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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서 꽃형님 Feb 18. 2020

FIT 그리고 패션 공부

by 꽃형님

FIT에 지원하려면 TOFEL CBT 250점 이상의 성적표를 제시해야 했다. 한국 유학생 카페에는 FIT 전공 중에서 FMM (패션 머천다이징 매니지먼트) 지원자들은 마케팅이라 똑똑해야해서 (응???) 커트라인이 275 이상이라는 괴담이 돌았다. 답답한 마음에 FIT 어드미션을 여러 차례 직접 찾아가 물었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답은 "아, 그거? 250점만 넘으면 돼" - 의심스러울만큼 심플한 답변이었다. 영어와는 담 쌓고 지냈던터라, 토플 성적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4차례 이상 시험을 보고서 겨우 얻은 257이라는 내 점수에 영 자신이 없었다. 



 

FIT


해외 대학에 지원할 때 요구하는 서류는 무조건 "글자 그대로" 챙기면 된다. FIT의 경우 SUNY 계열이었기에 State의 지원금을 받아 운영되고, 따라서 State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을 주고자 한다. 세금 한 푼 낸 적 없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몇 배 더 비싼 등록금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사립 대학보다는 등록금이 1/3 수준으로 저렴하기에 지원자가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유학생들을 선별적으로 받을 필요가 있어 기준 점수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TOEFL 성적은 Pass/Fail의 영역이었고, 고등학교 또는 대학 성적과 특히 '자기소개서'가 학생 선발의 핵심이란 것은 입학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매력적인 자기소개서 영작을 위해서는 전체 형식을 구상하고, 내용을 3~4장 쯤 적어본 후, 문장과 표현을 세련되게 다듬어 핵심적인 1장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했다. 다행히 ESL에 학생들의 영작을 도와주는 서비스가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원서 데드라인을 맞추는 것은 필수였고, 데드라인에 앞서 충분한 지원자가 확보되면 다음 학기로 리뷰가 미뤄질수도 있었다. 심지어는 어드미션 오피스에서 지원서를 분실하여 리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뒤이어 지원했던 대학 후배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고 나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디까지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의 범위에 있다며... 책임지는 이는 없었고, 꼼꼼하게 두번 세번 챙기는 것은 철저히 본인의 몫이었다.


FIT 클래스룸


FIT와 파슨스로부터 모두 합격 소식을 받았지만, 두 학교의 커리큘럼과 강사진이 크게 다르지 않아 학비가 월등하게 저렴했던 FIT를 선택했다. 당시, 1학기 등록금은 대략적으로 FIT가 7천불, 파슨스가 2만불이었다. 미국 문화에서 사립 학교를 다니는 것, 즉 교육 자본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을 특별하게 간주한다는 것을 듣긴 했으나, 과연 내가 이후의 삶에서 미국 주류 문화에 얼마나 녹아들지에 의문이 있었다. 한국 대학에서의 교양 학점을 모두 인정받고서 1년 동안 FMM 전공 수업만 들을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 전문학사 AAS 를 취득할 수 있었다. 가볍게 복습하며 영어 공부 좀 하겠거니 싶었다. 오산이었다. 


예습을 한다고?

일도 한다고?

와... 

세상 비현실적인 하드워커들!


1학기에는 필수 과목인 '소재 기초'를 포함하여 '광고 및 홍보, 패션 비즈니스 실무, 패션 소비자 행동, 머천다이징 플래닝, 패션 머천다이징 테크닉'의 6가지 과목을 들었는데, 학습량이... 상상을 초월했다. 첫 시간에 교수님들이 다음주 챕터를 미리 읽어오라 얘기했지만 한국에서 하던대로 진심!! 듣고... 흘렸다. 


둘째주, 나를 제외한 클래스의 모든 학생들은 교과서 내용을 얼추 숙지하고 있었고, 교수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며 수업에 참여했다. 질문이 이렇게나 많이 나오는 수업이라니. 와... 미국 학생들인데... 패션 전공인데... 이 두꺼운 교과서를 예습해온다는 것 자체가 그냥 비현실적이었다. 이후, 예습에 미친듯이 매달렸다. 6과목의 양이 너무 많아 꼼꼼한 독해는 불가능했다. 카페든 로비든 계단이든 복도든 어디든간에 철퍼덕 앉아 수업 전까지 책을 흩으며 형광펜 표시를 해두면 수업 시간에 조금이나마 아는 척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 학생들도 그 정도 준비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돈을 벌고 경력을 쌓기 위해 패션업계에서 파트타임 혹은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바나나 하나, 머핀 한 조각으로 요기하며 책을 가볍게 읽고 수업에 참여했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일터로 이동했다. 그렇게 대학 졸업장과 함께 적어도 2-3년 이상의 경력을 확보하고서 본격적으로 업계에 뛰어드는 준비된 청년들이었다. 심지어 5년 학교를 다니면서 5년 경력을 갖고 졸업하는 친구도 있었다. 아무리 패션 전공자들이 지독하게 열정적인 편이라도 말야. 세상... 비현실적인 하드워커들. 


