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기가 있다

아이유 - 아이와 나의 바다

by 김닿아


내가 돌보던 정원이 어느 밤사이 태풍을 맞아 다 난리가 난대도, 그건 정원의 탓도 내 탓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도 자주 늘 그 자리에 있던 정원이 왜 그날 하필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나무라거나, 열심히 가꿔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며 정원을 돌보는 것 자체를 포기한다. 그건 그저 하룻밤의 사고였고, 재해였던 건데.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해? 지나간 애인이 면접 준비를 하며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질문이었다. 세상은 운으로 돌아간다는 말. 운이 칠이고 재주는 삼이다. 그가 준비하던 답은 물론이며 목소리도 희미해질 즈음이 되었지만, 새삼 질문만이 떠올랐다. 그러게, 왜 늘 지나고나서야 꿈에들 나오는지. 운이 칠인 세상이더라도, 믿을 구석이 운에는 없다. 운은 제멋대로다. 언제고 내가 기다려야하는 존재. 그것도 적당히만. 대부분은 잊고 사는 것이 마음 편한 존재.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두는 일에는 매번 위험이 따른다.


그냥 이런 시기가 있다. 별 것 아니던 말들이 생각으로 묶이고, 여러 개의 물음표가 되어 밤을 비집고 다니는 시기. 지나간 일이나 사람이 떠오르는 날이면 어쨌거나 자존감은 흐릿해진다. 어쨌든 지금보다 조금씩은 더 미숙했던 선택과 말들. 서툴렀던 내 모습을 귀여워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딱히 돌아가고 싶은 과거도 없는 걸까.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것이 내 최선이었으니까. 이럴때면 최선이라는 말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묻고 따지는 일보다, 포장하고 다독이는 일이 더 건강한 것도 같다. 합리화를 잘하는 것은 아무래도 능력일지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 늘 가지고 다녀야 한다. 선택지가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마무리를 짓고 털어내야 하니까. 어쩌면 세상은 운보다 선택이고 때이며, 결심인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오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들이 전부에 가깝던 어린아이로 보낸 시절. 그때의 시간과 감정은 여러 갈래로 퍼지고 쪼개져 삶 전체로 스미고 또 숨어든다. 그러다 늘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던 음식을 나 역시 철이 되면 꼭 찾고 있다거나, 내가 이해하지 못하던 그들의 모습이 어느새 내것이 되어있다거나. 사람은 혼자일 수 없구나. 늘 누구에게든 이만큼 씩이나 영향을 받고 사는구나. 그게 설령 그의 부재일지라도.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늘 좀 더 잘 살아야지, 하게 된다. 나도 그만큼씩이나 무언가 주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는 거니까. 그렇다면 함부로의 기준은 어디에 둬야하는 걸까. 내가 나 스스로 한심하지 않으면 충분한 걸까. 우선 내일은 좀더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여러 다짐이 따라붙는다. 내가 나를 뒤집어 엎고, 또 다독인다.


그냥 이런 시기가 있는 것이다. 내가 나를 끌어안고 자야하는 밤. 그리고 앞으로도 몇 번이고 더 있을 것이다. 그날의 상념 만큼 새로운 다짐이 솟는다. 어려운 일이지만, 어려운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뭐랄까, 레벨업하는 맛이 있으니까. 그저 바라는 건, 그때마다 내가 나와 조금씩 더 친해졌으면 하는 마음.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내가 나서서 먼저 나를 챙기고 돌볼 수 있기를. 반복됨에 지치지 않고 서로를 조금 더 꼭 끌어안아줄 수 있기를. 그 밤들이 모여서 어느날 한 움큼 선물처럼 오기를.


https://youtu.be/CM8o9AYVDz4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마음이 가난한 밤이야


거울 속에 마주친 얼굴이 어색해서

습관처럼 조용히 눈을 감아

밤이 되면 서둘러 내일로 가고싶어

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쌓이는 하루만큼 더 멀어져

우리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어린 날 내 맘엔 영원히

가물지 않는 바다가 있었지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 희미한 그곳엔


설렘으로 차오르던 나의 숨소리와

머리위로 선선히 부는 바람

파도가 되어 어디로든 달려가고싶어

작은 두려움 아래 천천히 두 눈을 뜨면


세상은 그렇게 모든 순간

내게로 와 눈부신 선물이 되고

숱하게 의심하던 나는 그제야

나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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