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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Park Feb 26. 2020

그 정도 일에 힘들고, 그 정도 말에 상처 받습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2』 (백세희)

하루 종일 곱씹으며 생각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 요즘 너무 힘들어.'라고 이야기해 보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러했듯이 '왜? 뭐 때문에 힘들어?'라는 대답과 함께 '괜찮아질 거야, 힘내'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나에게 그 두 문장 중 어느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우울하고 힘든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힘을 낼 자신도 힘을 내고 싶지도 않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또 한 번 물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데?'


힘들고 우울하다고 해서 맨날 우울하다거나 하루 24시간 힘든 건 아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아 우울하다는 말이 입에서 무심결에 나오고, 별거 아닌 일에 눈물이 났다. 


이렇게 심하게 느껴본 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었던 감정도 아녔기에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작년 즈음에 많이 들어봐서 익숙해진 책이 한 권 떠올랐다. 많은 비슷한 책 가운데서 왜 그 책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사서 단숨에 읽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별일 없이 사는데 왜 마음은 허전할까'라는 제목에서부터 한참을 머물렀다. 

참을 수 없이 울적한 순간에도 친구들의 농담에 웃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허전함을 느끼고, 그러다가도 배가 고파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지독히 우울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애매한 기분에 시달렸다. 이러한 감정들이 한 번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더 괴로웠다. 

이 문장을 읽으며 마치 '너도 힘들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힘들다, 우울하다라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스스로 나정도 슬픔은 우울한 감정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백세희 작가는 이어 자신을 책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이 책은 기분부전 장애 (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는 주요 우울장애와는 달리,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앓는 나의 치료 기록을 담은 책이다. 사적이고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어두운 감정만 풀어내기보단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책은 작가가 소개한 것과 같았다. 자신이 상담받은 내용을 녹음하여 그것을 그대로 책으로 옮겼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와 이야기를 너무 어둡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꾸며내지도 않게 솔직하게 담았다.


1편과 2편으로 구성된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음에 깊이 남은 생각이 있다.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하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크더라도 방 전체를 고르게 채운다. 인간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그 고통의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 영혼과 의식을 가득 채운다. 고통이란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왜 힘들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답답함은 '내가 답을 하지 못하는 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어서 모르는 건 아닐까.', '내가 별것도 아닌 일에 나를 망가트리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런 자책이 나의 힘듬의 근본적인 원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아직도 나의 힘듬의 시작이 어디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가 보면 벌거 아니네 할 수 있는 직장에서의 문제, 사람 사이에서의 문제 등 일 수 있다. 문제는 그대로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가지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그 정도 일에도 힘든 사람이 있고, 그 정도 말에도 상처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힘듬이 우울감이 나를 잡아 삼키는 정도가 아니라면 같이 가기로 했다. 그러다 또 우울한 감정이 들면 그게 편의점에서 먹고 싶은 과자를 잔뜩 사고, 맥주를 배 터지게 마시는 것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면 그냥 그렇게 두기로 했다.


그러한 문제가 나를 해지지 않는 선이라면 그냥 조금은 내려놓기로 했다.


그게 나고, 그런 나는 오늘도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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