는 채찍질인데도 자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끈질긴 진흙을 끈질기게 떨어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르막 끝에 올라서자 비가 그쳤다.
아직 길은 진흙으로 가득했지만 우비를 벗자 진흙 떨어내는 일도 한결 수월했다. 미련을 떨어내는 일도 할 만했다.
그와 이별했지만
이별하지 못해서 괴로웠던 나는
진흙을 떨어냄으로써
그와 진짜 이별을 했다.
상실의 아픔이 이렇게까지 큰 적이 없었던 건 그만큼 그를 사랑했고 그와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 거다.
그를 만난 4년은 인생의 황금기였다.
친절하고 자상하고 유머 가득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래서 더 헤어짐이 자꾸만 들러붙는 진흙처럼 떼어 내기 힘들었다. 그를 잃었을 때는 내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별하고 나니 우리의 삶이 아닌 온전한 ‘내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결혼을 위해 접어두었던 글쓰기도 다시 꺼내고, 잊고 있던 나를 돌아보게 했으니 한편으론 고맙다.
진흙탕 길을 걸으면서도 나를 버린 그를 생각했지만 그 길을 걸었기 때문에 그를 떨어낼 수 있었다. 이별 후에야 스스로를 사랑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으니, 이별도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