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10년이 된 브런치에서 글을 쓴 지 4년이 되었다.
공백기도 많았지만 매년 이맘때쯤 진행된 출판 프로젝트에는 빠짐없이 응모했다.
매번 최다 응모라는 카피로 홍보글이 올라왔고 그럴수록 점점 어둠으로 밀려난 나는 한없이 움츠러들곤 했다.
내 자리는 또 없겠구나…
이번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 초대장을 보고 또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브런치는 자랑이라고 내놓은 숫자가 또다시 내 의지를 꺾기 위해 사나운 짐승처럼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수가 9.5만 명, 출간 도서 수만 1만 권이라니.
9.5만 명 중의 1명인 나는, 브런치의 소개대로라면 ‘한 줄로 서면 지하철 2호선 한 바퀴’, 그 속에서 눈에 띄려면 한강을 지날 때 수억을 들여 불꽃놀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출간 도서가 무려 1만 권이라는데 그중에 내 것은 없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채널은 숫자가 커질수록 함박웃음을 짓겠지만, 그 바늘구멍을 뚫고 어떻게든 책 한 권이라도 내보려는 나 같은 개미들은 점점 더 깊은 땅굴로 파고들 게 분명하다.
이번에도 내 자리는 없겠구나.
아무리 열심히 써도 시대에 맞고, 돈이 되고, 치명적인 재능을 가진 몇몇이 행운을 차지하겠구나.
영화 시나리오를 한참 쓸 때 열정에 활활 불타올라 있는 작가지망생들을 향해 시나리오 작가였던 강사가 찬물을 끼얹었던 기억이 났다.
너희들이 지금 누구보다 열심히 쓰고 있는 것 같지? 작가지망생이 몇 명인 줄 알아? 헤아릴 수가 없어서 통계도 안 나와. 공모전에서 1편의 수상작을 뽑으려면 1만 편의 응모작을 읽어야 돼. 수많은 공모전이 있는데 공모전마다 수천 명에서 만 명 이상이 응모를 한다고. 응모작 수로만 봐도 만 명 중의 한 명이 되어야 수상할 수가 있는 거야. 어떻게 해야겠어? 잠도 자지 말고 써야겠지?
나는 누누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강조했지만 나를 위로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위로받기를, 다른 사람을 위로하면서 나도 위로받기를 바랐다.
그러니 내가 쓴 글이 이 공간에만 머물다 가는 걸 원치 않고, 출간이 되어 세상에 널리 퍼지길 원한다.
그래서 더 공모전이 다가오고, 브런치(지금은 브런치에만 글을 쓰고 있으니까)가 이벤트를 열어 그 늠름한 숫자를 공개할 때마다, 글을 쓸 의지가 꺾인다.
회사 주식을 500만 주 가지고 있다는 대표는 주식창이 출렁거려도 별 신경 쓰지 않겠지만 겨우 500주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나는 개미에 불과하다. 흔들리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개미는 이번에도 쓰러질 준비를 하고 덤벼들어야 한다. 9.5만 명 아니 서울 인구의 반이라는 잠재 작가 440만 명 중 손가락 안에 드는 작가가 되기 위해 혼신을 다해야 한다.
세상에 작가지망생이 브런치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경쟁자로만 보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텐데, 이렇게까지 눈에 땀나는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쓸 수밖에 없는 나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나는 매일 새벽 노트북의 빈 화면과 싸우는 게 더 힘든 사람이다. 빈 화면을 채워나갔을 때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다. 오늘 쓴 글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읽히고 그들이 공감해 주고 공감을 표현해 줄 때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게 4년을 살아온 브런치 작가다.
내가 뚫을 수 없는 경쟁률과 채우지 못한 출간 도서 수만 생각한다면 ‘위로를 주는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잠시 흔들리고 좌절했다고 지난 4년 삽질한 시간을 헛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작가지망생이지만 매일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나를 존중하고 아끼고 대접해 줘도 모자라다.
몇 날 며칠 눈에 땀이 나고 머리에 쥐가 나고 손가락이 오작동을 일으키겠지만, 그 며칠이 지나면 노트북과의 눈싸움이라는 일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게 지금의 내가 택한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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