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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Feb 24. 2024

학사모가 내게 남긴 것

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



봄이 찾아오기 바로 직전의 일이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서늘한 바람이 나를 깨웠다. 학교 앞, 혼자 살던 자취방은 벽과 기둥 사이로 바람이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곳이었다. 이런 바람을 '우풍(외풍)'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자취방 창문에는 바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에어캡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지만 큰 효과는 없는 듯했다.


날카로운 새벽 공기가 이불 깊숙한 곳까지 전해지면 나는 눈을 떴다. 공기가 나를 깨우는 시각은 대중이 없어서 어떤 날은 새벽 4시, 어떤 날은 새벽 6시에 잠에서 깨곤 했다. 전날 마신 술로 피곤함에 절은 날을 제외하고는 군말 없이 침대를 벗어났다. 그저 아침을 맞을 운명이겠거니 했다.


그날 아침에도 잠에서 깨어 학교 갈 준비를 했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 뒤 오랜만에 셔츠도 꺼내 입었다. 후드티 차림이 익숙해져 있던 터라 내 모습이 조금 어색했다. 겨울마다 입는 검은색 코트를 셔츠 위에 걸치고 면접할 때만 신던 구두를 끄집어내 신은 뒤 집을 나섰다. 찬 바람이 문밖에서 나를 반겼다.


추운 겨울을 헤치고 가까스로 학교에 도착했다. 공강이 많은 금요일은 메아리가 울릴 듯 학교 건물이 텅 빈 경우가 많았다. 나의 졸업식이 있었던 2월의 대학 풍경도 그랬다. 중‧고등학교 졸업식과 달리 대학 졸업식은 거창하지 않게 진행된다. 대학본부에서 주관하는 졸업 행사가 있긴 하지만 참여 인원은 많지 않다. 단과대 앞에서 친구, 후배와 함께 사진을 남기고 헤어지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졸업을 맞아 나는 평범한 일들을 해나갔다. 내가 다녔던 학과에서는 졸업생에게 학과 사무실로 찾아와 개별적으로 졸업장을 받아 가라고 알렸다. 그해에는 졸업 인원이 많지 않아 학교 안은 고요했다. 별생각 없이 받아 든 졸업장을 손에 쥐고 나를 축하해주러 온 친구, 후배 몇몇과 함께 사진을 남겼다. 기념 촬영을 마친 후에는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취업이라는 큰 산을 앞에 둔 나에게 졸업식은 딱 그 정도 의미였다.


졸업이 언제냐는 미자 씨의 질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벌써 끝났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태평한 태도와는 달리 미자 씨는 내 답변에 적잖이 실망한 듯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표정에서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엄마한테 말을 해야 엄마가 내려가서 축하도 해주고 하지 왜 말도 없졸업을 해버렸노""

"부산까지 귀찮게 뭐 하러 와요. 졸업장만 받는 거라서 그냥 잠깐 가서 받고 왔어요"

'축하'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생각한 나는 미자 씨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축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친구들과 충분히 나눴다는 게 나의 해명이었다.


"니 보러 가는 김에 나도 모자도 써보고 할 거 아이가"

미자 씨의 본심은 이어지는 말에서 툭 튀어나왔다. 아들의 졸업식을 계기로 '모자'를 한번 써보고 싶었다는 게 그녀의 숨겨진 마음이었다.

"니 친구들한테도 축하해줘서 고맙다고 밥도 한 번 사주고 했어야 하는데"

미자 씨는 자기도 몰래 터져 나온 진심을 머쓱한 듯 주워 담았다.


엄마의 말은 그제야 나에게 전달됐다. 대학 문턱을 밟아보지 못한 미자 씨는 아들의 졸업식을 핑계 삼아 '학사모'를 써보고 싶어 했다. 이 마음을 '축하해주지 못해 아쉽다'는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말의 그릇이 너무 작았으리라.


생각해 보면 자식들이 번듯한 4년제 대학을 가는 건 미자 씨의 가장 큰 소원이었다. "괜찮은 대학을 졸업해 괜찮은 직장에 가야만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 안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기도 했다. 공부를 마음껏 하지 못한 '한'이 있던 미자 씨는 자식들에게 "할 수 있을 때 공부해라"고 자주 말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대학 졸업식에 간 이야기를 하거나 학사모를 쓴 채 자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유할 때면, 그녀는 둘째 아들의 졸업식만을 손꼽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날 일을 계기로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했다. 나의 삶이 단순히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것.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온 유‧무형의 모든 것들이 더해져 지금의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아주 단순한 사실이었지만 지금껏 이를 믿지 못했다. 믿지 않으려 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 졸업식 사건은, 어떤 특정한 일이 내게 미치는 영향만 고려했던 것에서 벗어나 나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다. 때로는 의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대학을 떠나온 지 3년 후 나는 다시 학교를 찾게 됐다. 평소 아끼던 후배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근처에서 꽃다발을 산 뒤 방문한 학교에는 이른 봄 냄새가 났다. 졸업 인원도 몇 년 전보다 늘어난 듯 학교는 꽤 떠들썩했다. 3년 전 내가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던 장소에는 이미 후배와 그의 부모님이 자리를 잡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축하의 말을 전하고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우린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날, 후배와 그의 부모님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평소 진지한 표정으로 어려운 세상살이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던 그였지만 그날만큼은 어린아이가 된 듯 해맑았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어머님의 모습도 그 못지않게 밝았다. 화기애애했던 식사 자리를 마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후배는 가족의 차를 타고 본가인 김해로 돌아간다고 알렸다. 차에 올라타면서 나는 후배 녀석이 처음으로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본가로 향하는 후배와 그의 부모님 머리 위에는 학사모가 둥둥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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