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at surgery center
surgery center는 병원에서 수술실만 따로 떨어져 나와 있는 개념으로 한국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의료서비스이다.
입원시설이 따로 없으니 수술 후 곧바로 집으로 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간단 수술만 담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단 훨씬 크고 많은 수술들을 감당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관념의 산물이며 의료비 폭탄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의료비 절감과 통제 가능한 수술 후 통증과 합병증에 효율이 대처하는 그들만의 선택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지금의 이 surgery center에서 일한 지는 벌써 5년이 넘었다.
작년 여름"5"라는 숫자가 쓰인 금배지를 받고 피식 웃은 기억이 난다.
그것은...
벌써 5년? 얼마나 더?
나는 거의 매일 5시에 일어난다. 요즘 같은 겨울엔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게 쉽지만은 않다.
라스베이거스에 무슨 겨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0년에 한 번씩은 눈도 오고 겨울바람도 제법 쌀쌀하다.
대충 씻고 커피 하나를 들고 차로 30분 거리의 출근길에 오른다.
30분이 길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 라스베이거스에서 30분은 그래도...
나쁘진 않지만 조금은 긴 출근거리이다. 한 시간이면 저 북쪽 끝에서 남쪽까지 갈 수 있으니 비교적 다들 가까운 거리에 일자리를 마련한다.
말하지만, 나는 결단코 새벽형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에 불만은 없다. 차 드문 한적한 거리를 홀로 커피를 홀짝이며 달릴 때 주는 평온함이 좋다.
6시쯤 병원에 도착해서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병원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먼저 그 날의 스케줄을 확인한다. surgery center의 특성상 매주 같은 요일에 같은 닥터들이 오는지라 별다른 변화는 없지만 무슨 수술을 하는지에 따라 준비과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surgery center를 잠깐 소개하자면,
pre-op(수술 전 대기), 수술방 4개, post-op(회복실)로 나뉜다. 여기에 business office와 위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실이 따로 있으며. 통증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통증실까지 갖춰져 있다. 아마도 이 정도의 규모가 보통의 suregry center라고 할 수 있지만, 수 십 개의 작은 규모들의 surgery center가 존재한다.
월요일.
나는 오늘 내시경실에서 일을 한다. 거의 매일 surgery center에 스케줄이 있는 이 GI(Gastrointestine) 닥터는 10년 넘게 우리 surgery center를 이용하고 있다.
여기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면 내시경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surgical technician(의사 옆에서 바로 기구와 수술 어시스트를 하는 사람)과 함께 30분 전에 출근하여 준비를 시작한다.
나는 마취과 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약들과 마취에 필요한 기계들을 확인하고 환자를 직접 인터뷰해서 준비를 시작한다. surgical tech은 내시경에 필요한 내시경과 여러 장비들을 점검한다.
다른 수술에 비해 아주 간단한 준비만이 필요하기 때문에 30분 전에 출근하지만 다른 복잡한 수술을 담당하는 사람은 1시간 전에 출근해서 시작한다.
내가 이 닥터를 좋아하는 이유는 절대 점심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5개나 6개의 case정도로 보통은 나의 하루도 같이 끝이 난다. 그렇다고 끝난대로 바로 집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 규정상 break를 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다른 간호사에게 break(4시간마다 15분의 break가 필요하다)와 lunch break(6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에게 30분의 점심시간이 주어진다)를 주기 위해 남기도 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수술을 도와주기도 한다.
surgery center는 내가 시간을 조금은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듣기로는 옛날에는 surgery center가 retire 하기 전 할머니들이 선호하는 곳이었다지만, 지금은 주말 보장에 하루 8시간 정도의 비교적 규칙적인 출퇴근이 보장되는지라 젊은 부모들에게 인기가 많아지는 듯하다. 이것은 나에게도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했으며 15년간 아들의 등하교를 감당하게 해 준 고마운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