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
내가 선호하는 카페는 넓으면서도 사람이 없어 한적한 분위기의 카페다. 1층에서 커피를 사서 올라간 뒤 2~3층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면 더 좋다. 거기다 콘센트까지 갖춰졌다면 '금상첨화'.
널찍한 공간에 사람이 없다면 그 카페의 경영을 걱정해야겠지만 그래도 넓으면서도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 몇 시간이고 눈치를 보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편하기 때문이다. 동네의 조그마한 카페보다 스타벅스 같은 대형 카페를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
어느날 글을 쓰기 위해 찾은 카페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오픈 시간을 딱 맞춰 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원래 한적한 곳이라 더욱 조용했다. 항상 그렇듯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책을 조금 읽다가 글쓰기를 시작할 참이었다. 가게의 불황을 인질로 삼은 고요함 덕분에 나는 책을 읽기 편했다.
책장을 20페이지쯤 넘겼을까. 웅성거리는 아래층의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깔깔대는 어린이의 목소리와 그들을 제지하는 어른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어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아이들은 계속 무엇인가를 조잘조잘거렸다. 순간, 오늘의 책읽기가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아니나 다를까 5분 정도가 지나자 한 가족이 어린아이 둘의 손을 잡고 모습을 드러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그의 부모님과 할머니로 보이는 다섯 식구였다.
나의 옆 옆 테이블에 앉은 가족은 자리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러 들으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쪽으로 자꾸 귀가 향했다. 막내아들인 남자아이와 누나가 자주 싸운다는 이야기, 산만한 남자아이가 학원에 가면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이야기 따위가 커피잔 사이를 오갔다. 어른들이 자신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아이는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잠시 후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남자아이의 떼쓰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케이크를 두고 남매 사이의 쟁탈전이 벌어진 듯했다. 남자아이의 아버지는 "케이크는 누나가 먹고 싶어서 시킨 것"이라며 다른 케이크가 있음을 알렸지만, 남자아이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누나가 동생에게 케이크를 양보하면서 싸움은 일단락됐다. 잔뜩 성질을 부리던 아이는 케이크를 한 입 먹고는 얼굴에 천사 같은 미소를 띠었다.
기분이 좋아진 남자아이는 조용히 어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할머니 옆으로 찾아가 이 말 저 말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하는 휴대전화 게임에 관한 이야기인 듯했다. 새의 지저귐 같은 소리에 할머니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내 시선을 잡아끈 건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손자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꽤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음껏 털어놓으라는 듯 온화한 표정에 새끼 종달새는 지저귐으로 화답했다.
'저게 즐거울까…. 나는 재미 없어 보이는데….'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 순간, 그 할머니의 모습에서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가 겹쳐 보였다.
생각해 보면 외할머니도 나에게 저런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가끔 방문한 할머니 집에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면 그녀는 별다른 대꾸 없이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가 내 이야기를 매우 흥미로워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떠올려보면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신나서 떠드는 손자의 모습'을 좋아하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할머니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은 분명 대비되는 지점이 있었다. 명절을 맞아 겨우 찾아간 집에서도 나는 '가족과의 시간이 흥미롭지 않다'는 이유로 친구와 약속을 잡곤 했다. 가족과는 예의상 저녁을 함께 먹고 집 밖으로 쏜살같이 나오던 나였다. 지난 설에도, 지난 추석에도 그랬다. 다들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문득, 어른이 된다는 건 '할머니의 세계'와 가까워지는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의 모양도 어른스러워지는 것. 나 말고 다른 존재에 대한 흥미를 느끼는 것. 다른 존재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것. 그 다른 존재가 '혈육'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지면 더욱 예뻐 보이는 게 아닐까.
할머니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이 부분을 꼭 물어보고 싶다. 그때 정말 나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거냐고. 아니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귀해 보여서 그랬던 거냐고. 사랑을 뭐라고 생각하냐고. 아마 나의 할머니는 이런 질문을 하는 나의 모습을 예전의 그 온화한 미소로 지켜볼 것 같다.
'케이크 소동'이 있은지 한 30분쯤 흘렀을까. 가족들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아이의 집으로 가 시간을 좀 더 보내기로 결정한 듯했다. 새끼 종달새는 의자에서 일어나 할머니의 손을 꼭 붙들었다. 그들이 앉았던 카페 테이블에는 '사랑'처럼 보이는 부스러기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20페이지 남짓한 책을 읽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