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도 해내지 못했던 전쟁의 목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다. 전쟁 전에 숱한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거라는 예상을 앞다퉈 내놓았다. 그들의 전쟁의 상대가 다른 아닌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군사력으로 미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자 미국 다음으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이에 비해 우크라이나의 병력과 화력의 규모는 보잘것없는 수준이라 러시아 군의 진격 속도 그대로 우크라이나 군대는 밀리고 말 것이라는게 어찌 보면 당연한 예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문가들의 생각과는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선전일까? 아니면 러시아의 오만과 무능일까?
러시아의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 앞에서도 우크라이나 군대와 시민들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러시아 군대를 막아서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을 러시아에게 강제하면서 난관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전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점령이다.
국가간 전면전이 아닌 단순한 교전이나 소부대 단위로의 전투에서는 화력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연평도 포격도발에서 이를 분명히 보았다. 북한이 선제 도발을 했지만 해병대는 K9 자주포를 이용한 즉시 대응과 응징으로 북한의 도발 원점을 초토화시켰다. 우리 군의 차원이 다른 화력을 경험한 북한은 함부로 포격도발을 다시 자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교전이 아닌 국가간 전면전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상대방 군대를 제압하기 위한 압도적인 화력은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것 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아무리 대포와 미사일을 퍼부어도 결국 상대방 땅에 군인이 들어가서 깃발을 꽂고 주민의 협력을 구해야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역사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 베트남 전쟁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맨발로 정글을 다니며 땅굴을 파서 대항한 월맹과의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하고 철군했다. 우리에게 월남전으로 알려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최첨단 군사장비로 무장한 반면 북베트남(월맹)의 무장은 우스운 수준에 불과했다. 게대가 이 전쟁에는 미국의 동맹들도 군대와 물자를 지원했는데 우리도 정예부대를 꾸려서 파병을 했을 정도다. 전력 차이를 비교하면 어린아이 사탕 뺏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월맹은 정규전이 아닌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면서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었다. 정규군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없어 모든 베트남인을 적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미국이 현지에서 조력을 구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졌다. 수많은 미국인이 베트남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엄청난 전쟁 수행 비용이 국가 재정에 압력으로 다가오자 미국에서는 반전 여론이 거세져 철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 이라크 전쟁
미군이 자존심을 구긴 전쟁은 베트남 전쟁만이 아니다. 21세기에도 이라크에 발을 들였다가 점령지 관리 문제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개전 초기는 모두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미국의 화력 앞에 이라크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불과 2주 만에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었고 미국은 전쟁 시작 한 달여 만에 전쟁 승리와 종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라크 전쟁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미국은 10년이 넘게 이라크 점령지 관리에 막대한 돈과 병력을 쏟아부었지만 허사였다. 계속되는 게릴라와 폭탄 테러로 피해가 누적되고 이라크 치안과 내정 상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는 반전 여론이 들끓었고 미국은 발을 뺄 명분만 찾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전쟁 발발 15년이 지나 겨우 이라크에서 철군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점령지에서 고생을 하고 군대를 철군한 것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소련)도 20세기 아프가니스탄 공산화를 목적으로 발을 들였다가 이슬람 세력과 근 10년에 걸친 전쟁을 했다. 당초 몇 달 정도로 예상했던 전쟁이 10년이나 이어지자 러시아(소련) 정부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아프가니스탄은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미사일이나 포격으로 타격을 주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정치적 신념이 아닌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대항했기 때문에 모든 아프가니스탄인이 언제든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상황으로 러시아(소련)군에 절대적으로 우호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오늘날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거의 흡사한 양상이 10년 내내 이어졌다. 오랜 기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속한 러시아(소련) 손에는 철군 카드밖에 남지 않았다.
러시아의 진짜 목적.
20만 명에도 못 미치는 병력으로 우크라이나 군대와 전투는 승리할 순 있어도 우크라이나 국토 전체를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러시아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러시아 역사를 1000년이라 가정할 때 전쟁이 없었던 해는 고작 30년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호전적인 데다가 많은 전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단기간에 수도를 점령해 정부를 무너뜨리고 러시아 입맛에 맞는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것이 첫째고 러시아계가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을 점령하고 복속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로 보인다.
이런 계획은 우크라이나의 지연 전술과 전체 시민이 게릴라가 되어 러시아 군에 대항하는 양상으로 인해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전쟁이 자칫 길어 지고 소규모 게릴라 부대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군대를 괴롭히는 일이 지속되면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처럼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현대 전쟁에서는 국가의 모든 기능을 유지하면서 30일 이상 전면전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나 러시아처럼 고비용의 구조를 갖는 군대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시간은 우크라이나의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