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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아 Sep 12. 2024

이상은 없다, 그래도.

사실은 그래서

 교토에 온 지 세 달하고 반이 지났다. 한 번쯤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던 작년 여름의 마음이 나를 이곳에 데려다 둔 것이다. 7년 간의 연희 생활을 마무리하고, 두 번째 자취집이 교토 한복판에 생겼다. 네 배는 높은 월세를 내며 네 배 가까이 넓은 도로를 창밖으로 내려다보며 지낸다. 빛이 빨리 끊겨 아쉽던 지난 반지층 집의 기억이 희미해질 정도로 볕이 쏟아지는 방에 살게 되었다. 도착한 첫날, 커튼 없이 잠들었다가 그대로 살이 익을 뻔하고는 챙겨 왔던 담요와 천으로 부랴부랴 커튼을 만들어 달았다. 노을이 내려앉을 즈음엔 반대편 건물과 해가 지는 방향이 절묘하게 만나 반사광을 만들어내는 건지 이 13층 건물 중 딱 7층, 내가 사는 호실에만 저녁 볕이 든다. (맞은편 골목에서 집을 향해 걸어오던 날 발견하고는 웃겨서 사진도 찍어두었다.) 


저기 딱,, 빛이 내려앉는 곳이 우리집. 나는 다른 집도 다 이런 줄 알았어.. ~


내게 있어 여행은 몸이든 마음이든 환기가 고픈 순간에,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곳에 머무르기 위함의 일이다. 별 계획 없이 도착한 낯선 장소에서 그곳의 하루가 원래 나의 일상이었던 것마냥 산책을 하고, 동네 빵집을 지나치치 못하고, 숙소 앞 카페나 술집들을 기웃거린다. 부러 찾아서 하는 게 있다면 그 지역의 크래프트 맥주 펍이나 브루어리를 찾아 들르는 것 정도. 어쨌든 그 정도까지가 내 여행의 전부라는 사실을 좋아한다. 그래서 관광이나 쇼핑, 도전이 주목적인 여행은 크게 끌리지 않아 하고, 혼자 하는 여행을 가장 마음 편안해한다. 누군가는 재미없어할 하루를, 내가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으니까. 여행에서 마주하는 사람이나 공간에 섞이는 일에 큰 흥미를 느끼는 편이어서, 여행을 하다 자연스레 대화가 트여 함께 하나의 장면이 되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희열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정말 쉬고 싶을 때면 잠깐이라도 혼자 훌쩍 떠날 곳과 기회를 엿본다.


이십 대 초반, 혼자 제주도 여행을 다니다 친해진 카페사장님들과 함께 책을 만들기 위해 제주에 두 달가량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그때 분명히 깨달았던 것 같다. 낯선 곳에 간다고 해서 그곳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는 편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애초에 단기간에 애쓴다고 알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머물게 된 숙소의 동네라든가 가고 싶던 가게가 있는 골목 정도의 범위 안에서,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을 끌어안고 정을 붙이는 일을 더 좋아한다는 걸. 그래도 두 달이면 제주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법도 한데, 가끔 지인이 놀러 올 때나 되어야 렌터카를 얻어 타고 제주시 반대편도 가보고, 서귀포까지 가보고 했다. 그 외에는 집 근처 해안도로를 산책하고, 20분은 걸어가야 나오는 마트에서 서툴게 장을 봐 밥을 해 먹고, 창밖 밤바다를 친구 삼아 머리를 싸매며 글을 쓰고, 카페가 바쁜 날이면 출근해 일손을 도왔다. 그렇게 지내는 것만으로 시간이 금세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두 달을 보냈던 것이 후회스럽지도 않다. 제주에서의 시간 덕에 첫 자취를 큰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었고, 오롯이 혼자서 당시의 여러 고민을 직면할 수 있었다. 나 개인의 취향 역시 그 시기에 많이 탐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ISBN도 붙지 못한 채 카페 굿즈에 그쳤지만 어쨌든 인생 첫 책을 써보기도 했다. 그게 몇몇 이에게는 다정하게 가닿았을 테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적어내지 않았다면 금세 휘발되었을 나의 스물둘이 켜켜이 묻은 기록이 세상 어딘가에 놓여 누군가의 손에 읽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차고 넘치지 않나.


그때의 기록들. 인스타그램 보관함에서 찾았다. 8년이 흘렀구나.