교수들은 매 수업 시작마다 그 주의 업계 뉴스를 잔뜩 소개해주었다. WWD, NYT, WSJ 같은 신문과 거의 모든 패션 잡지를 빠삭하게 꾀고 있었다. 학생들도 각자 일하면서 겪은 패션 업무, 재밌게 보았던 잡지와 뉴스에 대하여 자유롭게 그리고 자신있게 클래스에 발표하고 공유하였다. 매 수업마다 1회 이상의 현장 학습이 있었으며, 수주 전시회, 패션 회사(DKNY, L brand 등), 컬러연구소, 소재연구소, 니트직조공장, 패션라이브러리 등 다양하고도 실제적인 현장에 방문했다. 실무와 겸직하는 교수들이 많아 다들 패션업계의 인맥이 상당했고, 학교는 디자이너와 바이어 등 업계 관계자의 세미나가 넘치도록 개최되었다. 예술적인 자극이 충만한 학교였다.


대부분의 FMM 전공 과제는 잡지, 트렌드, 상권, 매장, 브랜드의 사례 조사였고,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보고 느끼고 기록할 것을 강조했다. 공강이 있거나 학교가 끝나면, 매일같이 현장으로 달려가 아이쇼핑 겸 과제를 해야 했다. Fail을 면하려면, 맨하튼 곳곳의 패션 매장을 엄청나게 발품팔며 돌아다니고 보고 느끼며, 직접 방문했기에 얻을 수 있는 유니크한 자료를 확보해야 했다. 


우주를 그리는

손재주 좋은 한국인들!

컵 그림 하나에 우주의 섭리를 담는

말재주 좋은 미국인들?


대학 후배 2명이 FIT 패션 디자인 전공으로 입학했다는데... 오며 가며 한 번쯤 만나기는 커녕 연락이 아예 안되었다. 학기가 끝나고서야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도 과제에 치이는 어마무시한 일상에 기겁하며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살아냈던거다. 한 학기 동안 포켓, 칼라 같은 부분 제작부터 셔츠, 스커트, 자켓 같은 아이템 제작까지 장장 50개를 넘게 만들었단다. 뭐. 50개...? 내 귀를 의심했다. 


수업은 이렇다. 교수가 유인물을 나눠준다. 포켓이든 칼라든 셔츠든 스커트든 제작 방법이 자세히 글로 설명되어 있는 유인물이고, 다음주까지 만들어 오란다. 그럼 학생들은 유인물을 따라하면서 되든 안되든 엇비슷하게 결과물을 만들어 가져가는거다. 수업에서는 학생의 결과물을 딱 놓고, 작업하며 무엇이 어려웠는지, 제작이 잘되었는지 못되었는지를 얘기하면서 가르치니 피해갈 수가 없다. 무조건 만들어가야 하는거다. 혼자 엄청난 시행착오를 하고 수업에 참여하니, 잔뜩 예습이 된 상태로 질문도 당연히 많아지는 생동감 있는 수업이 진행될 수 밖에. 그렇게 매주 눈뜨고 과제하고 학교갔다 시장갔다 다시 과제하고 기절하는 한 학기를 보냈다고 한다. 엄청난 한 학기의 트레이닝으로 패턴 뜨고 재봉틀 쓰는 건 속도와 기술면에서 모두 매우 성장할 수 밖에 없다고!


한국 학생들은 손재주가 뛰어난 편이라, 일러스트레이션 수업은 좀 쉽게 가겠지 생각했단다. 그런데 매번 자신의 작업물을 클래스 전체에 설명해야 하는 위클리 프리젠테이션!!! 우주를 몽땅 담아간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컵 하나 크로키를 놓고 자신감으로 무장한 네이티브 학생들의 엄청난 말빨, 프리젠테이션에 밀려... 학점에서 완전 배신감을 느꼈던 강의도 있었단다. 결과적으로, 웰 메이드 결과물도 중요했지만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창작물의 스페셜티를 대중에게 설명하는 것도 평가의 대상이었던거다. 아니. 이쯤되면 디테일한 스킬을 요구했던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창작의 영감과 동기, 여러 시행착오와 이에 따른 결과물, 그리고 디자인을 통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지 풀 스토리의 매력을 평가했던거지 싶다.


아. 그리고... (일을 할 수 없는) 학생 비자에 묶여, 학교 인턴쉽 센터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인턴, 파트타임, 풀타임 잡에 이르는 기회들을 잡을 수 없었던 점은 매우 안타까웠다. 그래도, 패션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교수진과 학생들, 전문적이고 다양했던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생기가 넘치던 학교의 공기와 기운까지... 좋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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