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모님과 매주 가던 카페를 4개월 만에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by 다시봄

부모님은 어린 네 남매를 데리고 자주 여행을 다니셨다.

형편이 좋은 것도 차가 있는 것도 아닌데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태워 새로운 곳에 데려갔다.

희미하게 남은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40여 년이 지난 지금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며 다시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엄마의 무릎 수술로 잠시 멈췄던 여행을 다시 시작하면서.





이번 추석 명절에 긴 여행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은 힘들어서, 젊은 자식들은 귀찮아서 하기 싫어 한다’는 명절 음식도 하지 않고, 굳이 명절에 모이지 않아도 자주 만나는 우리 가족 문화를 십분 반영하여 명절에 먼 데로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엄마의 무릎 통증이 심해지면서 인공 관절 수술을 하게 됐고 4개월이 됐지만 아직 걷는 게 불편한 엄마를 모시고 먼 길을 갈 수가 없어 여행은 자연스럽게 취소됐다. 그 아쉬움을 달래려 부모님과 30분 인근에 있는 카페 투어를 하고 있다.


논뷰 보러 가자는 엄마와 함께 간 카페 앞에 펼쳐진 가을 논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2층집에 사셔서 집에 가길 망설였던 엄마는 집에 간 첫날 계단을 올라가며 “괜히 왔다”고 후회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한 계단 한 계단이 엄마에겐 등산 막바지의 깔딱 고개처럼 힘겨워보였다. 손잡이를 꽉 쥔 손과 어깨에 힘이 풀리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위태한 모습이었다. 올라간 계단을 다시 내려오려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

그런데 다음 날 엄마는 통증을 참고 계단을 내려가셨다고 했고 그 후로 매일 두 번씩은 오르락내리락하시며 다리 힘을 키우고 계신다. 엄마가 의지가 대단한 분이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30초면 올라갈 계단에 3분 이상 고난도의 에너지를 쏟고 있는 엄마는 <무적>이었다.

그 덕에 엄마가 수술 후 집에 오신 지 한 달 만에 찾아온 명절에 우리는 카페 투어나마 할 수 있게 됐다.


매주 가던 카페를 4개월 만에 갔을 때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자세가 불편하고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의 표정은 처음 신기한 세상을 접한 아이처럼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좋은 것에 대해서는 표현이 풍부한 엄마지만 그날만큼은 말보다 표정에서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유독 커피가 맛없었는데도 엄마는 연신 싱글벙글이었고, 그걸 보고 있는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늘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아빠도 엄마 옆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특별한 순간’을 기쁘게 만끽하고 계신 얼굴이었다.

언제 다시 이런 날이 올지 기약이 없었는데 바로 그날이 오늘이라는 환희에 찬 하루였다.


오래 걸어야 하는 여행지에는 못 가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지금 이 시간이 나와 부모님한테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금보다 값지다.


엄마가 집에 심고 싶어하는 백일홍이 카페 정원에 흐드러지게 폈다


산 근처에 있는 고급 저택 느낌의 카페에서




시댁은 없고 친정만 있는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는 건 이제 너무 당연한 풍경이다.

가끔 언니 오빠가 합류하긴 하지만 대부분은 나와 부모님, 셋이 다니는 그림이 익숙해졌다.

당연하고 익숙한 그림을 다시 매주 그릴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무릎이 아픈 엄마도 넘어진 적이 없는데, 며칠 전 아빠가 계단에서 넘어지셨다.

다행히 몇 군데 타박상만 입은 정도였지만 그 일로 아빠는 “내가 이제 늙긴 했나 보다”며 의기소침해지셨다.


예전엔 없던 사건사고가 생길 때마다 부모님을 더 자주 뵈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아직도 혼자 있는 막내딸이 걱정인 부모님과 자주 놀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 잠시 쉬었던 연재 다시 시작합니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오늘보다 행복한 날은 없는 것처럼]

목 [영감 헌터]

금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토 [영감 헌터]

일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