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다가 알려준 치유의 힘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사랑? 인정? 돈? 자유?
산티아고 순례길을 일주일 정도 걸어보면 이런 것들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우선 이 세 가지가 해결된 다음의 문제다.
먹고 자고 싸고
위가 아파서 못 먹고, 못 먹으니 기운 없고 배고파서 잠 못 자고, 역시나 못 먹어서 싸지 못하는 고통은 그 어떤 고통보다 우위를 차지했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로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는 건 사치에 불과했다.
먹고 자고 싸는 것의 중요함을 몸소 깨닫는 과정 중에 그녀, 보나를 만났다.
보나는 172cm의 키, 힐보다 높은 콧날에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과 뽀얀 피부를 가진 27세의 대학원생이다. 아직 20대인데 벌써 이번이 세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처럼 시작했던 산티아고 걷는 행위는 그녀의 학문에 깊이를 더해주는 일로 연결됐고, 이번엔 석사 논문 완성을 위해 가방에 설문지까지 잔뜩 넣어왔다고 했다.
첫날부터 가방에 든 옷가지와 책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빌려온 카메라를 당장이라도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걷고 있던 나와는 상반되는 그녀였다. 물론 이미 두 번이나 그 길을 걸었다고 하니 베테랑이 되었겠지만 -게다가 젊기도 하고- 아무리 논문을 쓰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보나의 가방을 들어보면 이걸 어떻게 메고 다녔을까 싶다. 10kg인 내 배낭보다 2배는 더 무거웠기 때문이다.
무려 20kg나 되는 배낭을 메고 시작부터 끝까지 걸어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설문조사를 할 거라는 보나에게 물었다.
“보나한테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떤 길이야?”
“지금 걷고 있고, 앞으로도 걸을 길이요. 제 목표는 이 길을 열 번 이상 걷는 거예요.”
“열 번? 도대체 왜?”
“이 길을 걸으면서
아픈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사람들이 낫는 걸 보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제 논문 주제이기도 하고요.”
이 길을 걸으라고 알려준 신부님도 그러셨다. 길을 걸으면 답이 보일 거라고. 산티아고 가는 길을 세 번째로 걸으며 그녀는 아픔에 통달한 건가? 내가 낫는 모습도 그녀가 볼 수 있게 될까?
보나는 외국인과의 대화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영어를 구사했다.
하지만 그들을 설득하여 긴 설문지를 작성하게 만드는 일은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때가 걷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됐을 땐데 겨우 5장의 설문지만 완성된 상태였다. 목표는 100명이라고 했는데 30일을 걷는 동안 한 숙소에서 3명 이상에게 설문지를 받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설문지의 문항은 30개가 넘었고 그 많은 질문에 답해줄 사람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기꺼이 그녀의 보조가 되기로 했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외국인들을 붙잡아 사인을 받아냈다.
그녀의 고마운 사람 목록에 오르게 된 그 일로 인해 보나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
설문지 작성을 돕던 어느 날, 보나의 배낭에서 설문지를 꺼내다가 의문의 봉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설문지도 모자라 무게가 상당한 봉지까지 가방에 넣고 다녔다니. 궁금함을 참고 묻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도 머릿속도 근질근질해졌다.
봉지 꿈을 꾼 다음날 새벽, 보나의 뽀얗던 얼굴이 나보다 더 누리끼리했다. 어디가 아픈 게 아닌지 걱정되어 물어봤다.
“괜찮아. 늘 그런데 뭐.”
늘 그렇다고? 단 한 번도 그녀의 얼굴이 누렇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나? 난 눈치 없이 다시 물었다. 대답을 피하던 그녀는 결국 내게 비밀을 털어놨다.
"매리질 않아. 못 눈 지 열흘도 넘었어."
