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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서 꽃형님 Sep 13. 2020

마이클 코어스, 본격적인 엑셀 업무 시작

by 꽃형님

아침 햇살 받으며 출근한 곳은 다름아닌 뉴욕 42번가 마이클 코어스 헤드오피스. 카드키를 찍고 플래닝 오피스에 들어서면, 보스는 스타벅스 벤티 커피 하나를 책상에 놓고 (보스의 업무에 대한 진지함이 느껴지는 사이즈...) 오트밀을 데워 아침으로 먹으며 이메일을 체크하고 있다. 나도 공용부엌에서 프리 커피 한 잔을 내려 자리로 가져와서는 본격적인 업무 준비를 한다.



"S 보스! 안녕! 굿모닝! :-) 좋은 아침~"

"안녕, 안녕, 좋은 아침이야~ ;-) 자, 오늘 우리가 해야할 일은 말이지...!" 


매일 아침마다 하던 업무는 데일리 셀스루(sell-through) 보고서 작성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미국 전역 마이클 코어스 (플래그쉽과 백화점, 쇼핑몰까지 포함한) 1,000여개 매장의 판매 실적이 담긴 어마어마한 용량의 POS 데이터를 엑셀 파일로 열어 확인하고, 빠르게 필요한 자료만을 검색하여 가져와... 셀스루를 계산하고 정리한다. 


각 컬렉션의 어제 매출 및 3일치 매출, 지난주 매출, 작년 매출과의 비교가 한눈에 보여야 하며, 모든 데이터 파일이 함수로 연결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최종 1장으로 정리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내가 작업한 파일을 보스가 검토하고 수정 요청하면, 최종본이 완성된다. 기밀 문서이니만큼 보스는 각 부서의 디렉터들을 찾아가 프린트된 1장의 보고서를 직접 핸드캐리하고서, 매출 상승 또는 하락의 이유에 대하여 1:1 논의를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미국 생활에 충분히 적응하여 여러모로 안정적인 시기였다. FIT에서는 1년 AAS 프로그램 학생이라 시도할 수 없었던 인턴쉽에 도전해보고자 여름방학부터 인턴쉽 공고를 부지런히 읽으며 일할만한 곳을 찾았다. 


가을에 지원하고, 초겨울에 인터뷰하고, 봄부터 출근이 결정되었다. 정해진 데드라인이 없기에 HR의 불규칙한 연락을 장장 6개월여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고, 이메일마다 조심스럽게 필요한 (미국 문화의) 리액션을 취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부딪쳐 얻어낸 인턴쉽이었다. 


그럼에도 회사에서는 학생을 인턴쉽으로 채용함으로써 얻는 혜택(세금 관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을 위한 행정 서류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학교와 한참 상의를 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외국 학생이란 이유로 (일정 등록금을 소비해야 VISA가 유지되고, 학생 VISA인 F1은 돈을 벌고 세금을 내는 일반적 고용 상태가 될 수 없음, 등), 학점 인정은 불가능 했다. 


그러나 학교의 책임(?) 하에 놓여있다는 이유로 학교를 통한 인턴쉽으로 서류가 발행될 수 있었고, 학교 Audit 한켠에 기록되었다는 것이... 추후 내 노력의 흔적을 그나마 증명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료가 되었다. 


왜?

마이클 코어스?

LVMH 소속이라서?

대표적인 미국 디자이너여서? 


사실 내게 일만 준다면 마이클 코어스든 구찌든 베르사체든 질샌더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미국에서 MD 업무를 경험하고 싶었기에 해당 공고와 관련된 거의 모든 회사의 인턴쉽에 지원했다. 아무래도 미국에 본사가 있는 내셔널 브랜드(National Brand, NB)들이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고, 리미티드(Limited)와 코치(Coach), 그리고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는 그리 두렵지 않았지만, 네이티브 실무자들 앞에서 혹시나 당황하여 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까봐, 예전 회사에서 작업했던 엑셀 보고서와 학교에서 PT했던 마케팅 보고서를 파일링해서 가져갔더니... 실무자 면접을 보았던 보스가... 딱 그 포폴을 보고 나와 일해야겠다 최종 결심했다고 한다. 아무도 그런 데이터를 보여주는 지원자가 없었다나... (제가 좀 많이 간절했거든요...)


보스는 Planner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Merchandising Planning Department에 소속되어 일하게 되었다. 머천다이징 부서도 아니고, 마케팅 부서도 아니고, 바잉 부서도 아니지만... 뭐랄까, 디렉터들의 직속 전략 요충지 같은 그런 위치였다. 


