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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처럼 고집스러운 엄마가 하루만에 땅콩을 완판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by 다시봄

무릎 수술 이후 아직 걷는 게 불편한 엄마는

잡을 것이 없어 방황하는 두 손으로 균형을 잡으며

막 걷기 시작한 아이처럼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언제 넘어질지 몰라 조마조마하고

넘어져 다칠까 걱정스럽게 보고 있던 나는 얼른 팔짱을 낀다.

엄마는 고집스러운 아이처럼 혼자서도 걸을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어쩔 수 없는 나는 우려하는 마음으로 엄마의 뒷모습만 지켜본다.


그런 엄마가 내가 모임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대형 사고(?)를 치셨다.




2주 전에 형부의 밭에서 수확한 땅콩은 며칠 간의 탈피 작업을 거쳐 지난 주말 엄마에게 전달됐다.

건조기에 말려달라고 부탁한 땅콩이 무려 60kg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그 땅콩을 말리고 고르느라 이틀을 꼬박 일했다고 했다.

말린 땅콩의 양이 너무 많아 지인들에게 연락해 팔기까지 했다고 하니, 하필이면 그때 모임을 간 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극구 말렸어도 했을 엄마를 도울 수는 있었을 텐데…


우리 남매들이 형부가 심은 땅콩을 수확하느라 고생하는 걸 지켜본 엄마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아 하셨다.

매번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라도 돕고 싶다고 했었다.

“다리를 구부려 앉지도, 잘 걷지도 못하는 엄마가 뭘 도우려고 해요? 엄만 그냥 가만있어도 돼.“

아무리 설득을 해도 엄마는 못내 아쉽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셨다.


엄마가 그렇게까지 형부의 일을 돕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 달 동안 그 집에서 요양을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퇴원 후 계단 때문에 아빠가 계신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큰언니의 아파트에서 형부와 셋이 지낸 엄마는, 정년 퇴임 후 다른 직장을 구해 일하며 퇴근 후에 밭일까지 도맡아 하는 형부의 성실한 면모를 보고 “저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가족들 먹으라고 심은 땅콩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 우리 남매들까지 동원되어 수확을 했지만, 그 정도 양이 아니었다면 분명 형부는 혼자서 그 일을 다 했을 사람이라며 뭐라도 일을 거들어주고 싶어 하셨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형부는 집에 계신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며 손에 물 한번 못 묻히게 했다는데, 주말에 땅콩을 말려달라고 맡긴 건 아마 건조기에 넣었다 빼는 일만 부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게 형부를 드디어 도울 기회라고 여긴 엄마가 불순물을 골라내고 유통까지 떠맡은 것이다.

못 말리는 엄마의 고집스러운 도움으로 그 많은 땅콩을 하루 만에 완판했다. 이 정도면 잘나가는 쇼핑호스트가 인정할 실력 아닌가?

형부는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했고 엄마는 힘들지만 뿌듯해하셨다.

이 정도면 두 사람의 케미도 인정해 줘야겠다.


형부는 우리 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했는지 내년엔 땅콩을 열 두 고랑에서 세 고랑으로 줄여 심겠다고 선언했다.

엄마는 형부의 건강을 먼저 걱정하며 이제 밭일 좀 줄이라고 당부했고, 우리도 관절이 아픈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말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형부의 땅콩밭. 내년엔 제발 조금만 심어주세요ㅜㅜ




우리 남매는 엄마가 회복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길 바라지만, 형부는 소일거리 정도는 하는 게 좋다고 늘 강조하긴 했었다.

어떻게 보면 형부의 말이 맞기도 하다.

엄마는 “꼼짝 마!”라고 하면 답답해하실 분이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도와주세요!”하면 기꺼이 발 벗고 도와주실 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짧은 시간에 고된 일을 하신 게 마음 쓰이긴 하지만 엄마가 좋아하시니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땅콩 하나로 가족애가 더 끈끈해졌으니 말이다.






*메인 사진은 작은 언니와 내가 줄기에서 털어낸 땅콩을 다듬었던 2주 전 사진입니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오늘보다 행복한 날은 없는 것처럼]

목 [영감 헌터]

금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토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일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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