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스 Mar 16. 2024

할머니와 엄마 그 사이 어딘가

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


미자 씨가 꺼이꺼이 우는 것을 본 날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던 같다. 외할머니의 장례식날. 목청 좋은 엄마는 목청 좋게도 울음을 터뜨렸다. 실내를 가득 메우는 울음소리를 감출 기색도, 눈에서 떨어지는 보석 같은 눈물방울도 숨길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셋째 딸인 엄마는 괄괄한 성격으로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와 자주 다퉜더랬다. 엄마는 생활 습관부터 행동거지까지 딸의 모든 일상에 '입을 대는' 외할머니가 미웠다. 마음급한 성미에 깔끔한 성격을 지닌 외할머니는 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싫은 소리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성격'하는 미자 씨도 그런 엄마에게 맞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칼과 방패의 싸움.


나도 가끔씩 할머니와 엄마가 다투는 모습을 목격한 적 있다. 어린 시절 우리 형제는 엄마와 함께 할머니 집에서 살았고 두 사람은 양육방식, 일상생활 문제 등으로 종종 실랑이를 벌였다. 대부분 할머니가 엄마에게 양보하는 식으로 대화가 마무리 됐고, 할머니는 "애를 버르장머리 없이 키운 내가 잘못"이라며 한풀이 하는 것으로 화를 삭였다. 

"내가 죽어봐라 니가 제일 많이 울끼다"

승자가 되기를 기꺼이 포기한 할머니가 이렇게 내뱉으면,

"그런 소리를 만다하노!"

괜히 무안해진 엄마는 소리를 '악'하고 질렀다. 


걸핏하면 다투던 두 사람이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두 사람은 꽤 친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엄마는 할머니에게 자주 의지했다. 큰이모 병원비 문제로 돈이 필요해진 할머니는 사위에게는 알리지 않고 엄마마에게 살짝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가 큰 부부싸움을 겪은 날이면 그녀는 밤이고 낮이고 친정집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은 단짝처럼 언제나 서로가 필요할 때 가만히 어깨를 내어주는 존재였다. 


나이에 비해 건강했던 외할머니는 정말 바람처럼 세상을 떠났다. 외할아버지를 먼저 여의고 혼자서 지내던 시간이 많아진 게 화근이었다. 여느 때처럼 부지런히 부엌일을 하던 할머니는 갑작스레 쓰러졌고, 손 쓸 새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작은 이모가 뒤늦게 할머니를 발견했고, 그제야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우리 가족에게도 전달됐다. 


엄마가 처음 내게 연락했을 때 나는 엄마의 말을 좀처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만큼 울먹이는 미자 씨의 목소리를 듣고, 안 좋은 일이 있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대화가 거의 불가능했던 미자 씨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했는지, 장례식장 주소만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자초지종은 그곳에서 직접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차마 실감 나지 않은 상태로 장례식장에 도착했지만 엄마는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아보였다. 내 모습을 알아본 이모들이 나를 먼저 반겼다. 시름에 잠긴 이모들의 어깨 너머로 영정사진 앞에서 대성통곡 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미자 씨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 아닌데도, 그날은 무척 놀랐다. 누군가 슬픔을 덕지덕지 품은 여성을 그리라고 한다면 나는 그날의 엄마 모습을 떠올릴 것 같다. 


할머니의 말은 놀랍게도 진짜였다. 슬픔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측량할 수는 없겠지만 울음으로 따지면 엄마의 그것이 압도적이었다. 엄마가 끊임없이, 서럽게 울어대던 통에 엄마의 눈은 장례식 내내 마를 새가 없었다. 

"니가 제일 많이 울끼다"며 엄마에게 핀잔을 주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되살아나 머릿속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와 가장 많이 다투던 엄마는 할머니와 가장 비슷한 모습의 사람이 됐다. 깔끔한 성격에 급한 성미까지. 붕어빵처럼 할머니를 빼다 박았다. 미자 씨는 할머니가 자신에게 그랬듯, 집 좀 치우고 살라며 막내딸에게 싫은 소리를 쏟아낸다. 성격만 닮은 게 아니라 가족을 끔찍이 여기는 그 마음도 판박이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도 유전인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몇 년이 흐른 지금, 엄마는 점점 할머니의 모습을 닮아간다. 얼굴도, 몸짓도, 성격도, 왠지 모르게 짠한 그 모습까지도. 엄마의 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는 꼭 집을 지키는 '성주신'처럼 동생들을 끔찍이 챙긴다. 할머니가 그랬듯. 

엄마는 지금도 머리가 복잡할 때면 할머니가 모셔진 절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두 시간 가까운 거리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걸어 올라야 나오는 곳이다. 그곳에서 할머니가 엄마를 기다린다. 


가족이라는 건 그런 걸까. 의견이 맞지 않아 매번 티격태격하면서도 어느새 서로 닮아 있는 것. 뒤돌아보면 그리운 것. 세상이 떠나가라 펑펑 울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 엄마의 생일날. 나도 엄마와 닮아 있을까 생각하는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