데일리 셀 쓰루, 위클리 셀 쓰루, 먼쓸리 셀 쓰루 리포트 작성이 매일의 주요 업무였고, 미국의 4-5-4 리테일 캘린더를 책상 앞에 뙇 붙여두고서 분기 보고서도 함께 작성했다. 위클리와 먼쓸리로 뽑는 베스트 셀러 리포트, 워스트 셀러 리포트는 상품 사진과 함께 작성되어 디자이너들을 비롯한 전 부서가 확인할 수 있어야 했고, 스페셜 라인업 (광고를 찍었다던가, 신상을 출시했다던가, 협찬이 대거 들어갔다던가...) 상품의 판매율 분석 리포트는 CD(Creative Dierctor,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요청하는 즉시 건건이 작성되었다. 


특히 매장 평가가 인상적이었는데, 미국/인터내셔널 전역 백화점, 쇼핑몰, 플래그쉽을 유통망 별로 나누고 각각의 성과를 1등부터 모두 나열하여 성과 분석을 진행하고, 상위 n%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매장을 밀어줄 전략을 구상하는 동시에, 하위 n% 매장 정리 여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했다. 미국 전역의 POS 데이터를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쓰릴이 넘치는 하루하루였다.



첫 직장에서 매일같이 구박 받으며 꾸역꾸역 배웠던 그 엑셀이... 보테가 베네타 PR 인턴 시절에 샘플 세일과 재고 정리를 할 때 유용했고, 마이클 코어스 Planning 인턴 시절 매일의 업무에 필요했다. 함께 일하던 디자이너들은 부자재 관리를 엑셀로 했고, 오퍼레이션팀은 공장 관리를 엑셀로 했고, 심지어 PR팀은 브랜드 카달로그를 엑셀로 만들었다. 


지금은 가계부 관리도... 개인적인 스케쥴 관리도... 친구들과 여행 경비 엔빵도... 학기말 출결 및 성적 평가도... 패션 마케팅 연구 설문지 코딩도... 나아가 SPSS, AMOS, 빅데이터 분석... 모두 엑셀을 사용하고 있다. 


패션 머천다이징 강의마다 실무에서 쓸 법한 커리큘럼의 엑셀을 실습하고 있는데 (가상의 예산을 가지고 Assortment Planning을 구상하는 실습 등), 어려운 재무 함수를 마스터할 필요가 없다 누누히 얘기하고 있다. 


출시되는 프로그램들의 기능들은 실로 다양하고, 이 중에서 내게 필요한 개념과 기본기를 배워두면 충분하다. 포토샵의 레이어를 투명 셀로판지 그림을 여러 장 겹쳐 보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나면, 일러스트레이터, 프로크리에이터, 프리미어프로까지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합계 내기, 평균 내기 정도의 산수를 기본으로... 비즈니스 상황에 따른 합리적인 수식을 머릿속에서 구상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마이클 코어스 앞, 점심 시간을 보냈던 최애 장소, 브라이언트 파크


보스 S는 인턴기간 동안 나의 업무 역량과 성격 등을 파악하여 상부에 확실하게 보고했고, 인턴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 회사는 내게 프로덕션 팀의 Quality Control Analyst 자리를 제안했다. 전세계 거래 공장들의 샘플 생산 체크, 성공률(판매율) 체크, 불량률 체크, 페널티 부여, 새로운 생산처 모색 등 Operation과 관련된 데이터를 다루어 전략적인 생산 관리를 하고 상품의 품질 향상을 도모하는 업무였다.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에 마이클 코어스 핸드백을 생산하는 OEM 회사가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무려 LVMH 그룹, 거부할 이유가 없었고, 최종 인터뷰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리만 브라더스 파산, 파이낸셜 크라이시스로 리테일 회사의 고용은 동결되었고, 있던 사람들도 정리되는 시기였다. 


비록 최종 고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정확한 오더를 내리고 명쾌한 피드백을 주는 보스와의 담백하고 객관적인 관계 유지에서 배울 점이 참 많았고, 데이터 및 리서치 업무는 내게 잘 맞고 즐겁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죄다, 경험해보았기에!!! 


학생들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고민이라 한다. 당연하지 않나? 하고 싶은 혹은 하기 싫은 무엇인가를 겪어본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무엇이 좋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나. 심지어 몇년 몇십년 일해온 사람들도 어느날 갑자기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건데.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특정하기가 원래 더 어렵다. 그래서 학생 시절, 지식도 쌓고, 팀워크도 하고, 인턴, 아르바이트, 프로젝트, 공모전까지 다양하게 알아보길 적극 권유하고 있다. 머리로 미리 알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혹독하게 겪어봐야... 그 무엇이 내게 맞는지 겨우 조금 알게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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