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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행복했을까?(12)

엄마의 분리불안과 집착

by 메멘토 모리

“응. 지금 버스 안이야, 내려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아빠는 고속버스 안에서 20~30분 간격으로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시느라 애쓰셨다.

올해 1월 누나 아들의 결혼식에 아빠를 모시고 서울을 다녀오면서 집에 혼자 계셨던 엄마가 아버지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셨던 일을 떠올린다. 엄마는 아빠에게 “언제 와요?”, “빨리 와요”, “배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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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노환으로 몸져누우시면서 분리불안이 오셨다. 아빠가 엄마를 돌보시기에 엄마 곁에는 늘 아빠가 계셔야 한다. 아빠가 산책이나 볼일을 보러 집을 나서면 “너무 늦지 말아요.” “빨리 오세요.”라고 하신다.

아빠는 엄마는 물고기와 물이다. 수어지교(水魚之交)다. 두 분 사이에는 공간이 없다.

분리불안은 심리학적인 장애이고 질환이다. 그러나, 엄마가 아빠에게 가지고 있는 분리불안은 부부애다. 엄마는 늘 아빠에게 감사하며, 아빠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신다. 세상에 그렇게 멋진 부부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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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엄마집에 있는 30년 이상된 이불을 버리는데 곤욕을 치렀다. “엄마, 이 이불 너무 오래됐어요. 버립시다.”라는 내 말에 “안 된다. 겨울이 오면 내가 다 덮을 거야.”라며 정색을 하신다.

하는 수 없이 그 이불을 내가 가기고 가 사용하는 것으로 하여 아빠랑 입을 맞춰 좋은 보자기로 잘 포장해 집에서 가지고 나와 다시 종량제 봉투에 담아 처분하였다.

싱크대에 아래 보관되어 있는 오래된 락앤락은 엄마 몰래 하나씩 하나씩 버리고 있으며 이제 거의 정리가 되었다. 지난해 봄 부모님 집 옥상의 장독대 등을 처리하면서 엄마를 설득하느라 애먹었다.

엄마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하시다. 물건을 쉽게 사지도 않지만 한번 산 물건은 오래오래 사용하신다. 본인이 사용한 물건은 본인의 일부로 여기신다. 그러다 보니 그 물건을 처분할 때마다 엄마와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나의 학창 시절 밥상을 하나 사 오셨는데 얼마나 애지중지하셨는지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시간대별로 뻐꾸기가 울던 시계를 보며 진짜 뻐꾸기가 우는 것 같다며 아끼셨다. 그 시계를 10년 넘게 사용하셨다. 엄마집 다락방에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엄마의 처분을 기다리는 물품이 꽤 있다.

엄마는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시다. 나는 그것을 지독한 사랑이라 표현하고 싶다. 작은 것도 아끼며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은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엄마의 말씀. “아끼는 것은 미덕”이라는 철학이 어려운 형편에 우리 5남매를 키워내신 것이다.

엄마는 우리 가족과 관련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셨다. 그것이 지금은 분리불안과 집착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어쩌면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30년 된 이불은 내가 덮던 것이고, 옥상의 장독대에서 퍼온 고추장과 된장으로 나에게 맛난 음식을 해주셨기에 그 모든 것들이 엄마에게는 아직도 추억인 것이다. 이불과 장독대를 볼 때마다 엄마는 나를 추억하셨을 것이다.

엄마의 아빠에 대한 분리불안은 엄마, 아빠의 부부애 증거이며, 오래된 물건에 대한 집착은 나에 대한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엄마의 마음이다.

그런 사랑과 추억을 지금까지 간직하며 살아오신 엄마는 행복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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