교토는 작년, 코로나로 인한 물리적 제한의 대부분이 나아진 이후 정말 오랜만에 홀로 떠난 첫 여행지였다. 프리랜서 생활을 고집하다 처음으로 취직을 했던 곳에 경영난이 찾아왔고, 회사에서는 메인 서비스를 제외한 것들부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몸담고 있던 팀은 그중 정리 대상 1순위였다. 줄어드는 복지와 급여를 차치하더라도 팀 이동을 하면서까지 회사에 남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희망퇴직금을 받고 입사 5개월 만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시기가 겹쳐 오래 만나던 애인과도 이별을 했다. 몸에도 마음에도 환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열흘 간의 교토행을 결정했다. 시간이 생긴 김에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현지인들과 대화하며 놀고픈 마음에서였다. 도모다치와 다마고치를 헷갈려가면서 더듬더듬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여행은 내 삶에 있어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어디를 가든, 가지 않든, 누구를 만나든, 언제 잠들고 언제 일어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조금 더 솔직하게는 '내가 나에게' 별 말을 않고 있다는 사실이 개운했다. 그저 그 순간 내가 나와 함께 마냥 행복해하던 순간이 어쩐지 생경하고 또 자유로웠다. 조금이라도 자기네 말을 하려고 애쓴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몇 배로 늘었다. (혹시 몰라 배워갔던 간사이 사투리가 큰 몫을 했다.) 띄엄띄엄 단어를 잇는 나의 속도에 맞추어 대화를 이어가주었고, 눈이 마주칠 때면 싱겁게 술잔을 부딪혀 왔다. 그 장면들이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일본어 공부를 계속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쌓여 조금 더 말할 수 있게 된 즈음에 또다시 교토에 갔고, 지난 여행에서 만나졌던 이들을 다시 찾아가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작년 세 번의 교토행 비행기에 올랐고, 합해서 20일 남짓의 시간으로 한 번쯤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결과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건 수능이 마지막이었으면 했었는데. 이십 대 막바지에 워홀이라니. 스스로 유별나게 싫은 것도, 유별나게 좋아하거나 바라는 것 또한 없다고 생각해 왔기에 시간과 돈, 체력까지 써가며 어떤 것을 기다리는 일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동시에 무섭기도 했다. 부러 나이 핑계를 대가며 떨어질 확률에 더 마음을 두려 애쓰기도 했다. 안된다고 재수를 할 것까진 아닌 것 같고, 돈 모아서 한 달 살이라도 해보자, 라 생각했다. 하지만 붙어버렸지요? (엥.) 결과가 나온 이후로는 돈을 아끼고, 타국 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틈틈이 찾는 동시에 자취방을 정리하면서 다섯 달가량을 보냈다. 나름 꾸준히 비워내며 지냈는데도 7년 간 쌓인 1인분의 흔적은 자주 막연한 무게로 다가왔다. 삶에 이사라 할 법한 것이 거의 없었던 지라, 이사와 출국이라는 낯선 두 가지가 겹쳐서 더 스트레스였다. 다정한 지인들의 작고 큰 도움 덕에 어찌어찌해내기는 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 이러면 삶은 꼭 기출변형 문제를 던져주던데..) 어쨌든 무사히 교토에 왔고, 그렇게 100일가량이 지났다. 


교토의 집은 2년 계약이지만, 비자가 1년 짜리기 때문에 최소한의 짐만을 둔 채 더 늘리지 않으려 생필품 외의 쇼핑과는 거의 담을 쌓고 지낸다. 혼자 산 이래로 가장 자주 사 먹는 채소인 양배추가 한국의 4-5배 가까이 저렴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마트에 가는 재미가 있다. ( 평균 170-200엔 정도인데, 오늘 마트에 가보니 꽤 크고 묵직한 것들을 개 당 99엔에 팔고 있었다. 정말 사고 싶었는데.. 아직 집에 양배추가 반 개는 남은 데다 며칠 집을 비울 일이 생겨 포기했다. 흑. ) 장 보는 게 재밌어지니 자연히 외식할 일이 적고, 생활비를 신경 쓰다 보니 바깥에서 혼술을 하며 노는 일도 현저히 줄었다. 바이토(아르바이트)와 장보기, 유튜브 촬영과 편집만으로도 한 달이 금세 흐른다. 영상으로는 이미 교토에서의 삶을 충분히 기록하고 있는 셈이지만, 어쩐지 내 고유의 말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매 달 다른 시프트에 내 한 주 스케줄과 컨디션을 맞춰가면서 가끔 즐거운 약속에 다녀오고, 일찍 집에 돌아와 저녁을 해 먹고 핸드폰을 붙잡다 잠에 드는 일의 반복으로 이곳에서의 1년을 채운다면 조금은 허무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언어로 사유하고 기록하는 순간을 이 1년에 끼워 넣어야 무어라도 더 생기고, 뾰족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 같은 것이 들었달까. 


이상을 바라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여행이 아닌 삶이 되는 순간 교토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저 조금 더 오롯이, '나'일 수 있는 기간을 시기 좋게 가져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불도저처럼 작년을 보내고, 여기로 왔다. 남들과 경쟁하며 치열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끊임없이 최선을 물어야 단잠에 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니까. 또 한 번 내 방식대로 애써봐야지 어쩌겠어, 하는 마음. 말랑하고 부서지지 않는 마음으로 오래오래 굴러가는 것. 그 마음을 위해서, 1년이라 치면 4분의 3 정도 남은 지금의 교토를, 놓치지 않고 적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씁니다. 겸사겸사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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