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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아 Jun 20. 2023

어찌 됐든 계속 쓰고 있었습니다

모든 기록을 공개된 곳에 하다 보니 불현듯 너무 많은 부분을 드러낸 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사체로서 담기는 사진과 영상, 유튜브에 하는 맥주 기록, 일상과 작업물이 뒤섞인 인스타그램. 자연스럽고 솔직한 것이 좋아서, 그렇게 할 때 가장 나답다고 느껴서 그리해 왔지만 한 켠에서는 신비할 정도로만 자신을 드러내놓고도 매력적인 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누군가 나를 궁금해한다는 감각이 즐겁고, 작은 순간까지도 선명히 채집하게 되는 평화로운 하루가 소중해서 기록을 쌓다 보면 별 수 없이 수다스러워진다. 생각과 감정의 구석구석을 꺼내어 보인 후에야 너무 다 보여준 걸까 싶어져서 은근한 후회가 밀려온달까. 그러나 기록을 하고 그걸 전시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언제고 즐거운 일이라, 금세 후회를 딛고는 다시금 수다스러워지기를 택하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문득, 궁금해할 만한 구석 하나 남기지 않고 전부 내보이고 나면 - 내 가장 가까운 곳에는 먼지만 쌓이지 않을까. 조금만 다가와도 다 알 수 있는데, 애써 노력해 깊숙하게 들어올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연이어 드는 시기가 있는데, 요 근래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기록과 표현은 내게 있어 살아있음의 척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나의 하루를 평하는 부지런의 척도이기도 하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원하는 주기로 해내지 못하면 나를 미워하게 되는 일 역시 순식간인 종류의 것. 어찌 됐든 계속 쌓아가야 한다 느끼는 것. 그래서 업으로 택하고 싶다가도, 어쩐지 똑똑하게 속도를 붙이는 방식과는 도무지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는 것. 꾸준함은 어떤 일에서든 기반을 쌓는 데 꼭 필요한 재량이지만, 꾸준하기만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걸 4,5년 가까이 콘텐츠를 다뤄오면서 여실히 깨닫고 있다. 내가 하는 방식이 틀린 걸까 싶어지다가도 내가 바라던 모양으로 내 이야기를 읽어주는 이들을 만날 때면 그저 이대로 해나가면 되는 게 아닐까 믿고 싶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평화와 기질을 지켜내면서 조금만 더 부지런히, 조금만 더 똑똑하게, 차근차근 내 이야기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넓혀내는 것. 오랫동안 가져오고 있는 좌우명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내 이름도 닿아가 된 걸 테지. 내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닿았으면 해서, 그래서.


올해의 절반은 어쩐지 계속 헤매면서 지내온 듯하다. 울고 싶은 날이 잦았고, 한없이 잠이 묻은 채로 보내다 망연히 마주한 저녁 어스름도 잦았다. 퇴사 이후 비교적 유연하게 일과 개인시간을 다룰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 덕에 가질 수 있었던 외롭고 다정한 순간들이기도 했다. 가라앉는 마음 속 다정을 읽을 수 있었던 건, 그것들을 어떤 형태로든 기록해 온 덕에 발견한 기특함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주 나를 펼쳐내 들여다보았으니까. 혼자, 가끔은 함께 땀 흘려 운동했으니까. 다양한 이들과 매력적인 대화를 자주 나눴으니까. 자주 여행을 떠나고 있으니까. 교토에 자주 들르고 있다. 퇴사와 이별이 겹친 채로 떠났던 일월 열흘 간의 교토에서 한 달 정도 공부한 일본어로 친구를 여럿 사귀고 돌아온 덕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표를 들여다보고 결국에는 발걸음이 향한다. 지난 사월에도, 그리고 모레 유월에도 다시금 그곳에 간다. 올해만 해도 세 번째인 셈이다. 여행이 언어공부의 좋은 원동력이 되어주어 갈 때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게 되지만, 모국어가 아닌 낯선 언어로는 도무지 드러낼 수 없는 마음과 말들을 나만 가지고 있게 되는 순간이 어쩐지 안락하다. 나의 체력과 마음만 챙기면 되는 하루들도 귀하다.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 때마다 교토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많은 감정을 걷어낸 채 돌아올 수 있다. 일상 속 도피처가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속이 든든히 차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 마음을 다시 겪으러 교토에 간다. 결국에는 다시 돌아올 테니까.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말을 올해 들어 마음 가까이 이해하고 있다.


나만을 위한 기록의 몫을 남겨두는 것이 위로가 된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이래로는 마음이 고될 때마다 메모장을 열어 그날의 할 일목록을 만든다. 가장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기록. 나만 읽을 테니 독자를 배려해서 행간을 다듬을 필요도 없고, 작고 귀여운 성취감만으로 기록의 의미가 완성된다. 밥 잘 챙겨 먹기, 돌돌이 리필 사기, 같이 하루를 잘게 조각내어 목록을 만든다. 가끔 쓰는 일기에는 그날의 거의 모든 정보를 적는다. 누구를 만나 뭘 먹었는데 맛있었다, 노을이 예뻤다, 같이 평소라면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고 말았을 것들을 굳이 글로 적는다. 최대한 담백한 문장으로 다듬어 남기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평소 한 번씩은 곱씹고 걸러 내보이던 감정까지 구구절절 풀어 적어둔다. (가장 친절한 동시에 가장 질척이는 기록의 덩어리를 만들 때의 묘한 쾌감은.. 웬만해선 들키고 싶지 않다.) 그렇게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 감각을 배설하듯 적다 보면 어떤 후련함과 외로움이 뒤섞이고는 하는데, 외로움이 지배적인 날이더라도 이불처럼 둘둘 둘러매게 되는 포근함에 가까운 정도의 것이라 가끔은 부러 찾기도 한다. 모든 다듬음의 과정이 흔적으로 남는 종이 위로 단어와 문장이 흐트러지다가도 결국 어떤 모양새로 열을 세우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흐르는 만큼 요행 않고 살아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하루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기분 같은 것. 애를 쓰지 않아도 시간은 흐를 테지만 도망가지 않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 아마도 내일은 무사히 올 테고, 그게 곧 오늘이 될 테니, 그저 좋아하는 오늘을 여러 번 만나겠다는 다짐이 건강한 기분을 빚어준다. 


어찌 흘러왔던 나는 나의 기록을 사랑한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고요한 시간을 사랑하고, 얼굴은 몰라도 자주 영상을 보아주는 반가운 이들에게 자연히 지어지는 웃음 가득한 내 표정을 사랑한다. 조심스럽고 다정하고자 애쓰느라 수다스러워지는 모양새를 결국에는 사랑스레 여기게 된다. 줏대 있게 좋아하는 걸 지속해내는 사람은 어찌 되었든 반짝이니까.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그 사람 고유의 향내를 갖게 되니까. 나를 잃지 않고 가져가며 만나지는 광경과 사람을 금세 사랑하게 된다는 건,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걸 테니까. 결국에는 나를 한 번 더 믿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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