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장교가 알려주는 군대 이야기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불과 3-40년 전이다. 강산이 세네 번 바뀔 정도의 긴 시간일 수 있지만 달리 보면 고작 한 세대가 지나갈 정도의 찰나의 순간일 수 있다. 못먹고 못입어 허덕이던 시절 펼쳤던 산아제한 구호는 직설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그만 낳으라는 간절함도 엿보인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국민성이 발휘된 탓일까? 2000년에 산아제한 운동이 펼쳐진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의 의도대로 출산율은 드라마틱하게 내려앉았다.
출산율 감소 추세는 어느새 임계점을 지나 이제는 하락이라는 표현조차도 과분할 정도로 절벽과 같은 추락을 보인다. 대한민국 합계 출산율은 0.8명대로 여성 1명이 평생 1명의 아이를 낳지 않는다. OECD는 물론 전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심지어 전쟁을 하는 국가보다 낮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이제 자연 감소가 시작되었다. 이 모든 게 단 30년 만에 이뤄진 결과다. 인구감소의 장단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군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군대 규모는 60만명이다. 60만명이라는 숫자는 웬만한 도시 인구 전체와 맞먹을 정도로 크다. 군대 자체를 하나의 도시로 가정하고 단순 인구 비교를 하면 한국에서 한 20번째 정도 가는 도시가 된다. 뭐 이리 많은 군인이 필요한가 생각이 들면 고개를 북쪽으로 향하면 그 답이 나온다. 북한의 군대는 100만명이다. 아무리 첨단무기가 있다고 해도 절대 병력수가 주는 군사적 이점이 있기 때문에 쉽게 병력을 줄일 수는 없다. 하지만 줄어드는 출산율로 인해 60만명 유지는 좀처럼 달성하기 쉬운 목표가 아니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군을 현대화해서 총 병력 규모를 40만명 정도로 감축하는 것을 계획했다.
부대를 통폐합하고 예비군을 강화하고 군 간부를 늘리는 등 10년 넘게 감축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출산율 감소 속도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당장 상비군을 꾸리는데도 벅차다. 과거 출산율이 1.3 정도였을 때도 군대 징집 인원을 다 채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현역 판정비율 높여서 그 수를 겨우 맞춰왔다. 50~60년대 베이비붐 세대 현역 판정비율은 50% 남짓으로, 둘에 한 명은 현역이 아닌 방위병으로 제외되었다. 6개월 방위를 뜻하는 육방이 여기서 유래했다. 지금은? 현역 비율이 90%를 넘은 지 오래다. 군대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 현역 판정 비율이 높아졌다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이건 전적으로 입영장병 수의 문제다. 2025년이 되면 현역 판정비율은 98%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장애가 없으면 모두 군대에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출산율 0.8 시대의 아이들이 군대 갈 시기가 되면 이 고육지책 마저도 불가능해 진다. 연간 출생아가 20~30만인 상황에서 60만명은 커녕 40만명도 언감생심이다.
방법은 단 두 가지
북한이라는 집단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쩔 수 없이 강력한 상비군이 필요하다. 거기다 핵무기까지 가진 그들에게 전쟁억제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몇만 단위의 병력수로는 어림도 없다. 북한군이 100만명인 상황에서 우리가 10만명만을 운영한다면 북한 군부에게 '한 번 해볼 만 한데?'라는 오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무기가 많아도 최소한 40만명의 병력이 있어야 감히 쉽게 덤벼볼 생각을 못하게 된다. 출산율이 줄어 건장한 성인 남자 절대 숫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책은 단 두 가지밖에 없다.
1. 군 복무 기간 늘리기
어찌 보면 가장 손쉬운 방법일 수 있다. 2년도 되지 않는 지금의 현역 복무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여기에 반발할 이들은 현역 입대를 앞둔 일부 남성에 그치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부담이 적을 수도 있다. 복무기간을 2배 늘리면 입대 인구가 2배 느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군 복무 시기가 줄어드는 추세에서 갑자기 두 배로 늘리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20대 남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왜 남자들만 군 복무를 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남녀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지금도 현역 복무에 대한 보상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복무기간을 늘리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또한 군대에 젊은이들이 오래 머물게 되면서 사회경제적 활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감수해야 한다.
2. 여성의 의무복무
국방의 의무를 명시한 헌법 39조에서 의무 이행 대상자는 '국민'이지 '남성'이 아니다. 성별 구분 없이 전 국민은 헌법상 국방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 여성 의무 징집은 좀처럼 해서는 안 되는 타부(Taboo)처럼 여겨지지만 실제 이스라엘 같이 주변국과 분쟁이 잦은 나라에서는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여성 의무복무를 명하는 순간 현역 입영대상자가 두배 늘어나는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당장 내일 여성에게 의무복무를 시킨다고 하면 사회는 마비된다. 가령 '20대 여성은 모두 군대를 가야 한다'라고 하면 29세 여성은 1년만 복무하는 것인지, 20대 여성중 직장이 있는 이들이나 아이가 있는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 결혼한 신혼부부도 징집 대상인지 등 아무 민감한 사항에 대해 답변이 요구되고 어떤 결론이 나오는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자연히 정부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은 여성의 간부 참여를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이는 자발적인 지원이니 징집에 따른 사회적 갈등 비용도 없고, 부족한 입영 자원을 보충하는 효과도 낸다. 하지만 그 숫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병역 빅뱅이 다가온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마주하기 불편한 진실이다. 누군가는 국방의 의무를 져야 다른 이들이 두 발을 뻗고 편히 잘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회는 젊은 남성에게만 그 짐을 지웠다. 보상도 없었다. 그들은 고작 몇십만원도 하지 않는 월급에 젊음을 바쳐왔지만 큰 불평 하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젊은 남자들에게 희생을 바탕으로 한 공짜 국방 시대는 지속가능성을 잃었다. 곧 대개혁을 하지 않으면 국방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모병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진실을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다. 곧 우리 사회는 저출생 시대 앞으로의 국방을 꾸려나갈 방법에 대해 답을 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