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기는 편지 같다

요조 -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by 김닿아


있지, 나는 너랑 여기에 누워있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 그냥 이대로만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 있으면 집안 구석구석 고쳐야 할 부분이 보이고, 해도해도 집안일은 늘 있단 말이야. 머리카락은 매일 떨어지고, 쓰레기봉지는 찾으면 꼭 저번에 쓴 게 마지막 장이야. 얼마 전에는 배수구에서 물이 자꾸 올라오는데, 내가 사는 곳이 맨 아래층이라서 위에서 쓰는 물이 내려오다 말고 막히면 꼭 여기로 새는 거야. 내가 물을 험하게 써서 그런 것도 아닌데, 집주인한테 꼭 연락은 내가 해야하는 게 좀 억울하잖아. 그래서 다음 번에는 꼭 채광이 가득 드는 집에서 살아야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거지. 근데 너랑 있으면, 그냥 다 필요없고 같이 누워있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늘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어. 내가 일이 없는 날이면 너도 그러길 바라는 건, 빛이 푸르스름 들어오는 오전에 둘이 같이 나란히 누워서 뭘 먹을 지, 어딜 걸어볼 지 이야기하는 이 시간이 나한테는 참 위안이라서. 그래서 그래.


얼마 전에 오래 살던 동네를 지나는데, 거기에는 어릴 때 다녔던 수영장이 있거든. 그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걸으면 늘 수영장 냄새가 뭉근하고 따뜻하게 올라와. 물은 차가운데, 올라오는 냄새는 매번 포근하다? 그게 꼭 여름 같아. 그 다리를 지날 때마다, 그곳의 기운이 나를 감쌀 때마다 꼭 마음이 좋아졌었어. 근데 지금도 그렇더라. 근처 주차장에서 매주 열리던 장에서 팔던 닭꼬치도 생각나고, 문방구에 팔던 주먹만 한 사탕도 생각나고, 엄마가 친구를 만날 때마다 가던 호프집의 몇 번이고 리필해먹던 마카로니 과자도 생각이 났어. 그때는 생맥주를 내가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는데. 하하. 뭐 여튼 그런 생각을 줄지어 쫓아가다 보면 꼭 평화로워져. 문득 너랑도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벚꽃이 완전히 지고 나면, 옛날 내가 살던 동네에 함께 가자.


우리는 꿈을 참 많이도 꿔서, 자고 일어나면 서로의 꾸다만 꿈을 이야기하기 바쁘지. 나는 그게 참 재미있어. 눈을 뜨자마자 사라지기 시작하는 꿈들을 붙잡고 조금 더 시간을 끄는 순간들. 어, 그거 좋은 꿈이네. 하며 냅다 얼토당토않은 해몽을 갖다붙이는 아침들. 덕분에 기억하는 꿈이 꽤 많아. 꿈은 늘 꾸는 건데, 그걸 기억하는 건 그만큼 깊게 잠들지 못해서래. 그래서 오래 자고도 늘 아쉬운가 봐. 꿈에는 끝이 없잖아. 늘 꾸다가 말고서는 깨버려. 일관성없는 플롯에 제멋대로인 끝맺음. 그런 이야기를 네 품에서 꿀 때면, 그리고 너와 함께 나눌 때면 시시한 것도 조금은 더 재미있어져.


우리가 수시로 속삭이는 사랑이 다 그렇듯, 볼품없고 영원치도 않은 일들이 우리한텐 참 중요하잖아. 나는 그게 싫지 않아. 예쁜 말로 어르고 달래, 온갖 의미를 덕지덕지 붙여서 몸이 몇 배나 불어난 기억들은 우리를 자주 먹여 살리더라. 그런 기억들이 몸을 움직이고, 하루를 시작하게 만들 때가 있으니까. 왜, 몸을 움직여야 먹고 살잖아. 이렇게 우리는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을 늘 갖자. 서로의 시시한 꿈을 부풀려주고, 커피는 어디가 맛있는 지, 또 언제 다시 만날 지, 지루한 쳇바퀴를 우리 마음대로 오래오래 굴리자. 선같은 우리가 만나면 분명 예쁜 길이 될 거야.


https://youtu.be/2C31v6icLiE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닿지 않는 천장에 손을 뻗어보았지

별을 진짜 별을 손으로 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너의 앞에 한 쪽만 무릎 꿇고

저 멀고 먼 하늘의 끝 빛나는 작은 별

너에게 줄게 다녀올게 말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볼 수 없는 것을 보려

눈을 감아보았지 어딘가 정말로 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뭔가 잔뜩 들어있는

배낭과 시들지 않는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우리 영원까지 함께 가자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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