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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레아 Jan 13. 2019

낙엽 둘,
나에게 귀를 기울이다 (2)

까칠한 길과 십자가


걸음 나흘째, 햇빛은 유난히 따끔거렸고 바닥은 마른 흙으로 까끌거렸다. 혀가 바짝 말랐고 숨은 낮게 헥헥대고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온 못난 생각으로 울상이 되어 있었다. 그 덕에 지친 몸은 개의치 않은 채 기계적으로 다리를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무거운 기억에 짓눌려 고개도 들지 못 한 채, 왜 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물범벅인 얼굴로 묻고 있었던 것 같다. 


뿌연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길 위에 떨어진 십자가였다. 새끼손가락만 한 작은 나무 십자가. 쪼그리고 앉아 그것을 주워 들었다. 누군가가 떨어뜨리고 갔을 법한 십자가가 나에게는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던 대답처럼 느껴졌다.


“결국 모든 일이 어떻게 벌어지든, 십자가가 알고 네가 아는 그 길로 걸어갈 것이 아닌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원망을 할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지금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내려놓는 것, 어찌 되었든 내가 작정한 길을 걸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방향이 아닌가. 

사실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을 인정하기 위해, 흙 속에 파묻혀 있는 마음을 찾으려 땀을 흘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숙소에 도착해 샤워를 마치고 동네를 걸었다. 골목 깊숙한 곳에서 풀 하나를 보았다. 해가 들지 않는 어두운 곳에 생겨난 잡초 같은 풀을. 최대한 목을 길게 빼고, 그것이 태양이든, 태양의 옷자락이든, 안간힘을 써 ‘오직’ 밝은 빛을 향해 있는 놀라운 작은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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