'매리다'는 '마렵다'의 전라도 사투리다. 고로 이 말은 똥이 안 마려워서 즉, 안 나와서 똥을 눈 지 열흘이 넘었다는 얘기다. 젊고 예쁘고 건강한 줄만 알았던 그녀에게 묵직한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똥을 못 눈 건 타국에 왔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 있을 때부터 갖고 있는 그녀의 고질병이라고 했다. 그래서 배낭에 '거시기'를 챙겨 왔다고 했다. 똥을 잘 누려고 먹는 무언가를.
지금까지 비밀에 부쳐왔던 거시기를 그날 보나는 배낭에서 꺼내 보여줬다. 그제야 그녀의 배낭 속 비밀이 드러난 것이다. 배낭의 1/3이 거시기로 채워져 있었다. 거시기는 ‘타 먹는 유산균 가루’다. 당연히 배낭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거시기가 1/3, 논문 때문에 가져온 설문지가 1/3, 그리고 그 나머지가 그녀의 옷가지와 생활용품이었다. 그동안 밥 될만한 빵이나 고기는 거의 손에 안 대고 똥이 잘 나오는 유산균 가루만 먹었다고 했다.
그걸 왜 몰랐을까?
그렇게 붙어 다녔는데 한 번도 보나가 밥 대신 유산균물을 마신다는 사실을 몰랐다. 돌이나 다름없는 묵직한 걸 뱃속에 가득 채운 채 열흘을 버텼으니 그녀는 그동안 고행길을 걸은 것이다. 세 번이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똥 누기에는 통달하지 못했던 것인가?
"안 먹는 게 상책이 아냐. 고기든 빵이든 많이 먹어. 그리고 우유를 많이 마셔. 변비약은 있어?"
상식이 부족한 나는 남들 다 아는 얘기 외에 해줄 말이 없었다. 뾰족한 해결책을 알려주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보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체념하듯 유산균 가루를 물에 한 사발 타더니 마시기 직전에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메르다! 메르다!" 먹는 음식 앞에서 기도를 해 본 적은 있어도 주문을 외워본 적은 없던 난 의아하기만 했다.
"메르다가 뭐야?"
"똥! 이태리어로 메르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보나의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만의 신공! 이렇게 하면 매려울 것 같아서!"
신공이란 기도와 선공(좋은 결과를 낳는 공덕)을 통틀어 하는 말로 일종의 특별기도다. 문득 그런 신공이라면 나도 보나를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신공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그녀처럼 신공의 힘을 믿는 사람도 드물었다. 나는 그때부터 전력을 다해 신공을 했다. '보나 메르다! 보나 메르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빵을 먹다가도, 똥을 누면서도 '보나 메르다!'를 외쳤다. 지금은 비록 먹질 못해서 자주 못 가긴 하지만 그동안 하루에 한 번은 꼭 화장실에 갔던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그녀도 그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날 저녁, 빵을 뜯어먹으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허리를 바짝 끌어안았다. 먹고 있던 빵이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눴어눴어!" 보나였다. 그녀의 묵직한 것이 드디어 '뚝' 떨어져 나온 모양이다.
"진짜야? 정말이지? 오! 보나 메르다!"
"신공 빨 대단한데?"
나올 때가 돼서인지 신공 때문인지는 길을 걸어서인지, 그 순간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뽀얀 미소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그녀는 목표한 인원보다 많은 104명의 설문지를 완성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달 후 집으로 우편 하나가 도착했는데, 이름을 보자마자 ‘보나 메르다’를 외쳤다. 보나의 따끈따끈한 논문이었다. 눈문을 시작하며 쓴 감사인사에 내 이름도 적혀 있었다.
보나는 아픈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며 낫는 걸 보는 게 기쁘다고 했지만 그녀 자신도 치유되었고, 지켜본 나도 큰 힘을 얻었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만이 존재하는 삶의 근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새로운 자신을 찾고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 위 논문 p.97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을 걸으면서 겪게 되는 먹고 자고 싸지 못하는 고통은 길을 걷기 전에 각자가 갖고 있던 더 큰 고통을 잊게 하고, 그로 인해 힘들었던 기억을 축소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