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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아 Jul 18. 2022

취향의 바다

바틀샵과 브루펍

확실히 요즘은 조금만 노력해도 양질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세상이다. 접근성도 좋아졌고, 선택지 또한 많아졌다. 당장 편의점만 가도 IPA부터 시작해서 앰버 에일, 밀맥주(바이젠,  위트 에일, 화이트 에일 모두 밀맥주에 속한다), 사이더, 둥켈 등 다양한 스타일을 만날 수 있다. '라거(Lager) 밭'이었던 맥주 냉장고가 꽤 다채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경험할 수 있는 국외 브루어리의 맥주의 수는 근 2-3년 간 확연히 늘었으며, 국내 브루어리에서도 언어유희나 귀여운 캐릭터를 섞어 패키징 한 맥주를 내놓으며 점점 칸수를 늘리고 있다. 최근엔 'MBTI 맥주'라는 것도 나왔던데, 각자 다 다른 맛이 아니라 패키징만 다른 걸 알고는 조금 실망했다. 곰표 맥주 성공의 영향인지, 아직까지 편의점에 유통되는 국내 브루어리 맥주들 중 대다수가 맛보다는 패키징에 열과 성을 기울이는 것이 느껴진다. 애초에 편의점이 정말 맛있는 맥주가 마시고 싶어서 오는 사람보다는, 대화나 안주의 맛을 끌어올려줄 재밌고(?) 시원한 맥주를 찾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공간이라 판단해서 아닐까. 마진을 남기는 등의 가격적인 측면에서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국내 브루어리 맥주는 맛이 없다,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지금껏 도전해본 바로는 확실히 성공률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네 캔에 만 천 원으로 값이 올랐대도 보장된(?) 해외 맥주들에 손이 더 잘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편의점에 유통할 여력은 안되지만, 누구보다 맥주에는 진심인 소규모 국내 브루어리가 지역마다 꽤 많다. 서울만 해도 서울집시, 서울브루어리, 아쉬트리, 맥파이, 미스터리브루잉 등 다채로운 맥주 스타일을 양질의 안주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고, 부산의 와일드 웨이브나 고릴라, 강릉의 버드나무, 춘천의 감자 아일랜드, 가평의 크래머리 브루어리 또한 그러하다. 여행 갈 일이 생기면 그 지역에 브루어리가 있는지부터 찾아보는 건 나의 작고 기분 좋은 습관이다. 편의점 맥주보다야 당연히 돈이 많이 들지만,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있고, 힘이 있다. 사실 무어든 취향이 같은 이들이 모여 있으면 절로 나는 시너지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주기적으로 브루펍(브루어리에서 운영하는 펍)이나 바틀샵(맥주, 와인 등을 취급하는 테이크아웃 전문 주류판매점)을 찾게 된다. 


어제는 오랜만에 맥파이에 들러 새로 나온 '산도롱 산도롱'을 마셨다. 쌀을 사용하여 만든 콜드 IPA. IPA(Indian Pale Ale) 같은 에일 종류는 라거에 비해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발효 및 숙성을 거치는 편인데,  차가운 온도에서 발효를 시켜 콜드 IPA라는 이름이 붙었다. 쌀 특유의 달짝지근하면서도 가볍게 거친 목넘김이 좋았다. 느껴지는 비터(쓴맛)도 세지 않아 여러 잔 마실 수 있게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여름과 어울리는 맛. 맥파이에는 매년 레시피를 조금씩 바꾸어 만드는 계절 시리즈가 있다. 홉이나 부재료를 바꿔가며 매년 새 배치로 만나는 봄마실-여름회동-가을가득-겨울방학(새삼 느끼지만 이름을 늘 잘 짓는단 말이지.)을 차례로 맛보는 일은 맥파이 맥주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반가운 연례행사이기도 하다. 두 번째 잔으로는 여름회동을 마셨는데 작년에 마셨던 배치보다 훨씬 산뜻하고 깔끔했다. 여름회동은 밀맥주의 부드러운 목넘김과 IPA의 호피한 특징을 함께 살린 호펜바이세라는 스타일인데, 어느 하나가 유독 강하거나 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려서 기분 좋은 음용성을 가지고 있었다. 끝까지 물리지 않고 마실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고민의 흔적이 녹아있는 브랜딩은 애정을 갖게 만든다. 눈을 홀리는 예쁜 패키징 뒤에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늘 먼저인 것이 느껴지는 건 만드는 이들의 노력과 고민과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잘 만든 맥주를 가벼운 분위기에서 떠들며 즐길 수 있는 크래프트 맥주 신(scene)의 문화를 아낀다. 즐거움을 주축으로 한 문화의 번성은 한 군데 고이지 않고 흐르기 마련이다. 맥주 한 잔이 이룰 수 있는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만든 브랜드는 결국 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을 불러 모은다. 그 안에서 생각지 못한 시너지가 생겨나고, 이벤트가 생긴다. 개울이 강이, 강이 바다가 되어 해변가로 사람을 모으는 것처럼 어떠한 취향 기반의 문화가 자극적인 것에 기대지 않고 애정어린 마음들에 기대어 꾸준히 흐른다면, 언젠가 더 접근하기 좋은 모양새로 더 다채로운 맥주들이 뻗치지 않을까. 다양한 이들이 더 다양한 맥주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편의점의 맥주 냉장고가 지금과 같은 모양새가 된 것만 해도 분명 장족의 발전이지만, 언젠가 편의점에 세종(saison)이나 사워(sour)도 당연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자꾸만 생긴단 말이지. 


어떤 취향을 갖게 되면 단순히 이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이들에게 이를 전하고 싶은 욕심이 늘 피어난다. 함께 좋아해 줘, 라기 보다는 이런 게 있는데 나는 되게 좋아하거든. 구경해볼래? 의 느낌. 청유나 권유보다는 가벼운 제안을 더 넓은 곳에 던져두고 싶다. 그 마음을 담아 영상을 찍고 글을 쓰는 일을 꾸준히 해왔음에도 여전히 어려운 일 투성이. 그래도 계속 하고 싶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기록하고 나누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 고민한다. 어떤 물결을 만들어야 더 많은 사람을 태워 더 멀리갈 수 있을 지를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뭐, 그렇다구요 !


덧) 요즘 가장 궁금한 맥주 서순라길에 위치한 서울집시의 스콜위트. 패션푸르츠의 캐릭터가 매력적인 밀맥주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사라지기 전에 들러 마시고 싶은 마음뿐이다. 사워 팜하우스 에일(세종과 같은 스타일. 벨기에에서 만들어야만 세종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팜하우스 에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이라는 파이어 플라워도 너무 궁금해.. 사라지지 마.. 내가 얼른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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