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다닐 때 참 귀여웠다

유희열 - 여름날

by 김닿아


이제는 반팔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곧잘 눈에 보인다. 오랜만의 휴일. 휴일은 어찌 됐건 좋다. 남들이 다 쉴 때 쉬든, 남들이 일할 때 쉬든. 각자의 매력이 있다. 오늘은 후자. 평일 낮에 혼자 여유로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빛 잘 드는 카페로 나와 앉아있는 날을 좋아한다. 오롯한 내 시간을 갖는 기분. 별다른 것을 하지 않지만, 뭐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구경하고, 책을 좀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사진을 찍고, 챙겨 온 노트에 옮겨 적는 일. 그러다 낙서를 좀 하고, 창밖을 좀 보다가 다시 반복. 좀 녹아도 괜찮은, 오래 두고 마시기 좋은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앉았다. 맞은편 의자엔 걸치고 온 자켓과 가방. 오늘의 짐은 이것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게다가 반팔로 카페에 있을 수 있는 날씨라니. 종일 그저 가벼운 겉옷만을 걸쳤다 말았다 할 수 있는 날씨가 온 것이다. 아직은 봄이지만, 마음은 벌써 여름의 한 구석을 그려보고 신나 하는 어느 계절의 중간. 여름과 겨울을 기다리는 일은 지하철 역사 안 델리만주 코너를 지나는 일 같다. 어느 한 장면이 시원하고 따뜻하게 펼쳐지고, 그때 딱 먹기 좋은 제철음식이며 간식들. 여름날의 바다와 겨울바다. 정작 그 계절이 오면 날씨에 몸이 묶여서 너무 추워.. 너무 더워.. 거리다 계절을 다 보내버리면서. 봄 즈음 상상하는 여름은 또 왜 이렇게 활기찬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봄이 얼른 갔으면 하는 건 또 아니고. 제대로 구경도 못했는데 벌써 초록잎이 올라온 벚나무들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맘때만 피는 아름다움들을 열심히 만끽하며 살고 싶은 마음.


오늘은 삼청동에 와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여기를 교복 입고 지나다녔는데. 그때는 가보지 않은 골목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가 괜찮은 카페를 찾았다. 커피가 꽤 맛있고, 창밖으로 골목이 한눈에 다 보이는 곳. 평일이라 가게도 거리도 다 한적해서 이곳을 잠시 빌려둔 기분이 든다. 이맘때쯤 대여섯 시면 늘 석식시간에 급식실로 가는 친구들과 헤어져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야자를 시작하기 전에 갖는 유일한 자유시간. 그래 봤자 간식거리를 들고 벤치에 앉아있다가 돌아오는 것의 반복이었지만. 그때의 공기와 냄새 , 교복을 입은 내 모습 같은 게 유독 선명하다. 돌아보면 내내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다 혼자가 되는 시간에 찾아오는 평화로움을 즐겼던 것 같다. 그때는 어딘가의 일원으로, 소속으로 움직이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 그래도 이 동네만 오면 늘 마음이 좋은 것을 보면, 꽤 좋아했나 보다. 학교를, 그때의 나를. 익숙한 동네에서 새로운 구석을 자꾸만 발견하는 일. 그러면서 더 동네가 좋아지는 일. 휴일과 꽤나 어울리는 행위라 느낀다.


어떤 한 공간에서 꾸준하고 켜켜이 쌓아온 기억은 오래고 남아서 몰래몰래 나를 북돋는다. 같은 길을 걷기만 해도 여기는 그대로네. 뭐가 또 들어왔네. 여기 전에 있던 곳 진짜 좋아했는데. 이사 가셨나 보다. 망하진 않았겠지? 장사 잘 됐었잖아. 그리고 덩달아 떠오르는 얼굴과 목소리들. 지금 만나도 그때와 다를 것 없이, 아니 오히려 그때로 돌아가 시시콜콜 떠들게 되는 친구들, 웃음소리가 특이하던 같은 반의 어느 누구, 다 같이 한 줄로 서서 급식을 기다릴 때의 웅성거림. 오늘 돈까스 나왔나 보다. 아싸 두 개 먹어야지. 같은 말들을 뒤덮는 급식실의 분주한 소리와 따뜻한 훈김 같은 것들. 조는 사람을 귀신처럼 잡아내던 야자감독 선생님. 소리만 큰 매로 누군가 등짝을 맞으면 덩달아 놀라 자세를 고쳐잡던 순간. 담벼락 너머로 배달음식을 시켜먹던 일까지. 그때만 느낄 수 있던 감각들. 벌써 교복을 단정히 갖춰 입고 지나가는 모습이 예뻐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가 좋았지, 라기보다는 그때 참 귀여운 일이 많았네. 정도의 기분. 예쁜 철이 한 번 지난 꽃나무를 기분 좋게 추억하며 무성해진 푸른 잎 그늘 아래에서 노곤하게 낮잠을 자는 기분. 옆에는 캔맥주도 몇 개 찌그러져 있으면 딱 좋겠네. 하루를 내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이 꽤 마음에 드는 하루다.


https://youtu.be/szAMfwdxXjw


바람결에 실려 들려오던

무심히 중얼대던 너의 음성

지구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대

우리 얘기도 그래서 끝이 있나 봐


혹시 어쩌면 아마도 설마

매일매일 난 이런 생각에 빠져

내일이 오면 괜찮아지겠지 잠에서 깨면

잊지 말아 줘 어제의 서툰 우리를


너의 꿈은 아직도 어른이 되는 걸까

문득 얼만큼 걸어왔는지 돌아보니 그곳엔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파란 미소의 너의 얼굴 손 흔들며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게 달려오고 있어)

그토록 내가 좋아했던

상냥한 너의 목소리 내 귓가에서

안녕 잘 지냈니 인사하며

여전히 나를 지켜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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