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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14. 2024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위경련이 찾아왔다

끝이 보이지만 끝나지 않는 길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두려움, 허망함, 허탈함 그리고 일종의 공포였다.


나를 위로해 주고 달래주고 안아주던 세상에서 가장 설레고 멋있고 든든한 내 편이었던 사람이

싸늘하게 돌변하여 내게서 돌아설 때의 그 배신감과 허무함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자꾸만 머릿속에 이런저런 말들이 떠올라 사무치는 그리움과 슬픔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잠을 잘 수 없었고 뭘 먹어도 맛이 없었고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처럼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에 갇혔다.




심한 몸살이 지나가고 다음날 멀쩡히 일어나 다시 걸었다.

신음하며 사경을 헤매는 나를 늦은 저녁까지 돌봤던 한국인 친구들은 하루 쉬라고 극구 말렸지만 굳이 걷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몸이 정말 괜찮아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해 보였는지 어제 종일 불덩이인 내 몸을 부축해 줬던 (동호의) 어머니는 오늘도 같이 걷겠다고 따라나섰다.


오른발을 떼면 왼발로 지탱할 힘이 없을 만큼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 걸었던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몸살로 앓는 내내 아픈 나를 위로하기보다는 나를 버린 그 사람을 미워했는데, 그렇게 미움이 떨어져 나간 건지 몸이 한결 가벼웠고 걷는 것도 그만큼 수월했다.


무엇보다 목적지인 부르고스 Burgos가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째부터 저 멀리 보였다.

도착 예정시간은 6시간이나 남았는데 눈앞에 목적지가 보이니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걸음이 빨라졌다. 빨리 간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바삐 걸었는지 모르겠다.


예상과 달리 2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나도 목적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무리 걸어가도 가까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끝이 보이지만 잡을 수 없는 길
닿을 듯 닿지 않는 요지경 같은 길


걱정으로 일관하는 어머니에게 보란 듯이 씩씩하게 걸었지만 멀어지는 부르고스의 윤곽만 붙잡고 걷는 게 쉽지 않았다.

원한다고 해서 다 얻을 수 없고, 다 얻은 것 같아도 전부가 아닌가?

나는 그를 원했고 그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떠나버렸다. 다시 잡으면 잡힐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믿고 허황된 미련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참 허무하고 지치는 진실게임이 아닐 수 없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부르고스는 8시간 만에 실체를 드러냈다.

앓느라 먹지 못했던 맥주가 절실했다. 어머니와 일행들이 모두 모여 외식을 했다. 메뉴는 케밥에 맥주. 목이 타들어가도록 터지는 탄산이 얼마나 개운하고 시원하던지 맥주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하루가 그 어느 때보다 길었지만 길었던 만큼 맥주 맛은 배로 좋았다. 내일부터 마땅한 그늘도 없고 그만큼 바(Bar)도 없는 대평원의 길을 걷게 된다. 새로 시작될 평원의 길을 맞이하기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잠든 지 얼마나 됐을까?

끙끙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 소리는 내 입에서 나오고 있었고 언제부턴지 배를 잡고 신음하고 있었다. 저녁에 먹은 케밥 때문에 체했나? 체했다고 하기엔 위장이 뒤틀리는 통증이 심상치가 않았다. 일어나서 약이라도 먹으려고 했지만 배를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위를 쥐어짜는 것처럼 끔찍하게 아팠다. 위경련이었다. 몸살이 났을 땐 몸 전체를 바위가 누르고 있는 것처럼 땅 속으로 꺼지는 것 같더니, 위경련은 배를 손으로 꾹 누르고 있지 않으면 살을 뚫고 나올 것처럼 꿈틀거리면서도 팽팽하게 당겨지는 게 반복됐다. 다들 잠든 새벽이라 누굴 깨우지도 못하고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그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부터 마셨는데 물이 지나가는 자리가 다 느껴졌다.

물만 마셨는데도 다시 통증이 시작됐다. 어쩔 수 없이 빈 속에 소화제를 삼키고 길을 걷기 위해 알베르게를 나갔다.


먹은 게 없으니 1시간도 걷지 않았는데 기력이 딸렸다.

약도 먹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어 비상식량인 초코바를 꺼내 꼭꼭 씹어 삼켰다. 1분도 되지 않아 어젯밤의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앉아있던 벤치에 모로 누워 배를 부여잡았다. 누르고 있던 손을 떼면 아픔이 배가 됐다. 위에 들어간 초코바가 다 소화될 때까지 아플 모양이었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 30분을 그렇게 누워있었다.


그와 헤어지고 잠을 못 자고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아직 덜 아팠나? 더 아팠어야 했나? 끝내지 못한 아픔을 이렇게 다시 되돌이표처럼 반복하게 된 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팠지만 걷기는 해야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게다가 대평원의 땡볕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평평하지만 험난한 길이었다.


평원에 들어서자 강렬한 햇볕이 나를 반겼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기왕 아플 거 아주 센 놈이 왔다 가면 다음번에 아플 땐 면역력이 좀 생기겠지. 그래서인지 중간중간 쉴 때마다 물을 마시면 아픔이 세포들이 하나하나 살아나서 나를 괴롭혔다. 물은 그나마 나았다. 씹어서 먹어야 하는 음식은 없는 세포까지 만들어내 아픔을 가중시켰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과 노란 밀밭의 조화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느 하나 그 풍경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는 평온한 길 위에서 내 존재만 낯설었다.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걸까? 길 끝에는 고통의 끝도 같이 있을까? 그놈의 사랑이 뭐라고, 실연이 뭐가 아프다고 이 고통을 사서 하고 있나?  


다시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말들이 걸음을 방해했다.

하지만 노숙을 할 게 아니라면 계속 걸어야 했고, 햇볕은 뜨겁고 바람도 없고 배낭이 무거워도 걷고 또 걸었다.


하늘 구름 밀밭만 가득한 대평원 한복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더니 배가 고팠다.

뭘 먹긴 해야겠는데 먹을 수 있는 건 없고, 누워만 있자니 처량해서 눈물이 났다. 저녁 무렵, 주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서 가봤더니 식탁에 수프가 차려져 있었다. 어제 저녁을 같이 먹었던 일행이 내게 주려고 일부러 준비했다고 했다. 토마토와 양파를 넣어 끓인 스페인 전통 수프. 아직은 뭘 먹는 게 겁났지만 그들의 정성을 생각해 한 숟가락 떠먹고 잠시 아프길 기다렸다. 30초가 지나도 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다시 한 스푼을 먹었다. 약간의 아픔이 있었지만 참을만한 정도였다.


“다 먹을 수 있겠어?”

“네. 아파도 먹을래요. 배고파요.”


일행들은 수프에 빵을 적셔 먹고 나는 수프만 먹었다. 수프가 지나간 자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언제까지 이 아픔이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뭐든 먹어도 괜찮을 때가 되면 그들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꼭 대접해야겠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상처 투성이다.

그걸 몸에 새기듯이 통증은 그날 이후 20일 동안 계속됐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까지.


어떻게 보면 운명처럼 아팠던 게 아닐까 싶다.

떠나간 그 사람이 앗아간 사랑을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차근차근 채워줬으니까. 그들은 내가 파혼을 하고 실연의 고통 속에 있다는 걸 몰랐으면서도 충분히 사랑을 나눠줬다. 그리고 아팠기 때문에 그 사랑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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